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시장에 대한 기대가 엇갈리고 있다. 일단 부정적인 전망이다. 한정된 콘텐츠와 비싼 가격, 불편한 착용감 및 비즈니스 모델의 부재 등으로 예상보다 크게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시장조사기관 트렌스포드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현실 시장은 8조원대 규모로 성장했으며, 오는 2020년에는 10배에 달하는 80조원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결국 '어떻게 가상현실 시장을 운용할 것인가'가 시장의 명운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범진 일리언 대표를 만난 이유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역마살 충만한 게임 매니아, 가상현실과 만나다

일리언은 지난 2015년 12월 설립된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 스타트업이다. 워낙 역사가 짧아 '그저 그렇고 그런 기업'으로 오해한다면 당신은 디테일을 놓치는 셈이다.

일리언은 세계 최초의 'Free to Play VR Action MORPG' 형태의 게임 프레타를 통해 글로벌 시장의 인정을 받았으며 미국 거대 헐리웃 제작사와 협력하는 한편, 중국 화웨이를 위시한 현지 기업들과의 만남과 삼성전자와의 동맹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는 물론 서구권을 겨냥한 가상현실 기업으로 발전하고 있는 일리언의 탄생비화는 어떨까. 박범진 대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그는 삼성SDS에서 개발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돌연 사직하고 만다.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라고.

박범진 대표는 "학창시절 게임에 빠져 살다가 고등학교 막판에 나름 열심히 공부해 삼성SDS까지 왔으나, 이건 내가 원했던 인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이후로는 다소 파격적인 행보다. 박범진 대표는 술집을 차리기도 하고 출판사를 운영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훌쩍 캐나다 이민을 떠났다고. 모두 "재미있는 일"을 찾기 위한 여정이라는 설명이다.

그런 상황에서 2011년 넥슨에 입사했다. 박범진 대표는 "학창시절부터 게임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넥슨에 입사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넥슨에 입사한 후 몇 차례 프로젝트의 '어그러짐'을 경험한 그는 `재미있는 일`을 넘어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싶어 졌다고 한다. 여기에서 가상현실에 집중했다고 한다. 왜 가상현실일까. 박범진 대표는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부터 게임을 좋아했는데, 당시 클래식 게임들은 모두 플레이어가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전하고 MORPG 장르가 힘을 받으며 어느새 플레이어인 나는 게임에서도 '원 오브 뎀'이 되었더라"고 밝혔다.

여기서 가상현실이 최적의 플랫폼이라고 봤다. 박범진 대표는 "가상현실의 몰입감을 바탕으로 1인칭 게임을 개발하면, MORPG 장르에서 다수의 플레이어와 협력해도 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봤다"고 밝혔다.

즉 1인칭 스토리텔링에 있어 최고의 강점이 가상현실이며, 이는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 게임들의 대세인 '내가 게임의 영웅'을 충분히 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결정을 내린 박범진 대표는 자신과 의기투합한 넥슨 산하 모바일 MORPG 개발팀 핵심 인력과 함께 일리언을 설립했다. 핵심 경쟁력은 넥슨에서 개발하던 '프레타'다. 최초의 Free to Play VR Action MORPG 형태의 프로토 타입 게임이며 이미 개발완료를 위해 YJM 게임즈로부터 'Pre-A 투자'를 유치한 상태다.

▲ 프레타 스크린샷. 출처=일리언

분위기는 고무적이다. 폴리곤, 텍스쳐 압축관련 원천기술을 보유한 상태에서 일종의 기술기반 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의 다수 기업과 협력해 나름의 성과를 창출하고 있으며, 일리언은 북경에서 CKGSB 주최로 열린 'C-Combinator Launch & Demo day 행사'에서 쟁쟁한 현지 기업들을 누르고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GDC 행사에서는 'GDC Best Pitch 1위'에 오르기도 했다. GCD에서의 성과는 일리언이 추구하는 서양권 시장 개척의 긍정적인 신호이자, 투자자 관점의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큰 성과로 여겨진다.

정점은 미국 기업과의 협력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미국의 영화사와 IP계약을 통해 가상현실 게임을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헐리웃 영화의 한 장면을 일리언의 가상현실 게임으로 즐길 수 있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결론적으로 일리언은 중국 시장과 서구권 시장을 동시에 겨냥한 상태에서, IP를 매개로 가상현실의 플랫폼적 성격에 더욱 집중하는 분위기다. 이러한 트렌드는 일인칭 기술의 몰입도를 올리는 시너지를 추구하는 한편, 가상현실과 비(非)가상현실 콘텐츠 모두 제작하며 적절한 리스크 관리에도 나서는 중이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토탈리콜 방법론으로 스토리텔링의 맥을 짚는다

