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모든 행동이 의식의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특정 브랜드에 무의식적으로 손이 간다던지, 혹은 남성들의 경우 길거리에서 호감이 가는 이성을 보면 저절로 눈동자가 돌아가는 등의 현상들이 있다.

이같은 무의식적 행동에 대해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마케팅 교수 제럴드 잘트먼(Gerald Zaltman)은 인간의 욕구가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은 5% 남짓이며 나머지 95%의 욕구는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는 ‘95%의 법칙’으로 정리하기도 했다.

즉 사람들은 무의식 속에서 자신이 끌리는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인데, 여기서 영감을 받은 마케터들은 급기야 뇌과학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무조건 많이 팔아먹는’ 자신들의 목적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뉴로 마케팅(Neuro Marketing)이다.

마케팅-뇌과학 콜라보레이션 

뉴로 마케팅은 뇌신경을 의미하는 영단어 ‘Neuro’와 마케팅이 결합한 개념이다. 의미인 즉, 뇌 영상 촬영, 뇌파 측정, 시선 추적 등 뇌 과학 기술을 이용해 소비자들의 뇌세포 활성이나 자율신경계 변화를 측정해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시도다. 뉴로 마케팅은 세계의 유력 언론에서도 그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2005년 <포춘> 지는 뉴로 마케팅을 미래 10대 기술로 선정했고, <뉴욕타임스>는 식품, 화장품, 패션, IT, 영화 등 다양한 산업에서 뉴로 마케팅이 활용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공개적으로 자사의 브랜드 운영에 뉴로 마케팅을 적용했던 기업들로는 코카콜라, 아모레퍼시픽, 피엔지, 유니레버, 로레알, 나이키, 기아자동차, 20세기 폭스 등이 있다.

디즈니, 뉴로 마케팅을 연구하다 

글로벌 콘텐츠 제작업체인 디즈니는 뉴로 마케팅 광고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 행동을 파악하기 위해 ‘디즈니 미디어광고 연구실(Disney Media & Advertising Lab)’을 개설해 어떤 광고가 소비자의 주목을 끄는지를 분석했다. 

본 연구에서는 실험 참가자의 시선 변화를 측정하는 고글 형태의 추적기부터 얼굴 근육에 붙이는 장치로 표정 변화를 분석하는 컴퓨터, 심장박동 측정기 등으로 실험자들의 뇌파 반응을 측정했다. 실험을 통해 디즈니는 성별이나 연령에 따라 호감으로 작용하는 광고의 색상, 패턴 등이 다르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자사의 영상 콘텐츠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뉴로 마케팅은 인간의 신경학적 인지 과정을 바탕으로 소비자 구매 행동의 메커니즘을 파악해 마케팅에 적용시키는 과정이다. 이러한 시도는 소비자들의 구매 행동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고 광고를 만들어 마케팅 비용은 가능한 한 줄이고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각인을 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뉴로 마케팅 적용 사례들 

기아자동차의 ‘K7은 눈동자 움직임이나 뇌파를 측정해 자극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알아보는 ’암시적 측정‘을 브랜드 네이밍에 적용시켰다.  

기아차는 K7을 출시하기에 앞서, 국내외의 소비자 2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후, 별도로 소비자의 시선 추적과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를 활용한 측정을 바탕으로 신차 이름을 결정했다. 이러한 문자의 조합 방식을 ‘알파뉴메릭’이라고 한다. 측정 결과, 소비자들에게서 K라는 알파벳과 7이라는 숫자의 조합에 대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지는 무의식적 반응이 나타났다. 그렇게 기아차의 신차 이름은 K7이 됐다.  

뉴로 마케팅은 오프라인 매장의 상품 배치에도 활용되고 있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의 경우 매장을 방문하는 소비자들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를지 가늠하고, 소비자들의 동선을 고려한 인테리어나 상품 구성을 정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마트나 백화점들은 쇼핑 카트에도 뉴로 마케팅을 적용한다. 쇼핑카트의 크기가 점점 커지는 것은 소비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물건을 담아 가득 채우게 하는 판매 전략이다. 또한 매장에 오래 머무는 소비자일수록 무의식적으로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뉴로 마케팅의 암시적 측정법으로 밝혀졌는데, 이것이 백화점이나 마트매장 내에서 시계를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 출처= 11번가 홈페이지

온라인 마켓에서도 뉴로 마케팅이 적용된 사례가 있으니, 바로 오픈마켓 11번가다. 11번가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의 제휴를 통해 쇼핑몰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무의식적 뇌 반응을 측정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온라인 쇼핑몰의 상품 배치나 홈페이지의 메뉴를 구성했다. 이러한 구성 외에도 11번가는 전략적 뉴로 마케팅에 따라 수시로 디스플레이나 홈페이지의 유저 인터페이스를 개선하고 있다. 

사람 심리가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다 

뉴로 마케팅의 연구는 향후 마케팅 기법이나 브랜드 전략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면서 많은 기업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뉴로 마케팅은 물건을 많이 팔리도록 하는 ‘마법의 주문’은 아니다. 뇌신경과학 영역은 연구의 성과보다 아직까지도 규명되지 못한 부분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일부 소비자들에게서 나타난 구매 행동패턴을 일반화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강원대학교 심리학과 양병화 교수는 “한국에서 뉴로 마케팅 조사 연구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마케팅 및 뇌신경과학에 대한 이해를 마케팅 실무영역에 활용함으로써 그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하여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소비 심리의 과학적 해석과 신경윤리에 대한 고려를 통해 새로운 마케팅 연구 패러다임에 대한 정의 및 학술 기반 확립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