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 이지무브(출처=이지무브)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계절. 누구나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쫙 펴보고 싶다.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러 문 밖을 나서 걷거나 자동차를 타고 먼 거리를 향하기도 한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 장애인과 노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김 모 씨(여)처럼 장애인 가족도 마찬가지다. 그의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의 장애 아동이다. 선천적인 이동장애로 신체활동이 어렵다.

휠체어를 탄 아들과 일반 차량을 이용해 외출하기는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체형은 커졌고, 김 씨에게는 점점 어려운 일이 됐다. 휠체어를 탑승시킬 수 있는 복지차에 관심이 생겼다. ‘레이 이지무브’에 시선이 갔다. 그간 살펴본 복지차들은 대부분 9~10인승이었다. 4인 가족에게는 과분했다. 무엇보다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경차를 개조한 레이 이지무브를 선택한 배경이다.

김 씨는 레이 이지무브를 타고 나선 첫 외출을 회상했다. 그는 “(레이 이지무브는) 시승해본 차 중 휠체어 탑승 슬로프 경사가 가장 완만했다. 상대적으로 손쉽게 아이를 차에 태울 수 있어 참 반가웠다”며 “승합차보다 크기가 작아 주차도 편리했다”고 말했다.

 

설립 6년 만에 흑자전환기 맞아

사회적 기업 ‘이지무브’는 이동약자들의 불편을 경감시켜줄 다양한 제품을 제조·판매하고 있다. 장애인 활동보조기구, 슬로프형 복지차 등이 주력상품이다. 전문 경영인 오도영 대표가 이끌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수익 내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수입제품이 주를 이루고 있는 국내 시장에 이지무브발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지난해 6월 이지무브는 경기도 화성 공장에서 창립 기념행사를 가졌다. 지난 2015년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처음 마련된 행사였다. 설립 6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앞서 반짝 순익을 올렸지만 내세울 만한 실적이 아니었다는 판단이다. 이지무브 측이 2015년을 흑자전환기로 보고 있는 이유다. 지난해 기준 전체근로자는 23명이다. 관련학과 및 전문 자격증 소지자는 12명에 달한다.

이 회사는 지난 2010년 6월 설립됐다. 당시 현대자동차그룹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출자한 뒤 지분 70%를 공익법인에 기부했다. 사명은 현대차그룹 사회공헌사업 브랜드 ‘이지무브‧세이프무브‧그린무브‧해피무브’ 가운데 장애인 이동편의 증진 사업명인 이지무브에서 따왔다.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고 독자경영을 이어왔다.

이지무브는 생애주기에 따라 장애인 제품군을 확대해왔다. △장애아동을 위한 유모차형 휠체어 △성장기 필요한 자세교정기구 △성인에게 적합한 전동 휠체어 등이다. 지난 2013년에는 복지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듬해 본격적으로 납품을 시작했다.

이지무브 제품군은 복지차, 전동보장구·수동휠체어, 장애인 자세유지기 등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이 회사는 지난 2015년 8월 서울모터쇼에서 교통약자를 위한 복지차 ‘레이 이지무브’를 처음 공개했다. 복지차는 노인이나 장애인 같은 이동약자가 휠체어에 탑승한 채 이동할 수 있는 차량이다. 차량 하부에 후방 경사로를 설치해 휠체어가 탑승 가능토록 한다. 이른바 슬로프 기능이다. 앞서 2014년에는 ‘올 뉴 카니발 이지무브’를 보급했다.

레이 이지무브는 경차를 활용한 만큼 소비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그간 복지차는 카니발, 스타렉스 등 상대적으로 고가인 대형차량이 활용돼 왔다. 이 차는 특수 개조를 통해 장애인이 사용하지 않을 경우 기존 정원인 5인까지 탑승 가능하다. 손으로도 엑셀과 브레이크를 조작할 수 있는 운전보조장치가 적용됐다. 발을 사용하기 불편한 장애인을 위한 장치다. 이지무브는 레이 이지무브 개발을 위해 현대차 남양연구소와 연구협력, 기술 멘토링 등을 진행했다.

