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 출처 = 금호아시아나그룹

국내 2위 타이어 기업인 금호타이어 인수전이 1조원대 ‘쩐의 전쟁’을 넘어 여론전·법정싸움으로까지 번졌다.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컨소시엄 구성 허용 요구에 ‘불가’ 입장을 고수하는 산업은행 측에 법적 조치를 진행하겠다고 예고하면서다.

우선매수청구권 약정 내용이 분쟁 빌미···3자 양도 가능?

금호아시아나측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보이고 있는 갈등의 핵심은 우선매수청구권 약정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우선매수권자의 우선매수 권리는 주주협의회의 사전 서면승인이 없는 한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없다’는 구절이 문제가 됐다. 다른 약정 내용은 비밀유지 서약 탓에 공개되지 않았다.

해당 문구를 액면 그대로 적용하면, 박삼구 회장은 컨소시엄 구성없이 `자력으로만` 금호타이어 입찰에 참여해야 한다. 다만 ‘주주협의회의 사전 서면승인이 있을 경우’에는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우선매수권의 일부를 양도,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것이 자금조달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해당 내용을 주주협의회 안건으로 정식 부의해달라고 수차례 요구했다는 주장이다. 우선협상자인 더블스타에게는 6개 회사 컨소시엄을 허용하면서, 우선매수권자에게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역차별’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특히 지난 13일 금호아시아나 측 기자회견에서 “지속적으로 우선매수권의 일부를 양도해 컨소시엄을 구성할 수 있도록 요청하고 지난 2일과 6일 두차례나 주주협의회 안건으로 정식 부의해 달라고 했으나, 산업은행은 부의도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컨소시엄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고 구원(舊怨)을 공개했다.

실제 산업은행은 금호 측 요구에 아무런 답변 없이 주주협의회에서 다른 사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은 이번 인수전의 주 채권은행이긴 하지만 주식보유량은 우리은행(14.15%)에 이어 두 번째(13.51%)로 많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약정 내용이 비밀로 유지된 탓에 이 같은 사실을 외부에 미리 알릴 경우 우선매수권을 회수할 수 있다는 압박도 (산업은행으로부터) 받았다”며 “지금에 와서야 이를 알리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산업은행 “원칙 포기할 수 없다”···피소 우려說도 등장

지금까지 산업은행의 반응은 냉담하다. 정해진 원칙을 어길 수는 없으므로 우선매수권자의 컨소시엄 구성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중이다. 금호타이어 인수 경쟁이 여론전으로 흐르며 시끄러워진 이유다.

타이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귀를 닫은 채 다른 주주들의 의견 확인 없이 자체적으로 금호아시아나 측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며 “금호타이어가 박삼구 회장 품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채권단이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닌데,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앞서 금호산업을 할 때 채권단은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진 그룹에 컨소시엄 구성을 허용한 바 있다. 박삼구 회장이 고강도 경영개선을 실행했다는 점을 인정해 청구권 범위를 넓히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관련 약정 내용을 수정할 경우 우선협상대상자인 더블스타가 소송을 제기할 것을 우려한 산업은행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더블스타는 지난해 금호타이어 입찰에 참여하면서 우선매수권의 효력 등에 대한 정의를 내려줄 것을 산업은행에 요청했었다. 당시 산업은행은 ‘우선매수권은 박삼구 회장과 박세창 사장 개인에게 한정된 권리’라는 공문을 더블스타 측에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더블스타에 공문을 발송할 당시 주주협의회에서 우선매수권의 해석에 대한 안건을 부의한 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우선협상 대상자인 더블스타쪽에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반면 산업은행 측은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지금 시점에 공론화하는 것을 적절치 못하다’는 주장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에도 그룹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개입찰에 뛰어들 것이냐, 홀로 자금을 마련해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것이냐에 이목이 모인 적 있었다"며 "컨소시엄을 통해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증빙을 먼저 한 다음 약정 내용 해석을 요구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어차피 주주협의회 안건으로 상정된다 해도 산업은행 의결권이 25%를 넘기 때문에 의미가 없어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채권단이 보유한 지분 40%여서 산업은행의 의결권이 상당하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규정을 무시한 채 자신들만의 법해석 잣대를 근거로 삼을 경우 인수전의 투명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더블스타 등이 반발을 일으킬 것이 자명하다”며 “지금 시점에 이 같은 주장을 펴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과거 수많은 매각 절차를 복기해봐도 지금 같은 경우는 없었다”고 언급했다.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 출처 = 금호아시아나그룹

중국기업, 국내 타이어기술 빼먹고 먹튀할 수도

하지만 산업계와 학계에서는 산업은행이 투자수익만을 추구하는 ‘금융논리’를 내세울 경우 국내 산업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먼저 금호타이어 경영 정상화 과정에서 국내에 있는 대주주가 그간 쏟은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점이다.

