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쉐보레 올 뉴 크루즈 / 출처 = 한국지엠

한국지엠이 아직 고객 인도도 시작되지 않은 신차 ‘쉐보레 크루즈’의 가격을 벌써부터 인하했다. ‘미련한 가격 정책’을 고집하다 결국 시장에 백기를 든 모양새다.

지난 1월 국내 시장에 최초로 공개된 이 차는 3월 초부터 고객들에게 순차적으로 인도될 예정이다. 출고에 앞서 진행된 사전계약 기간 동안 끊임없이 ‘가격이 비싸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최대 200만원 가격 인하 ‘승부수’

한국지엠은 ‘올 뉴 크루즈’의 가격을 트림별로 최대 200만원 인하해 다음주 고객 인도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8일 밝혔다.

당초 크루즈의 판매금액은 1890만~2478만원으로 책정된 바 있다. 이번 조치에 따라 1690만~2349만원으로 가격표가 바뀌었다.

기본 모델인 LS트림의 가격을 200만원 내리며 승부수를 띄웠다. ‘1600만원대 준중형차’라는 이미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LT트림부터 선택 사양으로 제공되는 내비게이션 패키지의 가격도 40만원 인하했다.

이 같은 가격 변동 내용은 신규 구매자뿐 아니라 사전계약 고객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방침이다.

문제는 한국지엠의 이번 파격 결정을 바라보는 시장과 소비자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

신형 크루즈는 실차 공개 이후 꾸준히 ‘가격이 비싸다’는 논란에 휩싸여왔다. 경쟁차로 흔히 지목되는 아반떼를 훌쩍 뛰어넘어 중형차를 넘보는 수준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올 뉴 크루즈는 1.4 터보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했다. 동력성능은 153마력(5600rpm), 24.5kg·m(2400~3600rpm) 수준이다.

아반떼 1.6 가솔린 모델의 가격은 1410만~2165만원이다. 단순 비교할 경우 크루즈가 123만~480만원 더 비싼 셈이다. 1.6 터보 엔진에 7단 DCT를 조합해 크루즈보다 한차원 높은 주행감각을 제공하는 아반떼 스포츠의 가격도 2000만~2455만원 정도다.

크루즈 최상위 트림에 옵션을 모두 추가할 경우 가격은 2848만원에 이른다. 쏘나타 중간 트림이나 최저사양의 싼타페를 넘볼 수 있는 수준이다. 일각에서 크루즈의 가격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던 이유다.

한국지엠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분석이다. 비싼 가격 탓에 초기 시장 반응이 시원치 않았던 탓이다.

신형 크루즈의 사전 계약 고객은 약 2000명 내외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반떼의 지난달 월간 판매량이 7353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대 이하의 수치다. 지난해 출시된 신형 말리부의 경우에도 사전계약 8일만에 1만명의 고객이 몰려들었다.

일각에서는 한국지엠의 영업 전략 전반에 수정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강도 높은 비판도 나온다. 신차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가격·물량 수급 등에서 매번 잡음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대박 신차’라 불렸던 말리부의 경우 초기 물량을 소극적으로 예상해 고객 인도가 수개월씩 지연됐었다. 이 때문에 화려했던 신차 효과는 금방 시들었고, 쏘나타-SM6와 경쟁하는 중형 세단 시장에서 상대를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앞서 출시된 준대형차 임팔라와 구형 말리부의 디젤 모델 출시 당시에도 비슷하게 연출된 바 있다.

한국지엠은 오펠의 유럽 철수 등 대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어 국내 시장에서의 선전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달 내수 판매 실적이 국내 완성차 5개사 중 유일하게 뒷걸음질쳤다. 스파크, 말리부, 트랙스 등 일부 차종에만 수요가 집중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신형 크루즈의 ‘대박’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크루즈가) 출시 당시에는 중형차 아래나 소형 SUV 급 세그먼트를 개척하며 위쪽으로 외연을 확장할 구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가격장벽 탓에 이 같은 전략이 잘 안 통하자 아래쪽으로 고객층을 넓혀가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고객과 시장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가격 인하를 결정한 것”이라며 “할인 프로모션을 운영하는 것보다 공격적으로 가격을 설정하는 게 신뢰도 유지를 위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