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돌고 돕니다. 자리도 변해요.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어제의 약자가 오늘의 강자가 되고, 다시 내일은 약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실리콘밸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페이스북과 애플의 이야기입니다.

 

구글 플러스와 스냅, 그리고 페이스북
구글플러스라는 서비스가 있습니다. 구글이 운영하는 SNS에요. 2011년 6월 초대장을 받은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서비스가 시작됐고 2011년 9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2012년 1월 국내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했지요.

포털 사이트의 막강한 점유율을 바탕으로 다양한 ICT 경쟁력을 체화하고 있는 구글은 구글플러스로 초연결의 인프라를 흡수하려고 했습니다.

구글버즈, 구글 친구연결 및 오르컷에 이어 4번째 시도인 관계로 그 어느 때보다 시장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사실 구글은 SNS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포털의 경쟁력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타트업 페이스북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며 자연스럽게 그들을 의식했다고 해요.

당시만해도 서비스의 질적인 측면이 아니라, 인재 쟁탈전의 연장선이었습니다. 페이스북의 매력적인 방법론에 빠진 고급인재들이 속속 구글을 떠나 페이스북에 합류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에요. 페이스북 매니저인 안토니오 마르티네즈는 이를 두고 "페이스북이 구글의 심기를 건들였다"라고 표현했죠.

갑자기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서 죄송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실리콘밸리의 저력이 아닐까 합니다. 안정적인 구글이라는 직장을 버리고 당시 스타트업에 불과한 페이스북에 합류하는 인재들. 헬조선에 살고있는 우리는 이해할 수 없죠.

최근 구글 웨이모의 인력이 속속 이탈해 창업전선에 나선다는 외신의 보도를 두고 국내 언론들은 "웨이모가 위험해서"라고 해석했지만, 이건 정말 전형적인 헬조선식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웨이모가 위험해서가 아니라, 더 흥미롭고 자극적인 도전과 비전을 찾아 모험하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습성이라고 봐야죠. 물론 이런 말도 가능합니다. "내가 구글에서 근무하며 연봉 10억원 정도 받았으면 창업전선에 나서며 모험을 떠나겠다"...이런, 사람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는 헬조선 같으니.

자, 다시 구글플러스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여튼 페이스북이 뜨며 구글은 특단의 조치를 생각합니다. "우리도 SNS를 만들자"는 다짐. 어떻게? 강자가 '끈질기고 신경쓰이는' 약자를 무너트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요? 자비를 베푸는 방법도 있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다시는 넘볼 수 없도록 철저하게 부수는 것"입니다.

구글은 지메일과 유튜브, 포털의 모든 서비스를 하나로 묶어 진입장벽을 크게 낮추는 한편 다양한 자사 서비스를 연동할 수 있는 구글플러스를 공개합니다. 화력을 집중해 단순한 연결 이상의 포괄적 서비스로 융단폭격을 가한 셈입니다.

이에 맞서야 하는 페이스북은 어떻게 했을까요? 구글플러스 런칭 소식이 알려지자 마크 저커버그 CEO는 즉각 비상경영을 선언하는 한편, 골리앗 구글과의 전면전을 천명합니다. 회사에서 출퇴근 없이 주7일 근무하며 개발에만 몰두하는 '락다운'을 통해 모든 임직원들의 역량을 모으는 한편 숙적 카르타고를 물리친 로마의 사례를 들어가며 처절한 혈투를 전개합니다. "카르타고는 반드시 멸망한다!"는 외침이 사무실에 울려퍼졌어요. 물론 카르타고는 구글플러스지요.

▲ 출처=페이스북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구글은 막강한 화력을 집중하면 알아서 페이스북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우리는 강하니까"라는 타성에 빠져있던 구글은 구글플러스의 세밀한 사용자 경험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유롭게 움직였고, 페이스북은 영화 300에 나오는 스파르탄 전사처럼 처절하게 싸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2014년 골리앗 구글은 구글과 구글플러스의 연동을 포기한다고 선언하며 다윗 페이스북에게 백기투항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약자였던 페이스북의 눈물겨운 분투기입니다. 강자에 맞서 기어이 살아남은 영웅의 전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제 페이스북이 수세에서 공세로 돌아서 골리앗이 된 상태에서 다른 다윗을 압박하는 지점입니다.

