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이야기> 월러 뉴웰 지음, 우진하 펴냄, 예문아카이브 펴냄

저자는 ‘역사는 진보한다’는 장밋빛 믿음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그 믿음 때문에 폭정을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 안심하면서 진보의 과정 속에서 ‘필요악’으로 나타나는 역사의 일부라고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시행하고 있는 다수의 국가에서 과거와 같은 폭압과 학살이 일어나기란 구조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물리적인 폭력만이 폭력의 전부는 아니다.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모든 시도는 폭정의 범주에 속한다.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기고 교묘한 방식으로 대중을 호도하면서 참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제반 행위는 넓은 의미에서 폭정이다.

사람들은 폭군을 증오하면서도 때로는 뛰어난 리더십이라 여기고 따른다. 에이브러햄 링컨과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국가의 수호자와 폭군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 저자는 이를 ‘폭군(폭정)의 역설’이라고 설명한다. 단순히 폭정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대의’를 위한 과정 속에서 불가피하게 난 상처로 봐야 하는지의 미묘한 경계가 역설을 만들어낸다. 현대 사회에서도 자유를 갈망하는 일이 종종 우리에게 ‘최악(最惡)’과 ‘차악(次惡)’ 사이에서 어렵고 불편한 선택을 하도록 강요한다. 중동의 잇따른 민주화에서 보듯, 민주화 운동을 통해 독재자를 끌어내린다고 해서 반드시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란 보장은 없다.

저자는 폭군의 얼굴을 전형적·개혁형·영원불멸형 등 세 가지로 구분하다. ‘전형적’ 폭군은 국가와 사회를 사유재산으로 여긴다. 자신이 국가의 주인이라고 여기기에 책임감이 투철하다. 전쟁에서는 용맹한 지휘관이 되고 나라 경제를 일으키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을 움직이는 중요한 요인은 자신을 포함한 일부 사람들의 이익이다. 로마의 네로 황제, 스페인의 프랑코 장군, 니카라과의 소모사 부자(父子), 아이티 공화국의 뒤발리에 대통령,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 등이 여기에 속한다.

‘개혁형’ 폭군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기를 원한다. 이들은 국가 개조를 시도한다. 법과 제도, 복지, 교육 문제를 개선하며 빈부 격차를 줄인다. 하지만 이들은 공공의 명예와 권력을 독점한다. 세상에 자신의 질서를 부여하려고 한다. 그들이 얻는 보상은 ‘명성’이다. 잉글랜드의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나폴레옹 1세,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 터키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케말 아타튀르크 대통령 등이 이런 유형이다.

‘영원불멸형’ 폭군은 가장 위험하면서도 복잡하다. 이들이 꿈꾸는 것은 영원불멸의 새로운 왕국이다. 이 왕국에서 모든 개인은 오직 하나의 뜻만을 따르는 전체주의의 일부가 된다. 이 유형은 정치보다 종교에 가깝다. 지금까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연적으로 ‘세뇌’와 ‘혁명’을 수반한다. 자신들 이외의 사람은 정화(淨化)의 대상일 뿐이다. 그래서 이들은 전쟁과 대량학살을 통해 이 세계를 끝장내려고 한다. 이 유형에는 프랑스의 자코뱅파, 볼셰비키의 스탈린, 나치의 히틀러,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 캄보디아의 폴 포트, 오늘날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있다.

이 책은 청동기 시대에서부터 21세기 오늘날까지의 3000년 폭정의 역사를 다룬다. 폭군들이 어떻게 대중의 심리를 지배하고 추종자들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해나가는지에 관해서도 살피고 있다.

저자는 인간에게 권력욕이 있는 한 폭정은 사라지지 않으며, 모든 권력자는 ‘잠재적 폭군’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올바른 정신을 보전하고 전파하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적(敵)인 폭정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하며,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불의인지 가늠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최악의 민주주의가 최선의 폭정보다 낫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며 책을 마무리한다. 박정희 시대가 끝난 지 근 40년이 되도록 이 같은 인식이 이뤄지지 않는 것을 보면, 저자의 주문은 현실 속에서 결코 쉽지 않은 요구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