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 금과 함께 안전자산을 대표하는 귀금속이지만 자산으로서는 항상 금보다 평가절하되어 왔다. 그 이유는 희소성에 있다. 희소성을 판단하는 단위는 ppb(Parts Per Billion)인데 1ppb를 기준으로 할 때 금이 4ppb, 팔라듐이 15ppb인 데 비해 은은 무려 75ppb이다. 즉 금보다 은의 희소성이 약 19배 떨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희소성을 고려해도 은의 가치는 지나치게 낮게 책정돼 왔다.

역사적으로 은은 금보다 희소성은 19배 떨어지지만 가격은 50~60배 낮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즉 희소성만 놓고 본다면 은 가격은 현재 수준보다 2~3배는 높게 형성되는 것이 맞다. 따라서 희소성 말고도 다른 요인들이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자료=한국거래소

◇귀금속에서는 밀리지만… 산업재로서는 금보다 ‘은’

무엇이 은을 저평가되도록 만드는 것일까? 바로 귀금속으로 쓰일 때 녹이 슨다는 것이다. 은은 순수한 공기와 물에서는 안정적 성격을 지니지만 오존 또는 황화수소를 함유한 공기와 물에 노출되면 변질된다.

반면 산업적인 용도로는 더 많은 쓰임새를 보인다. 은 생산량 중 투자 수요를 제외한다면 약 50%가 귀금속 또는 산업 금속으로 가공을 거쳐 시장에서 사용된다. 은이 산업 금속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는 단연 전기를 잘 전달한다는 점 때문이다. 비교적 비싼 탓에 구리가 전력용으로 더 많이 사용되기는 하지만 열 전도성과 광학 반사성에서도 은은 최고의 금속 중 하나다. 따라서 광학 반사가 중요한 사진 필름(거울)에 많은 양의 은이 사용돼 왔다.

 

또한 빛 전도율이 금속 중에 가장 높기 때문에 열과 빛 전도가 필수적인 현대 태양광 집전판, 전지 등에 주로 사용된다. 특히 디지털 카메라가 대세가 되면서 필름 수요는 감소하고 태양광 수요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로이터 GFMS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은의 산업용 수요는 전체 은 소비의 56%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태양광 집전판에 주목하라

태양광 집전판_출처=wikimedia commons.jpg

은의 용도는 20세기만 해도 사진기에 사용되는 필름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1998년만 해도 전체 은 수요의 31%가 필름용이었다. 그러나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으로 2001년에 23.5%, 2007년에는 13%로 비중이 급락하더니 2012년에는 6.8%까지 추락했다. 은 생산량이 매년 소폭 증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약 15년 사이에 필름용 은 수요는 80%가량 감소한 셈이다. 이에 ‘귀금속에서도 금에 밀리는데 산업 금속이라는 주 용도까지 사라지면 은의 가치는 더욱 하락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심은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필름이 사라진 자리에 값비싼 태양광 집전판과 배터리가 들어오며 반전의 계기가 됐다.

World Silver Survey 2016에 따르면 태양광 산업에 사용되는 은의 양은 연간 23%, 14.4백만온스(448톤)씩 증가하고 있다. 휴대전화 1대에는 0.2~0.3그램의 소량의 은이 사용된다. 데스크탑 컴퓨터 1대에는 0.75~1.25그램이 들어간다. 이에 비해 태양광 집전판(Solar Panel) 1대에는 20그램의 은이 사용된다. 태양광 판에 은을 얇게 씌우는 개념이다. 휴대전화의 약 100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세계적인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더불어 은의 수요 증가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태양광 집전판용 은 수요는 2000년대 후반부터 급증하고 있다. 

줄어드는 필름용 은 수요와 증가하는 태양광용 은 수요. 자료: Reuters GFMS, World Silver Survey 2016

사실 이러한 새로운 용도로서 은 수요 증가는 태양광 산업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배터리, 고체조명(SSL, Solid State Lighting), 전파식별(RFID,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등의 수요뿐만 아니라 물 정화시스템, 음식물 포장 및 보관, 공공위생 등의 분야에도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은 산업 분석 기관인 로이터 GFMS에 따르면 이러한 산업용 수요의 증가는 은의 희소성을 부각시켜 중장기적인 가격 상승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산업 금속으로서의 장점보다는 귀금속으로서의 단점이 아직까지 은의 가격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산업 금속으로서 은의 용도가 변화하면서 가격의 관점에서 보면 과거의 부정적인 요인을 상쇄할 가능성이 높다. 태양광 등 고부가 가치 산업의 등장이 주된 이유가 될 수 있다.

동전 및 메달용을 제외하면 장신구나 식기 용도로 수요가 증가하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동전 및 메달용 수요는 가공되지 않은 순수 투자용과 그 용도에서 차이가 없다. 따라서 은의 가치는 미래로 갈수록 귀금속보다는 산업 금속과 투자용 수요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유한한 매장량, 귀금속 & 산업재 성격 고루 갖춰 수요 지속 전망

전문가들은 현재 은은 금에 비해 매장량은 더 많으나 공업용 수요가 월등히 높아 유한자원임을 고려하여 향후 가치 상승은 오히려 금보다 더 높을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한국 금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매장량은 23만6000톤 수준으로 알려졌다. 연간 사용 규모를 고려했을 때 최단 10년 내 최장 20년 후 고갈될 것으로 예측된다.

유안타증권의 조병현 연구원은 “사실 은이나 금 같은 귀금속은 지금 같은 금리인상 국면에서 상승탄력이 다른 산업 원자재에 비해 덜하지만, 은은 산업용 금속으로서의 성격을 많이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락세로 돌아설 위험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2차전지, 태양광 분야에 꾸준한 수요가 이어지고 있고 특히 태양광 산업의 경우 트럼프 당선으로 친환경에너지가 위축될 우려가 있었지만 미국의 태양광 산업은 2020년까지 세재혜택 연장이 확정된 상황이며, 중국과 인도 등의 국가들이 여전히 수요를 받쳐주기 때문에 은 수요는 꾸준히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