최근 상장된 스냅이 바로 페이스북과 싸울 다윗입니다.

사실 페이스북은 구글처럼 방심하지 않았어요. 구글플러스를 무찌른 기억이 있기 때문일까요. 골리앗의 입장이지만 다윗인 스냅의 스냅챗 서비스가 시작되던 순간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마크 저커버그 CEO는 2012년 스냅의 에반 슈피겔에게 내심 인수의향을 타진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스냅은 창립 1년을 넘긴 애송이였지만, 페이스북은 그들의 무서운 잠재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 에반 슈피겔. 출처=위키미디어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악동, 에반 슈피겔은 당당하게 거절합니다. 이후 몇 차례 구애가 있었지만 대답은 모두 '노'였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죠. 페이스북은 채팅과 영상이 사라지는 콘 찔러보기 기능을 선보이는 한편 비디오 분야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왓츠앱을 인수한 것도 스냅챗을 겨냥한 행보로 해석되며 페이스북 동영상의 기능을 크게 업그레이드한 지점도 비슷한 이유로 여겨집니다.

지난해 11월 얼굴 인식 기술 스타트업 파시오매트릭스(FacioMetrics)를 인수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파시오매트릭스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통해 스마트폰 카메라가 표정을 분석하도록 돕는 도구를 제공해요. 실시간 필터(real-time filters), 사진 효과 및 편집 도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스냅을 정조준했습니다.

아직 이 싸움의 승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페이스북은 건재하고, 스냅은 상장을 했으니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시간은 페이스북의 편이 아닙니다. 날이 갈수록 젊은 이용자가 스냅으로 유출되고 있으며, 동영상의 가능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북이 스펙터클을 만들어 낸 스냅의 창조적 행보를 막아낼 수 있을까요? 귀추가 주목됩니다.

▲ 스펙터클. 출처=스냅

IBM과 부품 업체, 그리고 애플
스티브 잡스의 일화 중 매우 유명한 스토리가 있죠. 바로 IBM 본사로 가 손가락 욕을 날리는 장면입니다.

1970년으로 돌아갑시다. 당시 세계 최대 PC 회사이던 IBM은 말 그대로 승승장구하고 있었으나, 개인용 PC 시장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을 중퇴하고 아타리에서 근무하던, 사기꾼 성향이 있던 한 남자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는 조만간 개인용 PC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확신했으며, 당시 HP 직원이던 '동네 개발자 형'을 꼬셔 개인용 PC를 만들어냅니다. CPU의 경우 고가의 인텔 i8080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모토로라의 MC6800을 차용해 저렴하지만 잘 구동되는 개인용 PC를 만듭니다.

그들의 이름은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의 전설이자 글로벌 ICT 업계의 대격변을 끌어내는 혁명가의 탄생입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을 설립해 개인용 PC인 애플I, 애플II를 연이어 성공시킵니다. 바야흐로 개인용 PC 시대가 열리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IBM이 움직입니다. 이들은 공개형 아키텍처 방식을 내세워 제조사 생태계 구축에 나서는 위력을 발휘해 단숨에 애플이 구축한 개인용 PC 시장을 접수하기 시작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II의 성공을 이어가기 위해 애플III를 서둘러 출시했으나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끝났다"는 혹평만 남았지요.

급해진 스티브 잡스는 팹시콜라의 사장이었던 존 스컬리(John Sculley)를 영입해 어떻게든 살아보려 노력했으나 이미 IBM을 중심으로 시장의 판이 짜여진 후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존 스컬리와 사이가 나빠진 스티브 잡스는, 결국 애플에서 쫒겨납니다.