박범진 대표는 일리언이 보여줄 미래로 영화 '토탈리콜'을 예로 들었다. 그는 "영화 토탈리콜에 보면 주인공이 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하고 새로운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며 "특별한 공간에서 플레이어인 내가 주인공이 되는 색다른 체험을 하는 것이 일리언의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한 디테일한 방법론에는 에버그린 콘텐츠를 꼽을 수 있다. 박범진 대표는 "현재 가상현실 콘텐츠 대부분은 모두 일회성이지만, 프레타를 위시한 우리의 인프라는 '반복해서 오래오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다. 게임과 MORPG의 트렌드, 가상현실의 몰입도와 에버그린 콘텐츠의 지향, IP를 활용한 색다른 체험 모두 스토리텔링을 위한 중요한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일리언이 왜 '가상현실을 택했으며, 왜 게임과 IP를 바탕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그래서 궁극적인 목적은 가상현실 인터랙티브 드라마가 된다. 박범진 대표는 "MORPG와 가상현실의 몰입도, 에버그린 콘텐츠와 IP 등을 활용해 최강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상황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주인공이 되는 최고의 경험'이다"며 "여기서 플레이어의 자유도를 보장해 다양한 가치를 삽입하면 가상현실 인터랙티브 드라마의 비전까지 노릴 수 있다"고 밝혔다.

만약 여기까지 시대가 발전하면 일반적인 TV 콘텐츠 시장은 붕괴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범진 대표는 "드라마를 수동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내가 주인공이 되는 시대가 온다"며 "드라마 도깨비의 공유가 되어 직접 가슴아픈 사랑을 체험하는 것, 그것이 스토리텔링의 최종 지향점이자 가상현실 인터랙티브 드라마로 귀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박범진 대표는 "가상현실 공간에서 캐릭터와 눈을 맞춰본 적이 있는가"라며 "기분이 묘해지는 순간이다. 그 생생한 체험의 순간이 가상현실이 소통의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묘한 지점이 있다. 휘발성 가상현실 콘텐츠에 대한 문제제기와 동시에 박범진 대표는 "엔딩이 있는 게임이 필요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휘발성 콘텐츠는 말 그대로 짧은 콘텐츠이기 때문에 일회성이지만 그 자체로 엔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일리언의 방식이 일회성이 아닐까? 이에 박범진 대표는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MORPG의 방식을 차용한 이상, 함께 힘을 합쳐 몬스터를 물리치고 그 끝을 설정한 상태에서 다양한 전투방식을 제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리언의 엔딩있는 콘텐츠는 역설적으로 모두가 주인공인 플레이어의 패턴으로 에버그린 콘텐츠의 생명력을 확보하는 셈이다.

다만 생각보다 커지지 않는 가상현실 시장이 마음에 걸린다. 이에 대한 질문에 박범진 대표는 "한국은 초기지만 이미 서구권에는 나름 시장이 형성된 상태"라며 "하이엔드 시장이 생각보다 크지 않고 있으나 결국은 시간의 문제며, 이런 상황에서 일리언은 가상현실 일변도가 아닌 멀티 플랫폼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상현실과 비(非) 가상현실 콘텐츠 모두 제작해 리스크를 제어하는 방식이다.

물론 일리언의 핵심은 가상현실 시장이 콘솔 및 모바일 위주로 성장할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멀티 플랫폼적 접근은 IP적 관점의 실험과 더불어 스토리텔링으로 궁극적인 가상현실 인터랙티브 드라마를 추구하겠다는 일리언의 야망을 잘 보여준다.

국내의 경우, 언젠가는 판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범진 대표는 "이미 국내는 PC방과 아케이드 게임사를 중심으로 가상현실 경쟁력이 살아나고 있다"며 "가상현실 시장은 일반적인 시장이 되며, 성장이 더딜 뿐"이라고 단언했다.

나아가 "가상현실에 대한 일반의 시각이 차갑다는 것은 알지만, 사실 가상현실은 선사시대 이후 최고의 기술혁명이라고 생각한다"며 "인류는 모든 정보를 2차원으로 새겼지만, 가상현실의 등장으로 3차원의 영역으로 나갔다. 혼합현실 등도 마찬가지지만, 이러한 시공간의 파괴와 융합이 4차 산업혁명의 기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마지막으로 일리언의 비전을 물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박범진 대표는 "모바일 게임의 경우 짬을 내어 즐길 수 있는 캐주얼 게임이 대세가 될 수 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가상현실의 경우 이용자의 기대치가 크고, 당연히 킬러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문제는 킬러 콘텐츠의 완성도에 걸리는 시간. 박범진 대표는 "킬러 콘텐츠는 제작에 시간이 걸리며, 이제 가상현실 시장이 본격적인 태동을 시작한 상태에서 2019년 정도면 완벽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가상현실 킬러 콘텐츠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전했다. 바로 그 순간이, 일리언의 진가를 보여줄 수 있는 적기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