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의 반도체 지분 인수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낸드플래시 2위 사업자의 인프라를 누가 품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관련 업체들의 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도시바가 천문학적인 원전 사업 손실로 사실상 낸드플래시 사업을 통째로 넘기는 방안을 고려하는 한편, 분할 매각 방식도 비중있게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업계 1위 삼성전자가 시장 독과점 등의 문제로 이번 인수합병 전투에 뛰어들지 않은 상태다.

업계에서는 크게 세가지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고있다.

먼저 SK하이닉스와 홍하이의 연합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6일 전자공시를 통해 도시바로부터 새로운 매각 제안을 받았다고 밝힌 상태다. 이에 앞서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도시바 지분 인수와 관련해 "제안이 오면 검토하겠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밝힌 상태다.

▲ 출처=한국반도체산업협회

문제는 대금이다. 최초 2조원 가량의 머니게임이 예상되었으나 지금은 무려 25조원에 달하는 '쩐의 전쟁'이 예고되기 때문이다. 금액이 올라가는 한편 지분도 상승하지만 25조원이라는 금액은 하나의 기업이 감당하기에 어려운 액수임에 분명하다.

국내기업의 해외기업 인수합병에 있어 역대최고로 알려진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도 9조3000억원 수준에 그친다.

자연스럽게 홍하이와의 협력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에 앞서 지난 1일 홍하이의 궈타이밍 회장은 샤프 디스플레이 공장 기공식에 참여해 "도시바를 위해 자금을 쏟아붓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다만 단독으로 입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액수도 문제지만 홍하이는 태생적으로 글로벌 하청기업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한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반도체 역량이 낮기 때문이다. 아무리 2위 사업자의 낸드플래시 인프라를 가져온다고 해도 단독으로 운영하면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런 이유로 홍하이가 D램 2위, 낸드플래시 5위 사업자인 SK하이닉스와 협력해 도시바 낸드플래시 사업을 흡수해 시너지를 노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인은 몽둥이로 때려야 한다"는 지론을 펴며 노골적인 혐한감정을 드러내는 한편, '타도 삼성전자'를 외치는 궈타이밍 홍하이 회장이 유독 최태원 SK그룹 회장과는 가까운 사이라는 점도 이러한 전망에 설득력을 더한다.

실제로 궈타이밍 회장은 최태원 회장의 중국시장 진출 과정에서 나름의 협력관계을 보여줬으며, 최태원 회장이 수감되었을 무렵에는 한국을 찾아 그를 면회하기도 했다. 출소 후 최태원 회장은 중국과 대만 일대를 돌며 궈타이밍 회장을 만나기도 했으며, 양사는 스마트팩토리 등 다양한 접점을 통해 우애를 다지는 상황이다. 두 회장의 결단만 내려진다면, 연합 가능성은 열려있다.

하지만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홍하이와 손을 잡아도 부족한 부분이 남아있다. 

낸드플래시 투자를 강화하는 한편 그룹 차원의 반도체 수직계열화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2위 사업자인 도시바를 손에 넣는것은 표면적으로 이상적이지만, 리스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SK는 현재 '반도체 홀릭'에 빠져있다. 당장 지난 2015년 8월 M14 준공식에서 선언했던 중장기 투자계획의 연장선에서 청주 공장 건설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2017년 8월부터 2019년 6월까지 2조2000억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건물과 클린룸을 건설하는 것이 골자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청주에 건설되는 신규 반도체 공장은 4차 산업혁명 등 미래를 대비하는 SK하이닉스의 핵심기지가 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청주와 이천, 중국 우시에 사업장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05년 가동된 이천의 M10은 D램을 생산하며 M14의 아래층은 D램, 윗층은 3D 낸드플래시를 맡고 있다. M14는 현재 2층 클린룸 공사를 진행 중이며 내년 상반기 공사가 끝난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청주 공장의 M11, M12는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다. 2019년 청주의 신규 공장은 3D 낸드플래시 전용으로 쓰인다. 여기에 중국의 우시는 SK하이닉스 D램 물량의 절반을 생산해왔다. 현 상황에서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을, 청주에 낸드플래시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SK㈜는 지난해 반도체용 특수가스 제조업체인 SK머티리얼즈를 인수하며 반도체 소재 사업에 진출했으며, 최근 반도체 칩의 핵심 기초소재인 반도체용 웨이퍼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조∙판매하는 전문기업인 LG실트론까지 품어낸 상태다.

수직계열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 분위기도 좋다. 시장조사기관 IHS테크놀로지에 따르면 2015년부터 823억 기가바이트(GB)이던 낸드플래시 시장은 2020년 5084억 GB까지 확대되는 등 연평균 성장율이 44%에 달하며 장기호황의 초입에 들어섰다.