스티브 잡스가 떠난 애플은 초기 다양한 라인업을 공개하며 바람을 타는가 싶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몇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버텼다'는 평가가 가능하겠네요. 하지만 1995년 IBM 호환 PC 운영체제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95가 출시되며 애플은 직격탄을 맞습니다. IBM과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거인들의 총공세에 애플은 시장의 매물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여기서 영웅의 귀환이 극적으로 이뤄집니다. 1996년,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그는 파편적이던 매킨토시 라인업을 가다듬는 한편 1998년 아이맥G3, 이어 맥SO의 고도화가 이어지며 반전 드라마를 쓰기 시작합니다.

▲ 스티브 잡스. 출처=위키디피아

2001년 등장한 아이팟은 MP3 시장의 판세를 바꿔버립니다. 유려한 디자인과 강력한 생태계로 무장한 아이팟은 애플의 주력을 개인용 PC에서 휴대용 IT 기기로 이끄는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2007년, 전설의 아이폰이 처음 베일을 벗습니다. 모바일 대혁명의 시대를 열었으며, 그 자체로 애플과 스티브 잡스는 신화가 됩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모바일 시대가 열리며 기존 PC 시장의 강자이던 IBM과 마이크로소프트는 혹독한 겨울을 보내게 되지요. 아직 이들의 게임은 끝나지 않았으나, 한 때 매물로 전락했던 애플은 현재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이 되었습니다.

▲ 출처=위키미디어

그러나 밑바닥에서 정상의 위치에 오른 애플도 지금은, 사실상 갑질의 화신으로 변했습니다. 아이폰 성장세가 다소 떨어지는 상황에서 부품 업체를 대상으로 '단가 후려치기'가 빈번히 벌어지고는 합니다. 지난해 아이폰7 출시를 앞두고는 대만 부품 업체들에게 아이폰6보다 요청 물량을 30% 줄였음에도 단가를 같은 기간보다 20%가량 낮춰 반발을 샀으며, 이에 폭스콘 그룹은 "합당한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주문을 받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지요.

아이폰6에는 사파이어 글래스를 공급하기로 했던 GT어드밴스트에 대해 애플이 구매를 전면 취소하는 일도 벌어져 부품사가 파산 보호 신청을 내는 일도 있었습니다. 사파이어 글래스의 생산 비용이 너무 높고 수요에 맞출 정도로 충분한 물량을 생산하지 못했다는 것이 구매 취소의 이유였지만, 파이낸셜타임즈는 "애플이 부품 업체들을 대상으로 계약 조건 유출 건마다 5000만달러의 배상을 요구하는 등 억압적인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퀄컴과의 분쟁에도 미묘한 흐름이 있습니다. 미국 조사 당국(FTC)에 따르면 퀄컴은 독점 공급 조건으로 애플에 막대한 리베이트를 지불했으며, 이에 따라 모뎀 칩을 제품 당 생산 단가 이하에 공급해 온 것으로 알려졌어요.

그런데 애플은 2016년 아이폰7 시리즈 일부에 인텔 모뎀 칩을 탑재해 독점 계약을 위반했으며, 급기야 지난달에는 “당사가 한국 공정위의 반독점 조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퀄컴이 10억 달러에 이르는 리베이트 지불을 거부하고 있다”며 퀄컴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계약 위반에 따른 리베이트 보상을 회피하고자 ‘소송전’ 카드를 내밀었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순간입니다.

최근 수 년간 스마트폰에 지불하는 특허 로열티를 절감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국제 소송전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애플은 에릭슨에 2008년부터 지급하던 특허 사용료가 지나치게 높다며 계약 갱신을 거부, “필수적이지 않은 LTE 기술에 불필요한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며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 에릭슨을 상대로 제소한 바 있습니다.

이 외에도 고객을 향한 갑질, 지역을 향한 갑질의 자세는 일정정도의 선을 넘어 무례함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누구나 약자가, 강자가 된다"
우리는 약자가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세상을 지배하려는 강자를 물리치는 이야기에 열광합니다. 어쩌면 누가 선(善)이고 악(惡)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단순히 낙숫물로 바위를 뚫어버리는 쾌감을 원하고 있을 수 있지요.

이런 관점에서 실리콘밸리 기업 잔혹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영원한 절대자도 없으며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다는 기본적인 진리. 우리는 그들의 부침을 살피며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골라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