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의 김정남이 북한 정권에 의해 화학 무기의 일종인 VX 테러로 목숨을 잃으며 화학 무기에 대한 문제가 다시금 환기됐다. 화학 무기는 수천 년 전부터 사용되어온 무기지만 1차 세계대전 중 ‘독가스’로 일컬어지는 포스겐(Phosgene)이 사용된 이후로 화학 무기의 사용이 본격화되었고, 현대에 들어서면서 여러 협약으로 제약이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전장 위에서 드물게나마 불법적인 사용이 자행되고 있다.

이들 가스는 민간을 대상으로 사용화될 경우가 문제다. 이미 민간에 대한 화학 무기 사용의 위협성은 1995년 일본 옴진리교가 도쿄 지하철에서 사린 가스를 살포한 가스 테러 사건으로 검증된 바 있다. 이제는 화학 무기가 대량살상무기(WMD)로 지정되어 여러 관련 기구들에 의한 지속적인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고, 화학 무기 사용 시에 따라오는 정치적 부담 때문에 전쟁터 위에서 화학 무기의 사용이 현저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소리 없는 무형의 병기는 한 번 풀리는 순간 엄청난 살상력을 수반하므로 항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어야 한다.

 

화학 무기의 역사

앞서 말했듯 인류는 이미 오래 전부터 화학 무기를 응용해 사용해왔다. 대표적인 형태는 독을 바른 화살을 사용한다든가, 공성전 시 중독성 연기를 피운다든가, 우물에 독을 탄다든가, 화학적으로 조합된 액체를 끓여 적에게 끼얹는 것 등이 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600년 아테네가 키르하(Kirrha)를 공략하면서 도시로 들어가는 플라이스트러스 강에 설사를 유발하는 독성 헬레보어 식물을 풀어 적의 전투력을 상실시키고 전의를 꺾었던 사례가 있고, 기원전 479년에는 펠로폰네소스 군이 플라타이아이(Plataea)를 공략하면서 유황을 태운 연기를 사용했던 기록도 등장한다.

근현대에 들어와 화학 무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차 세계대전 때다. 독일은 벨기에 이프르(Ypres) 전투 때 170톤에 달하는 염소 가스를 투입해 1100명의 연합군 병사가 사망하고 7000명이 중독되었다. 이어 루(Loos) 전투 때는 영국군이 염소 가스를 독일군에게 마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전쟁은 쌍방 간의 화학전 양상으로 비화됐다. 1차 세계대전 말까지 양측은 12만4000톤에 달하는 화학 무기를 상호 간에 살포했고, 공식 기록으로는 130만명이 화학 무기에 의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이 중 10만에서 26만명 가까이가 민간인 희생자였는데, 이는 화학 무기 특성상 전쟁터에서 살포됐더라도 바람에 의해 인근 지역으로 퍼져나가 민간인 피해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1차 대전으로 화학 무기의 효과가 검증된 지 불과 20년 뒤인 2차 세계대전 때도 다시 화학 무기가 등장했다. 특히 일본군은 중국에 침공하면서부터 최루가스와 머스터드 가스 등을 사용했고, 그중 1943년 창더(常德) 전투 때는 국민혁명군의 방어가 예상 외로 굳건하자 대량의 화학 무기를 살포했다. 일본은 동남아 등지로 진출하면서도 빈번하게 화학 무기를 썼지만 보복을 우려해 서방 국가들을 상대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상대적으로 독일의 화학 무기 사용이 많지 않았다는 것인데, 일단 1차 세계대전의 경험에 비추어 한쪽이 화학 무기 사용을 시작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화학전 양상이 된다는 점을 우려하기도 했고, 수송수단으로 말 등의 가축을 다수 사용했기 때문에도 자제한 부분도 있다. 물론 일부 전선에서 소량의 화학 무기가 살포된 기록이 있으나 1차 세계대전의 경험 때문에 추축국, 연합국 모두 화학전에 대비한 방호 장비를 지급해 피해가 크지 않았다.

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각종 협약 등으로 화학 무기 사용이 전반적으로 자제되는 분위기지만 여전히 화학 무기는 전쟁터 위에 등장한다. 베트남 전쟁 때는 열대 우림의 수목을 제거할 목적으로 뿌린 것이긴 하지만 ‘에이전트 오렌지’가 인명 피해를 야기했고, 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때는 이라크 군이 화학 무기를 머스터드 가스를 먼저 사용해 이란군 병사 10만명 이상이 살상을 당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시리아 내전이 진행되면서 알‧아사드의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 무기를 반군에게 사용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던 예가 있다.

