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국내 브랜드들이 프랜차이즈로 성공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뭘까? 필리핀에서 월 매출 1억원이 넘는 한국 브랜드 세 개를 런칭한 서울시스터즈 안태양 대표에게 그 노하우를 들어봤다. 안 대표가 런칭한 브랜드들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브랜드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때문이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맛”

브랜딩을 하는데 있어서 안 대표의 철학은 매우 확고하다. “‘왜 우리 브랜드가 아니면 안될까’라는 것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으면 절대 런칭하지 않아요. '필리핀 1위 기업'이라는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이 브랜드가 아니면 안되는 명확한 이유를 세워야 해요. 그렇게 정체성과 철학을 먼저 만들고 이 정체성을 흔드는 선택은 절대 하지 않아요”

2008년 필리핀으로 떠났던 안 대표는 2010년 필리핀 야시장에서 한국 음식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 필리핀에 한류 열풍이 불고 있었고 아직까지 성공한 한국인이 없다는 점을 주목했다. 한국에서 레스토랑 요리사로 일하던 동생에게 필리핀에서 음식 장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처음 장사를 시작한 곳은 금요일에만 열리는 야시장으로 하루 평균 관광객이 5000명이 넘는 곳이었다. 이 중 10%인 500명만 모아도 성공할 거라는 생각에 당장 쓸 생활비까지 모두 털어 시작했다. 하지만 첫날 매출은 5000원. 자릿세 10만원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다. 

안 대표는 “‘왜’ 사람들이 한국 음식을 사먹지 않을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제가 장사를 전혀 모른다는걸 알게 됐고, 책·TV·라디오 등에서 닥치는 대로 장사에 대한 정보를 찾았어요. 이게 아니면 안된다는 절박함이 있었거든요. 100인분을 준비해도 90인분 이상이 남으니, 야시장 벤더들을 매번 찾아가 인사하고 음식을 나눠주면서 평가를 부탁했어요. 손님들에게도 무료 시식을 하면서 맛이 어떤지, 왜 이 음식을 사고 싶지 않은건지 물어봤어요. 처음에는 말을 아끼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니까 평가를 해주기 시작했고 원하는 걸 요청하기도 했어요. 벤더들도 우리 가게를 입소문 내주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해외에서 한국 음식을 팔면 외국인 입맛에 맞춰서 레시피를 바꾸는데 저는 바꾸지 않았어요. ‘한국에서는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랑 튀김을 이렇게 먹는다’는 문화를 설명해주면서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맛이라는걸 강조했어요. 한국에 가지 않아도 한국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했죠” 한국 노래도 틀고, 한국말을 하면 서비스를 주기도 하면서 손님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한국인 여자애들 둘이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판다’는 소문이 나면서 안 대표를 보러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하루에 찾아오는 손님이 200명이 넘어가자 매대를 늘렸다. 하나로 시작했던 매대가 세 개가 됐다. 그런데 세 번째 매대는 매출이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저랑 동생을 보러 온 거지 떡볶이를 사러 온 건 아니었던거에요. 손님들이 주로 한국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거든요. 처음에는 떡볶이를 사먹으러 오는 사람들보다 저희랑 한국 드라마나 여행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러 놀러오는 사람이 더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우리가 아닌 브랜드를 찾도록 해야겠다 싶어서요.” 안 대표는 서울에서 온 두 자매가 음식을 판다는 점에 착안 ‘서울시스터즈’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렇게 매대를 늘려가던 와중에 손님들이 포장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완제품이 아니라 보관해 뒀다가 먹고 싶을 때 언제든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도록 한 반조리 제품에 대한 니즈였다. “야시장이 매일 열리지 않으니까, 반조리 형태로 포장을 해달라거나 언제든 찾아갈 수 있게 매장을 내달라는 요청도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레디투쿡(Ready to cook)' 패키지를 만들었는데 매출이 크게 올랐어요” 이후 서울시스터즈는 파티용 패키지까지 만들게 됐고, 야시장 매대 4개, 매일 운영하는 매장 3개를 열게 된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왜’라는 질문에 답이 나올때까지

안 대표가 서울시스터즈에 입힌 스토리로 손님들 사이에서 ‘떡볶이는 서울시스터즈’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필리핀에 있는 다른 한국 가게에도 떡볶이를 파는데 왜 떡볶이 하면 서울시스터즈를 떠올리게 됐을까 생각해보면 맛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서울 스타일’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되면서 서울시스터즈라는 브랜드가 힘을 갖기 시작한거죠.” 

