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은둔형 영상제작자가 앞뒤 안 보고 드론을 질러버렸다. '드론을 사버렸다' 첫번째 이야기.


내가 드론에 대한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드론이란 걸 사게 될 줄도 몰랐다. 드론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IT 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가의 취미를 가진 키덜트도 아니다. 나에게 드론을 살 만한 구실은 없었다.

나는 작은 영상 제작 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니,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업은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나가기 보다는 내 골방 사무실 데스크 위 모니터 안에서만 이뤄졌다. 그런데 지금 내 데스크 위에는 촬영용 드론 한마리가 있다. 내가 어쩌다 드론을 사게 됐나. 그것은 작년 말 찾아온 드론 시장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철없다는 소리를 피해서 드론 구매하기

왜 드론을 구입하는가? 나만의 비행체를 가지고 있다는 뿌듯함 자체. 날릴 때 손끝에서 느껴지는 컨트롤러의 조작감. 이런 것 들은 정말 무시할 수 없는 드론의 매력이다. TV만 보아도 키덜트의 한 카테고리로서 드론은 이제 완전히 자리매김 한 듯하다. 얼마 전 가수 김건모씨가 한 방송에서 자신의 드론 사랑을 한 껏 보여줬는데, 그중 압권은 드론으로 상추를 식탁까지 배달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소리없는 탄성을 질렀지만, 함께 방송을 시청하던 여자친구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철.없.다. 그래. 내 나이에 철없다는 주변의 반응을 피하면서 드론을 사려면 좀더 대외적으로 납득할 만한 목적이 필요하다.

박재묵 모즈 크리에이티브비쥬얼스튜디오 대표

사람들이 드론을 구입하려는 또다른 목적은 바로 항공촬영이다. 가장 활발히 드론이 활용되고 있는 분야. 나는 영상제작자니까. 드론은 나에게 새로운 돈벌이를 선사할 것이다(라고 주변 사람들을 설득했다). 드론계의 애플이라 불리는 DJI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가격을 확인해봤다. 낭패다. 전문가급 촬영 드론인 인스파이어가 400만원이 넘는다. 그 아래 급인 팬텀은 가격이 훨씬 착하다. 그런데 잠깐. 이런 녀석들은 부피가 크다. 전용 가방에 넣어 거북이 등껍질처럼 메고 다니거나, 매번 차에 실어 이동해야 한다. 드론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치명적인 단점이다.

결과적으로 토이드론은 내게는 필요없는 물건이고, 전문가용 촬영드론은 가격과 부피가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당시 드론시장을 눈여겨보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공감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출처=DJI

새로운 드론 시장의 출현

작년 9월, 액션캠의 대명사 고프로와 드론계의 애플이라 불리는 DJI가 일주일 간격으로 새로운 드론을 발표했다. 두 제품 모두 갈등하던 나의 지갑을 열어줄만한 제품이었다. 성능과 경제성, 휴대성을 모두 겸비한 확실한 대안이었다. 각기 조금 다른 매력을 가진 제품들이었기에 선택은 쉽지 않았다. 현 시점에선 고프로가 제품의 전량 리콜을 발표하면서 승자가 확실히 가려진 듯 하지만(나는 다행히 옳은 선택을 했다) 중요한 것은 고프로와 DJI가 새로운 드론 시장을 열었다는 것이다.

과연 100만원대 접이식 촬영 드론을 새로운 드론시장이라 지칭할 수 있는가? 적어도 지갑을 활짝 연 나의 관점에선 혁신이다. 최초의 아이폰도 새로운 기술은 아니었다. 그냥 작게 만든 휴대용 컴퓨터였으니까. 하지만 그 제품이 수많은 개인의 지갑을 열게 했다는 관점에선 혁신이다(라고 설득해본다). 한 개인이 대단한 전문 촬영자가 아니어도 멋진 항공촬영을 찍어볼 수 있다는 것. 1인 미디어의 퀄리티를 프로덕션 레벨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 (난 정말 드론을 잘 샀다.) 이것이 새로운 드론 시장의 개척이자 혁신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제발 잘 샀다고 해주세요.)

은둔형 작업자는 그렇게 드론쟁이가 되다

바깥의 햇살보다는 데스크 위의 불빛을 더 많이 쬐던 나는 요즘 매주 드론 가방을 가볍게 둘러메고 드론의 성지라 불리는 인천 송도로 찾아간다. 덕분에 예전보다 충분한 광합성으로 면역력도 키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렇진 않아도 드론은 내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강추위가 무섭지만 멋있는 풍경을 담을 수 있는 곳이라면 주말에 시간을 내서 가고 싶어졌다. 드론을 날리기엔 아직 악조건이 많은 계절이다. 컨트롤러를 잡은 내 손이 시려도 나만의 비행체를 조종하는 손맛은 짜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