 

가장 치명적인 화학 무기

화학 무기의 정의는 ‘화학 작용을 통해 죽음, 부상, 일시적 무력화, 감각기관을 자극하는 화학물질’을 말한다. 여기에는 염소, 포스겐, 디포스겐, 클로로피크린, 황 겨자(Sulfur Mustard), 질소 겨자, 포스겐 옥심, 루이사이트, 시안화수소, 염화시안, 아르신, 타분, 사린, 소만, 시클로사린, VX가 포함된다. 가장 살상력이 높은 것은 이번 김정남 암살사건 때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VX다. 신경성 작용제로 알려진 이 물질은 냄새나 맛이 없으며, 옅은 갈색을 띠기 때문에 차량 윤활유로 오인하기 쉽다. 50년대 영국에서 개발된 VX는 기화 속도가 느려 수일간 지속성을 가지며, 접촉 후 불과 수 초 안에 작용해 질식 및 심장마비를 유도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다. 특히 소량으로도 높은 치사율을 보여 UN도 687호 결의안을 통해 대량살상무기로 지정했다. 현재 이 물질은 화학 무기 협정을 통해 연구, 의료, 제약 목적에 한해 연구 시설당 연간 10㎏ 이하로만 생산이 가능하다.

가장 제조와 확산이 쉬운 화학물질은 포스겐으로, 흔히 살충제 성분에 많이 포함되는 제조가 쉬운 신경작용제다. 1차 대전 때 광범위하게 쓰인 이 물질은 대전 기간 중에 발생한 화학 무기 피해의 80%를 야기했다. 1915년 12월 19일에 독일군이 포스겐과 염소가스를 섞은 물질 88톤가량을 영국군에게 대량 살포해 120명이 사망하고 1069명이 중독된 적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가장 흔하게 사용된 화학 무기는 머스터드 가스다. 이름 자체는 특유의 부패한 겨자 혹은 마늘 냄새에서 유래했으며, 노르스름한 갈색을 띤 수포작용제로 분류된다. 접촉 시 피부가 빨갛게 변한 후 고통을 수반한 대량의 수포가 피부 및 호흡기 내에 발생하는 특징이 있으며 눈, 호흡기관, 피부가 자극되다가 신체 세포를 손상시킨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의 사례에서 보듯 치명성은 5%에 불과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전쟁에서 자주 사용된 이유는 생산이 쉽고 지속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화학 무기 제한 협정과 문제점

세계 최초로 화학 무기의 사용을 제한하는 협정은 1675년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 간에 체결된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협정으로, 아직 구체적인 ‘화학 무기’의 제한까지는 아니었으나 상호 간 총탄에 독성 물질을 넣지 않기로 합의했던 최초의 금지 협정이다. 본격적인 금지 협정은 국제연맹(LN, League of Nations)이 주도한 1927년 제네바 협정(Geneva Protocol)으로, 이는 1차대전 후 발생한 리프 전쟁(1927)에서 스페인군이 모로코의 베르베르족을 상대로 머스터드 가스를 무차별 사용하면서 제동 장치에 대한 여론이 일어 65개국이 비준하면서 1928년 2월부터 발효됐다. 하지만 1930년 타이완의 우서(霧社)에서 대만 고산족의 대대적인 봉기가 발생하자 일본이 협정을 무시하고 머스터드 가스를 사용하고, 1935년에는 협정 서명국임에도 무솔리니가 아비시니아를 침공하면서 셀라시에 황제 친위대에게 화학 무기를 사용한 사례에서 보듯 사실상 위반 국가에 대한 제재 수단이 없다는 단점이 있었으며, 화학 무기와 생물 무기의 사용 금지에 대해선 언급했으나 이에 대한 생산, 보관, 이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허점이 있었다. 이런 단점은 1972년 생물무기 금지협정(BWC)과 1993년 화학 무기 금지협정(CWC)를 통해 보완되었다. CWC는 화학 무기와 재료의 개발, 생산, 저장 및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국제기구인 화학 무기 금지기구(OPCW, Organisation for the Prohibition of Chemical Weapons)가 관리 및 감시 업무를 수행한다. 총 165개국이 서명하고 65개국이 비준한 이 협정은 1997년 4월부로 발효되었으며, 사실상 북한, 이집트, 남 수단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가 가입했다. OPCW는 체계적인 방법으로 화학 생산 시설을 감시하고 사찰업무를 실시하며, 화학 무기 제조 혹은 사용 의혹에 대해서 철저하게 수사하는 방법으로 화학 무기 감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OPCW는 2016년 10월을 기준으로 전 세계에 확인된 화학 무기 재고의 93%를 처분했다고 발표했다.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화학 무기의 위협

화학 무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온 무기임은 맞으나, 그 잔학성과 비인간성은 20세기에 들어선 뒤부터 검증됐다. 엄청난 희생 끝에 각국은 전쟁터에서 화학 무기 사용을 제한하거나 자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으나, 냉전 시기만 해도 전 세계 각국이 암암리에 비축해왔고, 아직도 그럴 것으로 추정되는 국가들이 있다. 이는 여전히 화학 무기를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상황’에 불법적으로 쓰는 대량살상무기’라고 이해하는 관념 때문으로 보인다. 더 심각한 것은 이번 김정남 암살의 경우나 옴진리교 사건에서 보듯 민간을 대상으로 한 테러에 이용되는 경우다. 특히 최근 망명한 북한 출신의 태영호 전 영사는 한국이 민간 단위의 화생방전 대비태세가 낮아 북의 화학 공격 도발이 있을 시 큰 피해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국도 항상 테러 안전국일 수는 없으니만큼 분명히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