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덕후’가 들려주는 포켓몬 이야기. 포덕노트 1화.

나는 포켓몬이 좋다. 어느덧 포켓몬의 종류는 800마리가 넘어가고, 300번대가 넘어가는 포켓몬은 디지몬 취급받는 것이 일상이며 언제나 10살 지우는 2000년도 오렌지리그에서의 우승 이후로 16년동안 공식 포켓몬리그에서 단 한번의 우승을 못해 충격으로 얼굴도 뜯어고쳐 이상한 포즈를 취하는 벌칙을 수행하는 중이지만 나는 포켓몬이 좋다.

주로 내가 파는 분야는 게임이긴 하지만 최근에는 몬스터볼 보조배터리라거나 인형 같은 소품에도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요 근래 3개월, 오사카 여행 자금을 위해 일러스트 외주를 받아 두문불출 틀어박혀 식대도 아껴가며 얼마나 열심히 돈을 모았던가. 담배 끊었냐고 물어보는 후배에게 일본에 가서 포켓몬 인형 사려고 휴연 중이라고 대답했을 때, 그 때의 표정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 그림=니트남

내 기억 최초의 RPG(역할수행게임)이자 콘솔 입문 게임이었던 포켓몬은 지우의 피카츄, 로켓단의 냐옹처럼 나에게 단순한 추억의 게임 이상의 존재가 됐다. 나의 주변 사람들은 어느 샌가 나를 ‘포덕’이라 부르고 있었다.

2016년 7월은 1990년대 이후 약 20여년만에 국내에 포켓몬 붐이 도래한 시기였다. 인터넷에선 미국인들이 고집하던 야드와 인치에서 눈을 돌려 미터법을 마주하게 만든 ‘포선생’의 위대함이 떠돌았고, 뉴스에서는 교통사고가 증가했는데 이게 다 포켓몬고 때문이야라는 어딘가 헛짚어도 단단히 헛짚은 이야기를 읊어댔다.

‘속초몬고’, ‘주머니괴물달려’ 등 온갖 유행어가 인기 검색어에 오르내렸다. 너나 할 것 없이 속초로 떠나던 때였다. 모 연예인의 ‘포켓몬을 잡으러 갔는데 포켓몬이 된 것 같았다’라며 수많은 관광객에게 시달렸다는 후기는 유명하다. 이러한 ‘속초 붐’은 90년대의 포켓몬을 좋아하던 아이들이 20여 년간 점잖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얼마나 새로운 떡밥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듯했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별 거 아닌 일들이, 때때로 얼마나 어려웠던가. 닌텐도? 포켓몬 때문에 게임기를 산다고? 만화? 피규어? 인형? 덕후세요? 온갖 시답잖은 오지랖들은 마치 치느님의 영접시간에 다이어트 얘기를 끼얹는 불청객만큼이나 악질이다.

스마트폰의 보급은 이러한 오지랖들로부터 포켓몬을 향한 여정의 출발선을 효과적으로 보호해줬다. 스마트 폰을 쓰는 사람은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는 캐터피보다도 많으니 누가 감히 뭐라 하겠는가. 그 외에도 동일한 출발선, 낮은 진입장벽, 손쉬운 조작성. 어렵지 않은 접근성에 미개척지나 다름없는 터전. 글로벌한 인지도. 이쯤 되면 눈치 보지 않고 덕질하기에 완벽한 조건이 아닌가?

▲ 그림=니트남

앞서 말한 조건들은 사실 포켓몬고라는 이름의 새로운 바람을 설명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어디 새로 나오는 모바일게임이 한 두 개인가? 조작성으로 치면 오토사냥보다 더 손쉬운 조작성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포켓몬이 어마무지하고도 무지막지하게 귀엽긴 하지만, 퍼즐 모바일게임 ‘포켓몬 셔플’은 포켓몬GO와 같은 ‘포켓몬’ IP(지식재산권)임에도 불구하고 다운로드 수가 수십배는 차이난다.

수천만명이 포켓몬GO를 붙잡게 만든 마력. 그건 바로 포켓몬 그 자체에 있다! 어렸을 적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을 보았던 이들이라면 모자가 트레이드마크인 한지우의 18번 ‘×××, 넌 내꺼야!’하는 대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날아가는 몬스터볼. 흔들, 흔들, 흔들, 딸깍! 야생포켓몬이 나만의 포켓몬이 되는 순간이 어찌나 부러웠던가.

포켓몬스터 게임에서 주인공의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남자아이는 언젠가 여행을 떠나는 거야.’ 당시 주인공의 성별은 남자로 고정돼있다만, 남녀할거 없이 포켓몬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누구나가 한번쯤은 상상해봤으리라. AR(증강현실) 기술은 로망을 현실로 만들어줬다. 감히 과장하자면, 포켓몬고는 단순히 AR 기술을 도입한 게임을 넘어서 한 시대의 추억과 로망을 구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