퀼팅 백과 트위드 재킷, 그리고 진주 목걸이. ‘샤넬’하면 떠오르는 상징물들이다. N°5 향수도 수많은 여성들의 로망이자 워너비 아이템이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동안 많은 이들이 간과했지만 더 이상 놓쳐선 안 될 샤넬의 포트폴리오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샤넬 워치다. 철옹성 같은 정통 시계 브랜드들 틈에서 샤넬의 시계는 평가 절하되기도 했다. 패션 브랜드의 시계라는 출신 성분과 인하우스 무브먼트의 부재 같은 기술적 이유가 원인이었다. 그러나 최근 샤넬이 보여주는 움직임이 그야말로 심상치 않다. 지난해 브랜드 최초의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발표해 화제를 모은 샤넬이 올해 여성용 인하우스 무브먼트마저 추가하며 파인 워치메이커로서의 화려한 비상을 꿈꾸고 있다.

 

▲ 프리미에르는 N°5 향수 병 마개에서 영감을 얻은 팔각형 케이스가 특징이다. 출처=샤넬

이야기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샤넬 시계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건 1987년의 일이다. 역사의 주인공은 프리미에르(Première)라는 이름의 여성용 시계로, 프리미에르는 프랑스어로 ‘최초’ 혹은 ‘최고’를 뜻한다. 샤넬의 첫 시계 프리미에르는 샤넬 N°5 향수 병 마개와 방돔광장에서 영감을 얻은 팔각형 케이스가 특징이다. 이후 이름 그대로 샤넬을 상징하는 대표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프리미에르는 2012년 까멜리아 플라잉 투르비옹을 선보이면서 패션 시계를 넘어 하이 컴플리케이션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이는 샤넬의 독점 기술로 이뤄낸 성과가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샀다. 까멜리아 플라잉 투르비옹을 포함한 샤넬의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는 샤넬과 스위스 시계 제조사 르노 & 파피의 협력으로 탄생한 결과물이었기 때문. 하지만 샤넬 시계의 진화는 고급 시계 제조에 대한 샤넬의 비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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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치메이커가 칼리버 2를 장착하고 있다. 출처=샤넬
▲ (왼쪽부터) 브릴리언트 컷, 바게트 컷, 풀 파베 세팅 버전 프리미에르 까멜리아 스켈레톤 워치. 출처=샤넬

그리고 올해 샤넬이 첫 번째 여성용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내놓았다. 이름은 칼리버 2. 칼리버 2는 지난해 선보인 남성용 인하우스 무브먼트, 칼리버 1과 마찬가지로 ‘선 디자인, 후 제조’되었다. 디자인 팀이 무브먼트 스케치를 완성하면 기술 팀이 그에 맞춰 수백 개의 부품을 배열하는 방식. 그 결과 까멜리아 꽃 모양의 스켈레톤 무브먼트가 탄생했는데, 샤넬의 시계 디렉터 니콜라스 보(Nicolas Beau)는 “주목할 것은 무브먼트가 아닌 꽃이다”라고 말했다. 꽃잎 사이사이에 안착한 배럴, 기어 트레인, 밸런스 휠을 보고 있으면 디자인에 대한 샤넬의 고집을 느낄 수 있다. 칼리버 2는 시, 분 기능을 제공하며 파워 리저브는 48시간 수준이다.

칼리버 2를 품은 시계는 프리미에르 까멜리아 스켈레톤 워치다. 샤넬 최초의 시계 컬렉션이 론칭 30년 만에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탑재하며 겉과 속이 모두 완전해진 셈이다. 프리미에르 까멜리아 스켈레톤 워치는 기념비적인 시계답게 무척 화려하다. 컬렉션 특유의 팔각형 케이스는 브릴리언트 컷 혹은 바게트 컷 다이아몬드로 수놓아져 있다. 전자는 핸즈에, 후자는 무브먼트 브리지에 다이아몬드 장식을 더해 화려함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두 버전 외에 화이트 골드 브레이슬릿 전체에 다이아몬드를 풀 파베 세팅한 한정판 또한 출시될 예정이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지만, 가격은 만만치 않다. 가장 저렴한(?) 모델인 브릴리언트 컷 버전이 13만 유로(약 1억 6000만원), 바게트 컷 버전은 19만 유로(약 2억 3000만원) 그리고 다이아몬드가 풀 파베 세팅된 한정판의 가격은 26만 유로(약 3억 2000만원)다. 굳이 감출 필요도 없는 가격에서 샤넬 특유의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