서울시스터즈 인기가 높아지자 중국회사인 GNP트레이딩에서 인수를 제안했다. GNP트레이딩은 유명한 외국 브랜드 제품을 독점으로 필리핀에 유통하는 회사다. “서울시스터즈 브랜드에 대한 소유권은 제가 갖고 레시피, 직원 운영 등의 노하우는 모두 넘겼어요. 저도 좀 놀랐던 점은, GNP에 노하우를 넘기면서 필리핀에 있는 서울시스터즈 매장은 모두 문을 닫았는데 그 이후에도 한달에 한두통씩 서울시스터즈 떡볶이를 어디서 먹을 수 있냐는 페이스북 메시지가 계속 와요. 4년이 다 돼 가는데도요” 그만큼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강하게 남은 셈이다.

GNP 신사업개발부 본부장으로 일하면서 안 대표가 필리핀에 런칭한 브랜드는 ‘K펍 비비큐’와 ‘오빠 치킨’이다. 각각 5개, 3개 매장을 운영하는데 월매출 2~3억원, 1억원을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브랜드의 정체성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안 대표는 세세한 것까지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빠 치킨은 생닭을 제외한 모든 재료를 한국에서 들여온다. “오빠 치킨에 입혔던 스토리가 ‘이게 진짜(리얼) 한국 치킨이다’였거든요. 우리나라 치킨 브랜드가 외국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한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소스 때문이에요. 소스 재료의 70%가 물인데, 물이 비싼데다가 해외 배송하는 도중에 터지거나 상해서 마진 남기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현지 공장에서 소스를 만들면 마진이 크게 오를텐데 그럼 맛이 좀 달라요. 사실 고객들은 그 미묘한 차이를 잘 모를 수 있지만, 브랜드 정체성을 ‘리얼 한국 치킨’으로 잡았기 때문에 모든 걸 한국에서 공수해요. 대신 소스를 농축액이나 파우더 형태로 바꿔서 마진을 높일 수 있는 선택을 해 나가는거죠.” 직원 모집, 직원 교육, 인테리어, 운영 방침 등 모든 선택이 브랜드 정체성을 위반하지 않는지 매번 검토하는 꼼꼼함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하는데 초기에 비용이 많이 들어요. 필리핀은 바이럴 마케팅이 통하지 않는 곳이에요. 브랜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때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확실하게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가게를 열게 되면, 처음에는 설렁탕을 팔려고 시작했던 가게가 나중에는 온갖 음식을 다 파는 곳처럼 돼 버려요. 매출이 안나와 불안하니까, 당장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것 같은 품목을 이것저것 들여오게 되는 거에요. 그러다 보면 그 가게만의 색깔이 없어지게 돼요”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안 대표는 동남아 시장을 진출하려는 이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했다. 동남아에 대한 편견을 버릴 것, 브랜드 정체성을 찾을 것, 문화를 공부할 것. “‘동남아는 이럴거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가 볼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생겨요. 내가 하는 모든 생각은 틀릴 수 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요. 계속 강조하지만 외국에서 ‘프랜차이즈’로서 성공하려면 정체성 확립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에요. 브랜드를 런칭하려는 대표가 정체성을 모르면 직원도 알 수 없어요. 스타벅스가 어느 나라를 가든 같은 분위기를 주지만 메뉴는 현지에 맞게 다양화 된 것처럼, 정체성 위에 현지화를 입히는거에요. ‘왜’에 대한 답이 나올때까지 자면서도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필리핀이 못사는 나라라는 편견으로 그 사람들을 무시하면 안돼요. 그들도 그걸 느끼거든요. 그 나라 문화를 공부하고 존중해줘야해요”

안 대표는 국내 브랜드들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해 지난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제가 생각할 때 성공한 프랜차이즈는 재무재표를 열어봤을 때 실제 이익이 얼마나 좋은지에요. 동남아에서 한국에 관한 관심은 계속 높아지는데 아직 그만큼의 퍼포먼스를 내는 브랜드는 없는거 같아요. 요즘에는 자본도 많아져서 한국에 있는 브랜드를 프랜차이즈로 들여오기보다 직접 한국 음식 브랜드를 런칭하려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국내 브랜드로서 진출하려면 기회는 지금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는 동남아뿐 아니라 미국에도 스타벅스처럼 철학을 가진 한국 브랜드를 런칭하고 싶다는 안 대표. 그녀의 행보에 눈길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