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이코노믹리뷰 DB

‘대륙의 실수’라는 말이 있다. 무서운 속도로 경제가 발전하고 있는 중국(대륙)에서 ‘실수가 아니고는 만들기 힘든’ 수준의 제품이 생산되며 나온 얘기다. 파격적인 가격에, 평범한 수준의 성능을 지닌 것이 핵심이다. ‘합리적 소비’에 대한 열망을 지닌 소비자들에게 매력을 뽐내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존에는 샤오미 등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점차 그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대륙의 실수 시리즈’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자동차 시장도 예외일 수 없다. 중국 내에서 완성차를 생산하는 업체는 28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승용차 시장 규모는 연간 2320만대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 중국산 승용차가 한국 시장에 들어왔다. 북경자동차의 수출 담당 브랜드 ‘북기은상’이 국내에 ‘켄보(KENBO) 600’을 출시한 것이다. 그간 버스·상용차 등이 판매된 적은 있었지만 승용차가 도전장을 내민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사진 = 이코노믹리뷰 DB

1990만~2099만원···충격적인 가격

켄보 600을 시승했다. 가장 눈여겨봐야할 것은 가격이다. 가격을 배제한 채 이 차의 성능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우매한 일이다.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정말 꼭 필요한 기능만 갖춘 차’를 공급하는 게 대부분 중국 로컬 브랜드들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국내 판매 가격은 1990만원~2099만원이다. 가격을 기준으로 경쟁차를 꼽으라면 쌍용차 티볼리(1651만~2526만원), 르노삼성 QM3(2195만~2495만원) 등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언급된다. 준중형차인 아반떼(1410만~2415만원)는 물론 소형차인 엑센트(1135만~1927만원)도 사정권이다. 경차인 모닝도 풀옵션 모델 가격이 1610만원 수준이라는 점을 염두에둬야 한다.

차급은 C세그먼트 SUV다. 제원상 크기는 전장 4695mm, 전폭 1840mm, 전고 1685mm, 축거 2700mm. 현대차 싼타페, 르노삼성 QM6 등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싼타페는 2795만~4035만원, QM6는 2770만~3505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 사진 = 이코노믹리뷰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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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트레인은 1.5 가솔린 터보 엔진에 무단변속기(CVT)를 조합했다. 힘보다는 효율성에 초점을 맞췄다는 분석이다. 엔진은 5500rpm에서 147마력의 최대출력을, 2000~4400rpm에서 21.9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공인복합연비는 9.7km/ℓ를 기록했다. 도심에서 9.2km/ℓ, 고속에서 10.6km/ℓ의 효율을 보여준다.

국내 판매 모델 중에는 가격 경쟁력을 따라갈 차를 찾기 힘들어 보인다. 북기은상의 한국법인인 중한자동차는 이 차의 경쟁모델을 티볼리, 아반떼 등으로 보고 있다. 준중형차 가격에 C세그먼트 SUV를 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구상이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전체적인 디자인 구성은 깔끔한 편이다. 따로 멋을 부리거나 욕심을 내지 않았다. 너무 간소하게 만든 것이 나름대로 독창성을 풍길 정도다. 측면에서 차를 만났을 때는 싼타페 등 국산 SUV와 구분이 쉽지 않다.

전면부 라디에이터 그릴에서 렉서스의 냄새가 미세하게 풍기긴 하지만, 헤드라이트를 큼직하게 만들어 차별화를 꾀했다. 다만 이 조합이 오히려 차를 작아보이게 한다는 것은 단점이다. 싼타페 옆에 이 차를 대고 비교하면 한 체급 아래의 모델같은 느낌이 든다.

▲ 사진 = 이코노믹리뷰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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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등의 위치, 브랜드 로고, 말끔하게 이어지는 후드라인 등 전체적인 완성도는 기대 이상이다. 후면부 하단을 가로지르는 크롬 라인이 약간 억지스러운 느낌이 있긴 하지만 나름대로 눈길을 잡는 요소다.

실내 분위기도 비슷하다. 대시보드, 센터페시아 구성, 계기판 내부 등이 모두 그냥 수평이다. 괜한 디자인 요소를 적용해 세련미를 추구하지 않았다. 1~2세대 전 정도의 국산 SUV 인테리어를 상상하면 될 듯하다. 다른 브랜드의 디자인을 따라한 것 같지는 않은데, 워낙 평범하다보니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다.

‘새차 냄새’에 대한 우려가 컸는데 비교적 참을만 했다. 과거 중국 내 모터쇼 현장에서 현지 브랜드 차량에 탔을 때 알 수 없는 불쾌한 냄새 탓에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아마도 실내에 저렴한 접착제를 마구 사용했기 때문일 텐데, 켄보 600은 나름 이 부분에 신경을 쓴 듯하다. 다만 국산차에 비할 수준은 아니다. 민감한 사람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 사진 = 이코노믹리뷰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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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활용은 훌륭하다. 한국 브랜드 차량에서 영감을 많이 받은 듯하다. 글러브박스, 센터콘솔 등에 적당한 공간을 마련하고 운전석 옆쪽에도 작은 수납박스를 마련했다. 카드를 꽂을 수 있는 공간 등 세심한 배려의 흔적도 엿보인다. 1·2열 모두 헤드룸이 여유롭다. 트렁크 공간은 1063ℓ를 기본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2열 시트를 직각으로 폴딩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2738ℓ의 적재용량을 제공한다.

