일반 소비자가 약국이 아닌 편의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안전상비의약품의 품목이 늘어날지 주목된다. 품목확대 반대측은 소비자의 안전성을 우려하고 찬성하는 측은 안전상비의약품 제도 도입으로 해당 품목의 약가상승률이 낮아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14일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를 비공개로 열고 안전상비의약품 품목확대에 대해 논의했다. 위원회는 대한의학회(2명), 대한약학회(2명), 시민사회단체(2명), 보건사회연구원 추천(1명), 복지부 기자단(1명), 대한약사회(1명), 편의점협회(1명) 등 10명으로 구성됐다.

편의점 구매가능 의약품 13가지…20개까지 확대 가능

현재까지 편의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은 ▲해열진통제(5품목) ▲소화제(4품목) ▲감기약(2품목) ▲파스(2품목) 등 총 13품목이다. 무한정 품목 확대가 가능한 것은 아니며 개정 약사법에 따라 약국 외 판매 의약품의 범위는 20개 이내가 돼야 한다.

지난 2012년 5월2일 감기약, 해열제 등 일부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하는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같은해 11월15일부터 안전상비의약품의 약국외 판매가 가능해졌다.

안전상비의약품은 의사의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 중 가벼운 증상에 시급하게 사용하기 위해 환자 스스로 판단해 사용할 수 있는 의약품을 말한다. 지정된 곳에서 구매할 수 있고 한번에 1통씩만 판매할 수 있다. 12세 미만의 어린이나 초등학생은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의약품을 구매할 수 없기 때문에 어른이 구매해야 한다. 대상품목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정한 안전성 기준을 모두 통과한 의약품 가운데 소비자의 인지도가 높은 대표적인 품목을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를 통해 선정했다.

소비자, ‘연고’ 판매 가장 원해

편의점을 찾은 소비자는 안전상비의약품 추가 희망 품목으로 연고 제품을 가장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상은 고려대 약학대 교수가 2016년 6월부터 11월까지 시행한 보건복지부 용역 연구에 따르면 품목 수에 대해 소비자는 연고(21건), 해열진통제 종류 추가(16건), 일반의약품 전체(16건), 제품 다양화(11건), 감기약 증상별(9건), 소독약(8건), 안약(7건), 화상약(5건), 어린이진통제·알러지약·지사제·관장약(각 3건), 영양제(2건) 순으로 품목을 추가하길 원했다.

판매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소비자가 게보린(19건), 인공눈물(8건), 종합감기약·겔포스(각 5건), 속쓰림약(4건), 감기약·아스피린·생리통약·지혈제(각 3건), 진통제(2건) 순으로 제품을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연구자는 현재 안전상비의약품으로 지정돼 있는 해열진통제(5개), 감기약(2개)의 품목수를 확대하는 방안과 화상연고·인공누액·지사제·알러지약을 신규로 고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 안전상비의약품 목록.사진=식품의약품안전처 온라인의약도서관, 각 사 홈페이지

대한약사회 등 반대…“안전성 우려”

대한약사회는 안전상비의약품 제도 도입 당시부터 해당 제도를 반대해왔다. 이번 품목확대에 대해서는 꾸준히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 중이다.

지난해에는 2014년~2015년 2년간의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업소 약사법 위반실태를 공개하기도 했다.

약사회가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업소의 약사법 준수사항 위반여부를 조사한 결과 총 조사대상 2895곳 중 73.6%에 달하는 업소가 준수사항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2014년을 기준으로 총 위반건수 2656건 중 57%를 동일제품을 2개 이상 판매하는 행위가 차지했다. 이어 구분진열위반(576건), 판매자 등록증 미게첨(273건), 주의사항 안내문 미게첨(117건), 가격표 미부착(110건), 지정품목 외 판매(56건), 24시간 미운영(9건), 개봉판매(2건) 순이었다.

약사회 등 품목확대 반대측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안전성이다. 보건의료시민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도 약사의 복약지도 없이 소비자가 일반의약품을 구매해 복용하는 것이 약화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는 해외국가는 갖고 있는 정부 차원의 모니터링 시스템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약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정부가 안전상비의약품 품목을 확대한다는 것은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오로지 경제적인 부분에만 몰입된 잘못된 판단”이라며 “국민을 의약품 오남용의 위험으로부터 지켜 부작용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도 최근 논평을 통해 “정부는 안전상비의약품목 확대요구와 편의성만으로 안전상비의약품에 대한 접근성 확대계획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며 “의약품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무엇보다 안전성과 효과성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영국과 EU, 캐나다와 같은 선진국가들은 약국 외 판매의약품의 안전성 및 부작용관리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모니터링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정부차원에서 안전상비의약품에 대한 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일부 시민단체나 시민모임 등에서 암행모니터링 등을 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밝혔다. 

안전상비의약품 품목의 부작용 보고 건수는 실제로 소폭 증가했다.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에 따르면 제도가 시행된 2013년 이후 타이레놀정500mg의 부작용 보고 건수는 2013년 80건에서 2015년 88건으로 늘었다. 타이레놀정 160mg은 같은 기간 16건에서 23건, 어린이부루펜시럽은 38건에서 54건으로 부작용 보고가 증가했다.

하지만 보고된 의약품부작용이 편의점에서 판매된 것인지 약국에서 판매된 것인지에 대한 구분은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도입을 통해 약화사고가 증가했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없는 셈이다.

안전상비의약품 도입 이후 약가상승률 낮아져

이런 상황에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제도 도입에 따라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의약품이 약국에서만 판매되는 같은 종류의 의약품보다 가격상승률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정회상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2012년부터 2014년까지의 ‘소화제 및 해열진통제 판매가격 증가율’을 분석한 결과 안전상비의약품인 훼스탈플러스정의 연평균 가격상승률은 1.40%인 반면 약국에서만 판매되는 같은 종류의 의약품인 백초시럽플러스(100ml)와 까스활명수큐액(75ml)의 가격상승률은 각각 10.37%, 8.99%로 나타났다.

해열제의 경우 안전상비의약품에 속하는 어린이부루펜시럽(90ml)의 연평균 가격상승률은 4.25%였는데 약국에서만 판매되는 같은 종류의 의약품인 사리돈에이정(10정)과 펜잘큐정(10정)은 각각 8.82%, 4.84%로 어린이부루펜시럽보다 가격상승률이 높았다.

정회상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안전상비의약품의 품목수를 늘리고 판매처를 편의점에서 드럭스토어나 슈퍼마켓 등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편 복지부는 안전상비의약품의 품목조정이 필요한 경우 6월까지 고시를 개정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