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화(劃一化). 모든 것이 똑같아 다름이 없게 됨 혹은 그런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통상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문장에 사용된다. ‘다름’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을 전제로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수년간 고속 성장을 거듭해온 수입차 시장에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모두를 관통하는 공통 키워드는 ‘럭셔리(Luxury)’. ‘호화롭다’는 의미를 가진 신어다.

수입차 시장에 럭셔리 열풍이 불고 있다. 주로 고객들과 접점을 지닌 마케팅 현장에서 이 단어가 많이 사용된다. “럭셔리한 실내 공간을 지녔습니다”, “진정한 럭셔리 SUV입니다”, “럭셔리 소형 세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범위도 다양하다. 한국이 고급 자동차의 치열한 격전지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실용성·안전 등을 주무기로 내세우는 브랜드들이 럭셔리를 외치고 있다. 실제 값비싼 소재 등을 사용해 호화로운 차를 만든 사례도 있지만, 입만 살아있는 경우도 많다. 시장이 획일화의 오류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현장에서 다양한 모델들을 접하다 보면 실소를 금하기 힘든 상황이 연출된다. 3000만원대 보급형 모델에 해당 수식어를 붙이는 게 대표적이다. 가성비가 좋은 합리적인 모델로 포지셔닝 한다면서 제품 설명회에서는 이 단어가 먼저 나온다. 크기가 좀 크다 싶은 차는 모두 다 럭셔리 세단(혹은 SUV)이다. 모델 세부 트림명에 이 말이 들어있는 경우도 많다.

황당한 사례가 나타나기도 한다. ‘럭셔리’라는 말에 수입차를 산 소비자가 동급의 국산차를 타보고 후회했다는 일화도 있다. 국산차의 실내 구성이 훨씬 깔끔하고 세련된 탓이다. ‘럭셔리한 인테리어’라는 광고 문구를 보고 매장을 찾았는데, 질감이나 인터페이스 구성이 너무 ‘올드’해 크게 놀랐다는 고객도 있다.

자동차 회사들은 다양한 모델을 판매한다. 멋지고 비싼 차, 작고 실용적인 차, 크기가 커서 짐을 많이 적재할 수 있는 차, 좌석이 많아 사람이 많이 앉을 수 있는 차, 가격이 저렴한 차, 속도를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차 등. 고객의 취향 역시 가지각색이다.

모든 수입차 업체들이 ‘럭셔리’를 강조한다고 해서 이를 무작정 비난하기는 힘들다. 특정 차량이 럭셔리한지 아닌지를 구분할 잣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이 단어를 남발하다 보면 어느 순간 ‘딜레마’에 빠질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다. 모든 브랜드가 비슷한 차를 만들고 같은 메시지를 던지는 날이 온다면, 실용적인 차를 원하는 고객은 수입차를 외면할지도 모른다. ‘좋은 차 = 호화로운 차’라는 등식이 무조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