이지무브 복지차는 개조 시 현가장치 등 안전에 직결된 주요 부품을 훼손하지 않는다. 현가장치는 차대 프레임에 바퀴를 고정해 흔들림이 직접 차제에 전달되지 않도록 하는 완충 장치다. 이지무브 관계자는 “코너링 같은 상황에서 차량 흔들림이나 기울기를 조절하는 현가장치는 안전성과 직결된다”며 “(복지차 개조 시) 편의상 이 같은 부분에 개조를 가하는 경우가 있다. 자체 기술개발을 통해 원래 차량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재료 차량 등은 각종 안전기준을 통과한 제품이다. 개조 시 훼손 부문을 최소화해야 차량뿐 아니라 운전자 안전을 강화할 수 있다”며 “사후관리도 (자동차) 제조사를 통해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모차형 휠체어가 눈길을 끈다. 이지무브는 지난 2011년부터 유모차형 휠체어를 제조·판매하고 있다. 그간 국내에서 유통되던 유모차형 휠체어는 전량 수입제품이었다고 이지무브 측은 설명했다. 수입 과정을 거친 까닭에 국내 소비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됐다. 이지무브 제품 출시 후 전체 시장 가격이 20%가량 저렴해졌다는 부연이다. 수입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보강한 것.

유모차형 휠체어 ‘아이체어프로’에는 지지벨트, 머리 받침대, 경사조절 등 장애아동을 위한 기능이 탑재됐다. 사용자가 바른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시트와 발판에는 틸팅이 채택됐다. 틸팅은 각도의 범위를 선택할 수 있는 기능이다. 80~170도까지 경사 조절이 가능하다. 근육 긴장을 완화시키고 자세 변화에 용이하다. 신체 발달에 따라 좌석 길이와 발판 높이 조절이 가능하다.

▲ 아이체어프로(출처=이지무브)

자세유지기 같은 맞춤형 제품에는 취형 작업이 선행된다. 사용자별 신체 특성을 파악하고 치수를 잰다. 장애인마다 체형과 증상이 다르기 때문. 척추측만을 겪고 있는 뇌병변 장애인을 위한 자세유지 의자를 예로 들어보자. 직접 방문을 통해 사용자의 신체 상태, 특이사항 등을 측정한다. 1차 취형 작업이 완료되면 재방문해 확인 과정을 거친다. 개선사항을 살핀 후 제품을 생산하고 전달한다. 판매를 마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체적으로 해피콜을 실시한다. 사용상 문제점이나 불편한 점을 확인하고 사후관리를 제공한다. 수도권은 이지무브가 직접 취형 작업을 진행한다. 비수도권은 연계 대리점을 통해 실시하기도 한다.

 

열악한 시장 상황 속 전력투구

이지무브가 몸담고 있는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대부분 이미 상용화된 제품들이다. 해외 기업이 이끌고 있거나 특정 기업이 과점하고 있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다. 후발업체로서 차별화를 꾀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쳐질 개연성이 크다. 지난 2011년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한 배경이다. 신제품 개발을 위해 기존 제품을 연구한다. 한국인 체형과 국내 도로 사정을 고려해 국내 소비자에 최적화된 제품을 만들어낸다. 연구소는 신제품 개발과 더불어 국립재활원, 국토교통부 등 보조기기 관련 정부 국책연구과제도 수행하고 있다.

복지차 시장도 마찬가지다. 업계는 국내 복지차 수요를 연간 400~500대 정도로 추산한다. 지방자치단체나 사회공헌 차원에서 대기업이 구매하는 수준이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장애인이나 가족이 차량을 구입하기엔 부담도 만만치 않다. 개조비용을 따져보면 원래 차 가격에 700만~1500만원 정도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 연간 7000여대 복지차 제작이 이뤄지는 일본 등 선진시장과 비교할 때 열악한 실정이다.

‘적정 가격’ 선정에 대한 이지무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배경이다. 이지무브 관계자는 “다양한 장애와 달리 적은 사용 인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대량생산을 통한 생산비의 절감이 쉽지 않다. 보조기기 분야의 유일한 사회적 기업인만큼 최소 마진으로 안전한 제품을 공급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