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정부는 새로운 사회보험 중기 재정 추계를 내놨다. 내용을 보면 건강보험은 오는 2018년부터 당기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2023년부터는 적립금이 모두 소진될 것으로 전망됐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급여비 지출비중이 커지고 노인진료비에 대한 부담도 높아졌다는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문제는 ‘고갈’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난 2015년 말 발표한 2060년까지의 장기재정전망에서 누적적립금이 2025년 고갈될 것으로 예측했으나 인구추계, 사회보험제도 등에 큰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적자’를 앞세워 시기가 앞당겨질 것으로 발표했다.

정부의 이번 발표에 대한 의구심도 강해진다. ‘그래서 결론은 더 걷겠다는 것 아니냐’는 생각 말이다.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내 돈 내고 내가 보장받는다’의 개념이 아니다. 과거 경제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소득불평등과 이로 인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분배’의 목적에서 출발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발표를 두고 ‘더 내고 덜 받는 데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회보험제도의 본질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회보험을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과 같다. 부모가 늙어 소득이 없어 생활이 어려울 경우, 자식은 부모에게 금전 등을 제공해 부모가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한다.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부양에 대한 부담은 줄어들지만 자신은 어느새 늙어 부양이 필요한 시기를 맞이한다.

‘더 내고 덜 받는 데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개념은 돌아가신 부모의 무덤에 가서 ‘나도 이제 늙었으니 내가 드린 돈의 일부를 돌려받는 데 합의하겠습니다’라는 소리와 같다. 이게 말이 되는가. 이는 ‘내가 낸 돈을 돌려받는다’라는 사회보험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회보험은 ‘못 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 낸 돈을 부모로부터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후손으로부터 부양받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후손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일까. 혹은 못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합의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것일까. 아니다. 진짜 문제는 정부는 물론 사회보험기관들이 ‘국민들이 낸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표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표현을 쓸까. 만약 이러한 사실이 널리 알려진다면 누가 사회보험을 부담하려 할까. 그만큼 사회보험제도에 대한 불만이 높아질 수 있고 각 개인이 노후를 준비하려는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물론 개인이 자발적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것은 반길 일이지만 여기서 하나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미 사회보험은 ‘시작’했기 때문이다. 즉, 사회보험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보험 시스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며 이는 다양한 경로로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또 다른 문제는 사회보험 자체가 경제에 있어서 ‘배분’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에서 분배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고소득자의 자산을 저소득자에게 이전해 소득불평등을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강제적 이전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회적 제도를 통해 소득불평등의 문제를 조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보험제도 출발의 근본적 의의를 부각시키기보다는 ‘고갈’이라는 단어로 공포를 조장한다. 그리고 ‘적립금’ 문제에 집중하는 점이 눈에 띈다. 그렇다면 적립금에 연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자유주의 시대로 접어든 1980년대부터 성장이 멈추고 그동안 케인지안 정책을 실행한 많은 국가들이 구조적 재정적자에 시달리게 됐다. 동시에 만성적 총수요 우위 상황은 경기침체의 주범이 되기도 했다. 결국 재정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이는 ‘작은 정부’라는 포장으로 덮었다. 작은 정부는 정부의 영향력을 가급적 작게 유지하는 것이지만 본질은 예산 축소 등 재정지출을 졸라매는 데 있었던 것이다.

정부지출을 줄이기 위한 초기 방안으로는 복지지출의 낭비를 줄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됐으나 이후 복지지출이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아닌 더 가난하게 만든다는 인식이 확대됐다. 이후 인구구조 등의 문제가 부각되며 경제의 성장과 분배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논쟁은 뒤로 하고 여기서 다시 ‘적립금’ 문제만을 생각해보자. 사회보험의 적립금이 늘어나면 정부의 재정지출 부담은 낮아진다. 하지만 적립금이 늘어나는 것은 국민의 부담이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세금이든, 보험이든 ‘증가’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렇다고 경제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사회보험의 ‘분배’ 역할을 포기할 수 있는가. ‘고갈’로 ‘협박’하기보다는 사회보험의 역할을 명확히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물론 정부의 ‘쓸 데 없는’ 재정지출 낭비를 막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