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직장 여성인 J 씨는 최근 남자친구와 함께 <존 윅 : 리로드>를 감상했다. 할리우드 배우 키아누 리브스의 열광적인 팬인 그녀로서는 보지 않을 수 없는 영화였다. 남자친구는 영화 내용이 다소 폭력적인 것 같다며 다른 영화를 보자고 권유했지만 J 씨의 주장을 꺾을 순 없었다. J 씨에게는 키아누 리브스의 액션 장면 하나하나가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영화를 본 후 J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감상평을 남겼다. ‘키아누 리브스의 액션은 스트레스를 날려준다. 좀 잔인한 것 같지만 꼭 봐야 할 영화’  

우리나라 영화등급 체계상 ‘청소년관람불가’ 이른바 청불영화는 미성년자가 관람할 수 없다. 영화 내 성적 묘사나 폭력의 수위가 미성년자들이 보기엔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청불영화로 지정되면 흥행에는 불리함을 안게 된다. ‘전체 관람가’나 ’12세 관람가’, 또는 ‘15세 관람가’에 비해 영화를 볼 수 있는 전체 관객 숫자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제작사나 배급사들은 흥행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당연히 조금이라도 낮은 연령대의 등급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계에서는 청불영화의 흥행 기준을 400만 정도로 보고 있다. 아무리 흥행이 잘 되어도 400만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국내 영화시장에 1천만 영화가 1년에도 몇 편씩 쏟아지지만 정작 청불영화가 이 수치에 이르기는 쉽기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청불영화 흥행 규모에 대한 기존 상식이 깨지고 있다.

2015년 개봉했던 <내부자들>은 개봉 이후 무려 707만 관객을 모았다. 감독 확장판이라 할 수 있는 ‘디 오리지널’을 본 208만까지 합하면 <내부자들>이란 제목을 달고 무려 915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청불영화의 흥행 기준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400만명을 두 배 이상 뛰어넘는 놀라운 흥행 성적이다.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틀을 뒤흔든 <킹스맨> 역시 결국 6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청불 외화 흥행의 역사를 다시 썼다. 이처럼 흥행에 성공한 청불영화들을 보면 관객 차원에서 대체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흥행 확대의 가장 큰 힘은 SNS를 통한 긍정적인 입소문이다. <내부자들> 개봉 당시 언급된 빅데이터를 살펴보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단어는 ‘잔인’이었다. 다소 잔인한 장면들 때문에 개봉 초기에는 영화의 확장성에 대해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다른 영화와는 달리 ‘잔인’ 뒤에 긍정적인 바이럴이 뒤따랐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예컨대 ‘잔인하지만 재미있다’, ‘잔인하지만 멋있다’, ‘잔인하지만 몰입된다’ 등의 반응들이 그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바이럴은 영화 흥행에 불을 붙이면서 전체 관객 수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킹스맨> 역시 비슷하다. 청불 등급으로 개봉한 이 영화는 상당히 잔인한 장면들이 들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바이럴보다는 긍정적인 바이럴의 비중이 훨씬 높았다. ‘잔인함마저도 아름답다, 할리우드 액션의 틀을 바꿨다’ 등 엄청난 호평들이 SNS를 타고 확산됐다.

주로 영화를 보는 관객층에서도 뚜렷한 특징이 엿보인다. 대체로 20대가 가장 먼저 관객을 끌고 30대가 받쳐주는 모양새다. <내부자들>은 전체 관람객 중 2030의 비중이 74%에 달했다(이하 CGV 고객 기준). <킹스맨>은 이보다도 더 높아 거의 80%에 육박했다. 4050 영화 관객이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청불영화의 흥행을 이끄는 것은 2030이란 반증이다. 여기에다 아이러니하게도 청불 액션 영화의 흥행을 주도하는 것은 20대 여성 관객이다. <킹스맨>의 경우 전체 관람객에서 20대 여성의 비중이 32%에 이르렀다. 소재가 다소 무겁고 잔인함의 수위가 높았던 <살인의뢰>, <방황하는 칼날>의 경우에도 각각 관람객 중 33%, 36%가 20대 여성이었다. 주로 남성들이 선호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흔드는 결과다.

천만영화를 능가하는 재관람과 나홀로족의 활약도 눈에 띈다. 영화 관람이 가능한 기본 관객이 적기 때문에 재관람을 통해 한 관객의 관람 횟수가 늘어나야 하는데 흥행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이 조건을 만족시킨다. 특히 <내부자들>은 감독판인 ‘디 오리지널’이, <킹스맨>은 4DX 등 특별관이 재관람의 진원지였다. 특히 나홀로족이 재관람을 견인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이러한 청불영화의 흥행경향이 나타나며 제작사나 배급사들은 고객 관점의 새로운 접근 방법이 필요해졌다. 이런 상황을 마케팅에 잘만 활용한다면 청불영화 1천만 관객 시대도 현실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