‘가성비’ 따지게 되는 주행 성능

달리기 성능은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만한 요소가 많다. 얼마전까지 국내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 중 하나는 바로 ‘독일화’였다. 정숙한 프리미엄 디젤 세단 등이 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리며 ‘좋은차’와 ‘독일 프리미엄 세단’의 교집합이 넓어진 것이다. 만일 이 같은 획일화된 기준으로 켄보 600을 평가한다면, 낙제점을 줘야 할지도 모른다.

▲ 사진 = 이코노믹리뷰 DB

다만 시장에는 다양한 고객층이 있다. 또 차량의 성능에 ‘가격’이라는 평가 요소가 들어가기 시작하면 얘기가 복잡해진다. 이미 IT·전자 시장에서는 ‘대륙의 실수’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 자동차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핵심은 가성비다. 2000만원이라는 가격은 알겠는데, 그 정도 퍼포먼스를 보여주느냐 하는 문제다. 무조건 적재공간이 넓다는 장점만으로는 티볼리 고객을 이 차로 돌려세우기 힘들다.

켄보 600의 공차중량은 1620kg로 가벼운 편이다. 초반 가속감은 한 세대 이전의 국산 터보 모델을 떠올리게 한다. 브레이크 답력은 초·중반에 적당히 잘 배분돼 있다. 기본 주행에서는 큰 불만이 없는데, 급제동을 할 경우 차체가 단단하게 버텨주지 못해 밀려나가는 느낌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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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T 변속기의 성능은 기대 이상이다. 변속 충격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 차의 최대토크는 2000~4400rpm에서 나타나는데, 평상시 rpm을 높게 쓰지 않게 설정돼 있어 토크에 대한 불만은 크지 않다.

가상으로 6단의 수동변속 모드를 지원한다. 고속 주행에서 엔진 브레이크를 사용할 때 수준급의 성능을 확인할 수 있었다. 6단 주행 중에도 3단까지 쉽게 기어가 변경되게 했는데, 거슬리지 않는 수준에서 rpm을 적당히 조절해줘 만족스러웠다.

최고속도는 180km/h에서 제한된다. 출력에 중점을 둔 파워트레인은 아닌지라 고속 주행에 대한 기대감은 없었다. 110km/h가 넘어가면 숨을 헐떡이기 시작하는데, 그렇다고 힘이 모자라 답답하지는 않다.

흡차음재 사용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사치일지 모르겠다. 주행 중은 물론 정차 중에도 엔진음이 실내로 많이 유입됐다. 앞서 언급한 ‘독일화’ 감성에서 보면 참기 힘든 수준이지만 오프로드를 즐기는 SUV 감성을 추구한다면 별로 신경쓰지 않을 수도 있겠다.

고속도로와 도심 구간을 적당히 분배해 약 90km 가량을 주행해봤다. 100km를 달리는데 13.1ℓ의 연료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단순 환산할 경우 실연비가 7.6km/ℓ 수준인 셈이다. 과격한 주행을 하지 않는다면 일상적으로 도로를 다니는 데 큰 문제가 없다는 총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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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열쇠는 신뢰

주행성능은 ‘기본만 하자’로 요약된다는 평가다. 이 밖에 ‘가성비’를 높여주는 요소로는 차선이탈경보시스템, 힐어시스트 시스템, 후방 경보 시스템 등이 기본 장착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초고장력강판 적용 비율이 60%를 넘는다는 것과 지난해 중국에서 실시한 안전도 테스트(C-NCAP)에서 이 차가 최고등급을 받았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국내 법인인 중한자동차가 쉽게 개선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점도 눈에 띄었다. 후방감지시스템의 작동 기준을 재정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후방카메라와 감지 시스템이 동시에 작동해 주차 시 편리했지만, 차를 세운 뒤에도 경고음이 계속해서 울린다는 점은 문제다. 기어를 ‘P'에 놓더라도 끊임없이 경고를 해댄다. 시스템을 아예 꺼버리거나, 시동을 꺼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운전석 문이 열렸을 때 나오는 경보음도 개선이 필요하다. 시동을 끄고 차문을 열었는데 끊임없이 경고를 해준다. 주행 중과 주차 중 상황을 차량이 인식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듯하다.

켄보 600은 지난 1월말 국내 시장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초기물량 120대가 한달만에 ‘완판’되며 나름대로 시장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중한자동차에 따르면 전체 구매자 중 3분의 1 이상은 중소기업·영세사업자였다고 한다. 시장의 예상대로 법인차 시장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 셈이다.

▲ 사진 = 이코노믹리뷰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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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자동차는 올 하반기 소형 SUV 신차를 들여오며 시장 점유율을 높일 방침이다. 가격은 1000만원 초·중반대로 예상된다. 경차 가격에 나오는 SUV인 셈이다.

결국 시장에서 신뢰도를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게 중한자동차를 비롯한 중국산 승용차들의 숙제일 것으로 보인다. 장점은 충분하지만, 고객들의 ‘불안감’이라는 치명적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켄보 600을 만나본 뒤 느낌 점은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기세를 무시할 수는 없겠다는 것이었다. BYD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들도 국내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상황이다. 국산차 업체 입장에서는 중국산 차를 두고 무작정 ‘가격만 싸지 내구성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기 힘들어 보인다. 좋고 나쁨은 소비자가 판단하는 법. 불치하문(不恥下問)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