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쉐보레 올 뉴 크루즈 / 출처 = 한국지엠

“크루즈만 믿는다.”

2일 국내 완성차 업체 5개사의 지난달 판매 실적이 발표된 가운데 유독 한국지엠 내수 영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17년 2월 국산차 업체들의 전체 내수 판매는 11만9612대. 전년 동월(11만3803대) 대비 5.1% 많아진 수치다.

지난해보다 판매가 줄어든 업체는 한국지엠이 유일하다. 성적은 1만1227대로 2016년 2월(1만1427대)보다 1.7% 떨어졌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숫자보다 더 큰 위기감이 엿보였다.

스파크·말리부·트랙스만 보인다

2월 한국지엠의 판매 실적을 견인한 차는 스파크와 말리부였다. 스파크는 3950대, 말리부는 3271대가 팔리며 선전했다. 회사 전체 판매의 64%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외에 월간 판매 1000대를 넘긴 차는 트랙스(1740대)가 유일했다. 신형 모델 출시를 앞두고 크루즈 판매가 6대에 그쳤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난해와 비교해보면 스파크는 판매가 32.5% 떨어졌고, 말리부와 트랙스는 각각 434.5%, 130.8% 올랐다. 스파크는 신형 모델이 2015년 출시됐고, 말리부·트랙스는 2016년 하반기에 나온 것이 영향을 미쳤다.

▲ 쉐보레 더 넥스트 스파크

한국지엠의 내수를 탄탄하게 받쳐줘야 할 차량들은 기대 이하의 실적을 보여줬다. 중형 SUV 시장에서 경쟁하는 캡티바는 출고가 190대에 그쳤다. RV인 올란도 판매도 597대에서 멈췄다. 한때 돌풍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준대형 세단 임팔라의 판매는 359대로 전년 동월 대비 71.4%나 떨어졌다.

경쟁사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중형 SUV인 현대차 싼타페와 기아차 쏘렌토는 같은달 각각 5997대, 5055대가 판매됐다. 영업망·네트워크·인지도 등에서 차이가 커 단순 비교가 힘들긴 하지만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큰 시장’이라는 점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준대형 세단 시장에서는 현대차 그랜저(1만913대), 기아차 K7(4388대) 등이 쌩쌩 달리고 있다.

‘유행’ 주도 못하는 자동차 회사

향후 전망이 밝은 편도 아니다. 현재 한국지엠의 허리 역할을 하고 있는 차종들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줄고 있기 때문이다. 스파크와 말리부 얘기다.

국내 자동차 시장의 신차 수요는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유일하게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세그먼트는 바로 ‘경차’와 ‘중형차’다.

스파크가 모닝과의 경쟁이 한창 치열할 당시에는 월간 경차 판매량이 1만5000대에 육박했다. 반면 올해 2월에는 1만대 고지를 겨우 넘겼다. 풀체인지 모델로 돌아온 기아차 모닝도 실적(6156대)이 지난해보다 7.5% 오르는 데 그쳤을 정도다.

한국지엠 입장에서 판매량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차종인 스파크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은 셈이다. 전체 시장은 점점 작아지고 있고, 경쟁자는 신모델로 더욱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실제 스파크의 지난달 판매량(3950대)은 지난해 동월 대비 32.5% 빠진 수치다. 스파크 출고량이 4000대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15년 8월 신모델 출시 이후 처음이다.

▲ 쉐보레 올 뉴 말리부 / 출처 = 한국지엠

중형차 시장 역시 비슷하다.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는 데 시장은 작아지고 있다. ‘국민차’의 대명사 쏘나타는 지난달 4440대가 팔리며 ‘베스트셀링카’ 10위에 겨우 이름을 올렸다. 르노삼성 SM6는 3900대가 판매됐다. 말리부는 중형 세단 경쟁에서 꼴찌를 기록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국내 시장에서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세그먼트는 준대형·대형 세단과 SUV다. 한국지엠은 임팔라로 준대형 세단 시장, 트랙스·캡티바로 소형·중형 SUV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임팔라와 캡티바의 판매는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그나마 선전 중인 트랙스 역시 신모델이 나왔음에도 쌍용차 티볼리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르노삼성 ‘3위의 꿈’ 실현될 가능성

상황이 이렇자 일각에서는 르노삼성이 한국지엠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르노삼성은 박동훈 사장 취임 이후 꾸준히 “(한국지엠을 제치고) 내수 시장 3위를 탈환하겠다”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

2017년 2월 기준 한국지엠(1만1227대)과 르노삼성(8008대)의 판매량 차이는 3219대. 경쟁력 있는 신차가 한두개 투입될 경우 충분히 역전할 수 있는 수준이다. 지난달 쉐보레 크루즈의 출고가 없긴 했지만, 르노삼성 역시 QM3의 물량이 모두 소진돼 판매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제품 라인업은 한국지엠이 훨씬 다양하다. 경상용차인 다마스·라보까지 포함할 경우 약 12개 모델을 판매 중이다. 르노삼성은 아직 본격적인 판매 이전인 초소형 전기차 ‘트위지’를 합쳐도 8개 수준에 불과하다.

주력 모델을 살펴보면 얘기가 다르다. 한국지엠은 경차(스파크)와 중형차(말리부), 르노삼성은 SM6(중형차)와 QM6(중형 SUV)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세그먼트에서는 르노삼성이 한국지엠을 압도하고 있다. 준대형 세단 시장에서는 SM7이 임팔라를 앞서고, 소형 SUV 시장에서는 QM3가(지난달 제외) 트랙스를 따돌리고 있다.

신차 도입을 더욱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쪽도 르노삼성이다. 연내 소형 해치백 ‘클리오’와 초소형 전기차 ‘트위지’가 도입될 예정이며, 장기적으로 미니밴, 경차 등의 투입도 염두에 두고 있다. 르노삼성의 ‘3위 달성’의 꿈이 실현될 가능성이 충분한 셈이다.

▲ 쉐보레 더 뉴 트랙스 / 출처 = 한국지엠

결국은 크루즈

유행을 선도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지엠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국내에서 GM과 쉐보레 차량을 원하는 소비자는 있다. 다만 한국지엠은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로 신차를 도입하고, 초기 물량도 지나치게 적게 잡는다는 비판을 매번 받고 있다.

말리부만 놓고 봐도 마찬가지. 2014년 ‘말리부 디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초기 수요 예측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잡아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이 차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고 자취를 감춰야 했다. 지난해 출시된 신형 말리부 역시 초반 사전계약이 1만대를 넘어서며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지만, 신차 인도 시기가 지나치게 길어지며 고객들의 신뢰를 잃었다.

크루즈 역시 글로벌 신차 공개 이후 도입이 너무 늦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산차인 한국지엠보다 수입차인 벤츠·BMW가 글로벌 신차를 훨씬 빨리 들여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반면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르노삼성은 SM6를 성공시켰고, QM6까지 2연속 홈런을 날렸다. 쌍용차 역시 티볼리 이후 자신감을 얻어 신차 출시에 공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신형 크루즈가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해줘야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국지엠은 이 차를 당초 2월 말부터 고객 인도를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품질 문제 등으로 공식 판매 시기가 3월 중으로 미뤄진 상태다.

▲ 쉐보레 올 뉴 크루즈 / 출처 = 한국지엠

크루즈는 모델이 노후화한 이후에도 꾸준한 실적을 보여주는 볼륨 모델이다. 2015년 1만7061대, 2016년 1만847대가 팔렸다. 한국지엠은 신형 모델의 판매 목표는 따로 공개하지 않았다.

쉐보레의 준중형차 크루즈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