박삼구 회장은 워크아웃 등 힘든 시기를 보냈던 금호타이어를 위해 2012년 5월 1135억원의 사재를 출연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베트남 공장 증설(462억원), 용인 연구소 신축(513억원) 등이 가능했다.

이후 베트남 공장의 영업이익률은 2011년 1.5%에서 2014년 11.4%로 크게 올랐다. 연구인력 역시 2011년 474명에서 2016년 752명으로 급증했다. 박회장은 효성그룹등과 손을 잡고 금호타이어 인수자금 1조원 가량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개인 금고까지 털어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 것은 금호타이어를 되찾아오기 위한 의도에 다름아니다. 그렇지만 컨소시엄 구성이 안될 경우 개인적으로 인수를 하더라도 비용부담이 급증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와 함께 `승용 타이어 고급 기술의 국외 유출`이라는 측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 지난 2004년 쌍용자동차를 인수했던 상하이자동차는 대규모 해고와 투자 위축, 경영난 등 상처만 남기고 기술력을 빼간 기억이 뚜렷하다.

현대전자의 사업부가 분리돼 탄생했던 하이디스 역시 중국자본에 팔렸다가 핵심 기술 4300여건만 빼앗긴채 한국 공장이 폐쇄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처럼 과거 중국자본이 국내 산업에 남긴 상처가 많은 가운데, 금호타이어 인수 주체로 로 ‘더블스타’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지목됐을 때부터 또 다른 사례가 가시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중국 국영기업인 더블스타는 매출액 기준 세계 34위 타이어 업체로 이 부문 연매출이 3000억원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금호타이어는 현재 글로벌 14위권 회사로 지난해 매출액은 2조9476억원이다.

▲ 자료사진 / 출처 = 더블스타 홈페이지

더블스타 인수능력 의심···“시너지효과 없어”

회사 규모가 크게 차이나는데다, 주력으로 삼는 시장도 다르다. 금호타이어는 친환경·겨울용·레이싱용 타이어 등에 세계적인 기술력은 보유한데다 승용차용 타이어 업계에서 인지도도 높다.

반면 더블스타는 트럭·버스용 타이어 시장에서만 영향력이 있을 뿐 승용차용 제품에 대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더블스타그룹은 2002년 화칭그룹을 인수하며 타이어 업종에 발을 들였으며, 자체 기술 개발보다는 다른 회사의 인수합병을 통해 세력을 키우고 있다. 유통망을 갖춘 곳도 중국 내수에 국한돼 있다.

더블스타가 승용차용 타이어 기술을 빼가고 해외 인프라만 활용한 채 기업의 존폐에는 나 몰라라할 가능성이 크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최근에는 더블스타가 금호타이어의 인수 조건으로 장기간 부채의 상환 유예를 요청했다는 사실도 업계에 떠돌았던 적이 있다. 부채를 유예할 경우, 자금상환 지출 등의 실질적 현금흐름유출이 발생하지 않는다. 유예 기간 동안 기술력만 빼먹고 되팔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채권단 측은 입찰 비밀유지 서약 등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기업평가는 더블스타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을 당시 금호타이어의 신용등급을 ‘부정적 검토 대상’으로 등록한 바 있다. 업력이 짧고 규모가 작은 더블스타가 영업현금 창출력이 떨어져 금호타이어 재무 안전성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컨소시엄 구성으로 자금 만들땐 채권단 반대 힘들듯"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금호타이어가 더블스타로 넘어간다는 점을 상상한다면 과거 쌍용차 사태가 바로 떠오른다”며 “단순히 금호타이어 뿐 아니라 자동차 산업이 앞으로 점진적으로 중국에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인의의 박경준 대표변호사는 “자세한 법률적 해석은 약관 내용을 모두 확인해야 가능하다”면서도 “문제가 된 문구(승인이 없을 경우 양도할 수 없다는)의 경우 ‘우선매수권자도 채권단 승인 시 컨소시엄을 구성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법정 다툼의 핵심은 ‘해당 문구에 대한 심사를 왜 해주지 않느냐’가 될 것”이라며 “우선매수권 관련 약관 내에 박삼구 회장의 인수 능력이 확인되면, 금호타이어를 무조건 매각한다는 조항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컨소시엄 구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면 채권단 회의에서 이를 반대하기 힘들다는 뜻”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