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여정이 끝났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을 수호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연인의 신분으로 돌아갔습니다. 촛불로 대변되는 우리 국민의 민심이 통한 셈입니다.

‘탄핵 정국’의 시발점은 최순실 게이트였습니다. 지난해 9월께 문제제기가 시작, 10월 JTBC의 태블릿 PC 보도로 인해 논란이 일파만파 커졌습니다. 11월 들어 100만명 넘는 인원이 촛불을 들었고, 12월3일에는 광화문에 23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결국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됐고, 2017년 3월10일 파면이 결정됐습니다.

6개월여 탄핵 정국 속 한국 경제는 큰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경제성장률은 2% 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소비자 물가지수는 무섭게 오르고 있습니다. 국정 마비에 외교까지 제 기능을 상실한데다 ‘사드 사태’로 위기감이 커졌습니다. 중국의 보복 행위에 롯데를 비롯한 많은 기업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자동차 업계도 요동쳤습니다. 탄핵정국이 본격화한 2016년 9월부터 2017년 2월까지 국산·수입차의 내수 판매량은 88만3061대로 집계됐습니다. 전년 동기(92만5137대) 대비 4.5% 가량 감소한 수치입니다.

사실 탄핵 국면과 자동차 시장 위축의 연결고리는 찾기 어렵습니다. 판매가 줄어든 것은 맞지만, 2016년 6월까지 정부가 소비 활성화를 위해 개별소비세를 인하해준 것을 고려해야 하거든요. 전년 실적이 높았던 것이 당연하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분명 눈에 띄는 특징이 있습니다. 브랜드별로 살펴볼 경우 ‘꼴찌의 반란’과 ‘1등의 정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 현대차 그랜저 / 출처 = 현대자동차

1등 브랜드인 현대차가 주춤합니다. 2016년 9월~2017년 2월까지 현대차의 내수 판매량은 31만5740대로 전년 동기(36만5683대) 대비 13.6%나 빠졌습니다. 39.5%였던 점유율도 35%까지 떨어졌고요. 기아차 역시 25만1010의 성적표를 받았는데, 지난번보다 7.9% 떨어진 수치입니다.

같은 기간 한국지엠(8만9233대, 9.5%↑), 르노삼성(6만4567대, 78%↑), 쌍용차(5만2757대, 1.3%↑)는 모두 상승세를 보여줬습니다. 이들 3사의 합산 점유율은 18.3%에서 23.4%로 크게 뛰었습니다. 폭스바겐 등의 부재로 인해 수입차 판매(10만9754대)는 6.2% 줄었습니다.

시장이 부진했던 것이 아니라 현대·기아차가 힘든 시기를 보냈던 것입니다. 이 기간 현대·기아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69%에서 64%로 하락했습니다.

2015년 9월~2016년 2월 3만6220대의 자동차를 파는 데 그쳤던 ‘꼴찌’ 르노삼성은 역전드라마를 써냅니다. 판매가 78%나 늘며 국내 완성차 업계 순위 5위를 탈출한 것입니다. SM6, QM6 등 신차가 투입되며 영업실적이 좋아진 것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대·기아차도 아이오닉, 니로, i30, G80 등 굵직한 신차를 쏟아냈습니다. 올해 들어 신형 모닝과 쏘나타 부분변경 모델도 나왔고요. 12월 출시이후 매달 1만대 넘게 팔리고 있는 그랜저도 있습니다.

현대·기아차(특히 현대차)가 최근 주춤한 것을 두고 많은 분석들이 나옵니다. SUV 라인업이 약하니 보강해야한다, ‘안티 현대차’로 불리는 소비자들이 많아졌으니 소통을 강화해야한다, 신차를 투입해야한다 등.

그러나 꼴찌의 반란을 살펴보면, 또 다른 활로가 보인다는 지적입니다.

많은 이들이 르노삼성의 성공을 ‘SM6의 성공’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SM6가 성공해서 회사가 좋아진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경쟁 업체들에게 ‘우리도 신차 하나 대박 터트리면 되지 뭐’라는 안일한 생각을 심어줄 수 있는 오류입니다.

SM6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은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한 회사의 마케팅이었습니다. 차의 성능보다 ‘프리미엄 중형 세단’이라는 감성을 강조했거든요. 기존 고객들이 많이 찾는 세그먼트의 차량을 ‘맞춤형’으로 생산해 내놓는데 그친 게 아닙니다. 새로운 세그먼트를 창조해내려는 노력이 수반됐다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소형 SUV 시장을 활짝 열었던 QM3에도 해당하는 전략입니다. 고객들에게는 신선한 자극이었을 것입니다.

이미 거의 전 라인업에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기아차는 약간 다릅니다. 새로운 세그먼트를 개척해 제시하려는 고민을 많이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아이오닉과 니로라는 친환경 플랫폼 차량이 있긴 하지만, 이들을 제외하면 소비자 감성을 자극하는 차량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대박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그랜저 등은 수십년간 브랜드 인지도를 쌓아온 세그먼트의 차량입니다. 신시장을 개척했다고 보기는 힘들죠. 소비자 의견은 무시한 채 성의 없는 신차‘아슬란’을 만들어 쓰라린 실패를 맛봤습니다.

QM3, 티볼리가 수년간 선전한 소형 SUV 시장에 신차가 이제야 투입됩니다. SM6, 말리부의 돌풍에 서둘러 쏘나타의 부분변경 모델을 내놓는 모습을 보여주고요. .

i30라는 엄청난 성능의 차를 만들고도 국내에서 시장 개척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해치백은 안돼’라는 선입견에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당연히 i30 실적이 좋을 리 없고요.

현대·기아차가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고민해야 합니다. ‘포니’를 처음 만들때의 마음, 일종의 ‘초심’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연구개발 투자비용, 매출액, 영업이익, 공장가동률 등 복잡한 방정식 속 문제를 해결할 ‘치트키’가 초심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된 날, 뜬금없이 현대·기아차가 나아가야 할 활로를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