▲ 출처=IHS

하지만 배팅에 따른 기회비용이 발목을 잡는다. 무엇보다 도시바 경쟁력을 체화한다고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점유율로만 보면 1위 삼성전자를 바짝 추격할 수 있지만 투입되는 자금과의 기회비용을 따지면 의외로 큰 성과를 얻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당장 낸드플래시 시장 톱3에 들지 못하는 상태에서 도시바와의 접점도 없는 SK하이닉스는 전사적으로 나설 필요가 없다는 회의감도 감지된다. 그런 이유로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인수에 성공한다면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가 일각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배팅에 나서도 문제는 남는다.

단독입찰이 어려워진 상태에서 홍하이와 연합전선을 짤 경우 '오히려 손해'라는 말이 나온다. 홍하이는 반도체 시장에서 큰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으나 SK하이닉스는 4위 사업자다. 양사의 격차를 고려할 경우, 연합전선의 구축으로 큰 이익을 얻는 것은 당연히 홍하이가 된다. SK하이닉스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만약 홍하이와의 연합전선을 확정한다고 해도 '일본 정부의 반대'라는 산도 넘어야 한다. 가뜩이나 소녀상 설립 문제로 한일 양국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일본 정부가 한국 SK하이닉스의 도시바 매각을 순순히 보고있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현지 언론에서도 읽히고 있다. 일본 경제주간지 현대비즈니스는 지난 4일 정부 관계자의 멘트를 인용, "차라리 애플에 도시바를 파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부품 및 소재 분야에서 한국의 경쟁력에 밀린 일본이 전자산업 전반의 붕괴를 막으려는 의도로 한국 기업에 대한 견제구를 날릴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게다가 도시바는 낸드플래시의 원조이자, 삼성전자에 관련 기술을 제공하기도 했던 역사적 기업이다. 감성적인 문제가 있다.

감정적인 문제를 떠나 현실적인 상황판단을 해도,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경계대상' 홍하이와 SK하이닉스가 공동으로 자국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홍하이에 인수된 샤프가 최근 삼성전자에 대한 납품을 끊어 생태계 전체의 격변을 불러온 것처럼, 도시바가 대만과 한국의 기업으로 넘어가면 자국 전자기업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도 감지된다. 

이런 상황에 대해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홍하이와의 연합이나 기타 분할 매각 등의 설은 모두 확정되지 않은 이야기"라며 "상황을 보고있을 뿐"이라고 전했다.

▲ 출처=도시바

SK하이닉스와 홍하이의 연합과 더불어, 웨스턴디지털의 참전 가능성도 눈길을 끈다.

최초 도시바 사업부 매각 정국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자였던 웨스턴디지털은 샌디스크를 인수해 낸드플래시에서 이어지는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을 SSD로 연결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바와의 오랜 협력을 강조하며 인수전의 다크호스로 부상한 바 있다.

웨스턴디지털의 최대 강점은 도시바와의 접점이다. 이미 일본 시가현에서 도시바와 공동 공장을 설립해 협력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인수에 성공할 경우 가장 막강한 시너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도시바가 웨스턴디지털과 협력해 3D 낸드플래시 양산을 목표로 3년간 약 17조 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대목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양사는 일본 미에현 욧카이치 공장에 신규라인을 구축해 3D 낸드플래시 장비를 도입할 전망이다. 욧카이치 공장은 도시바와 샌디스크의 협력으로 각광을 받았던 곳이며 웨스턴디지털이 샌디스크를 인수하며 기존의 협력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협업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여기에 일본 정부가 '한국이나 대만보다 미국'이라는 선택지를 잡으면 분위기는 단숨에 웨스턴디지털로 넘어갈 수 있다.

다만 웨스턴디지털은 자금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웨스턴디지털이 단독으로 입찰에 참여하기는 어렵고 다른 플레이어와 손을 잡거나, 이미 협력하고 있는 도시바 현지 공장의 지분을 두고 '딜'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제3자의 등장이다. 인텔과 TSMC, 애플 등 인수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도시바와 일본 정부 입장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기업들이 인수전에 나설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특히 일본 정부의 취향과 더불어, 도시바가 당초 예상과 달리 '헐값에 사업부를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상황에서 메가딜의 여지를 찾으려면 오히려 제3지대의 기업들이 가능성 있다는 말이 나온다.

다만 이들이 단독으로 인수전에 나서기 보다 일종의 컨소시엄 형태를 갖출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이는 가장 희박한 시나리오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와 홍하이, 웨스턴디지털이 파트너를 바꾸는 시나리오와 더불어 그 외 제 3지대 기업들이 나름의 합의를 도출할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절박함을 따지면 제 3지대 기업들이 전사적으로 나설 수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