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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의 의외로 쓸모있는 개념어 사전] ‘헬조선’과 한(恨)민족
김영수 칼럼니스트  |  stels.lee@econovill.com  |  승인 2017.03.13  18:36:01

한(恨)

: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로 시작해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를 지나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로 끝난다. 고등학생 시절 국어 선생님은 저 구절들에 밑줄을 긋고 ‘반어법’이니 ‘초극적 사랑’이니 침을 튀기며 설명했지만, 시는 여러모로 난해했다. 특히 나 보기가 역겨워서 떠난다는데 왜 꽃잎을 뿌려주는 것인지는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

한민족의 고유 정서라는 게 있을까? ‘진달래꽃’의 저 안타까운 화자는 물론 ‘잡사와 두어리마는 선하면 아니올셰라’ 붙잡지도 못하고 발만 구르는 고려가요 ‘가시리’의 여인부터,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고 노래한 민요 ‘아리랑’의 화자까지, 여기에는 분명 공통된 정서가 담겨 있다.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이라는 뜻의 ‘한(恨)’은 저 노래들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흔하게 활용되는 개념이다.

정말로 우리는 ‘한’의 민족일까? 무수히 많은 사람과 무한대로 긴 역사를 하나의 개념으로 압축할 수 있을 리 없으니 하나의 민족을 하나의 정서로 대변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일 테다. 하지만 대충 그런 게 있다 치더라도 ‘한’이 우리의 대표 정서는 아니라는 게 역사학자들의 주장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외침을 받은 민족, 그 때문에 도저히 눈물 없이는 회고할 수 없는 역사를 산 민족. 이와 같은 편견 때문에 간과하고 있을 뿐 ‘조선을 대변하는 한의 정서’라는 관념은 사실 최근에 창안된 것이다. 20세기 초 일본의 미술사가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국인을 한의 민족으로 둔갑시킨 일등 공신으로 지목된다. 그는 <조선 사람을 생각한다>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조선 역사의 운명은 슬픈 것이다… 오랫동안 참혹하고 처참했던 조선의 역사는 그 예술에다 남모르는 쓸쓸함과 슬픔을 아로새긴 것이었다. 거기에는 언제나 비애의 아름다움이 있다. 눈물 넘치는 쓸쓸함이 있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가슴이 메이는 감정을 누를 길이 없다.’

어떻게 저토록 처절하고 슬픈 민족이 있을까?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의 역사를 바라보며 차오르는 슬픔을 차마 억누르지 못한다. 물론 승자의 눈으로 본 패자의 모습일 뿐이며, 여기에는 분명 오리엔탈리즘적 편견이 개입되어 있다. 하지만 야나기 무네요시의 생각은 너무나도 빠르게 한국인의 마음 속까지 잠식하고 말았다. 그가 워낙 저명한 학자이기도 했지만, 식민지 신세였던 당시 조선은 저런 주장이 유포되고 정당화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미를 비애미로 규정한 한 일본인에게서 발원한 ‘한’은 한국인의 비통한 심정에 고스란히 젖어 들었으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문학가에 의해 조선의 대표적 정서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전쟁과 분단, 그리고 긴 독재로 이어진 현대사는 우리 마음 속에 ‘한’을 더욱 깊이 심어주었다. ‘한’이라는 슬픈 자화상에는 일본인의 오리엔탈리즘적 동정심이 양각되어 있고, 한국인의 자조적 내면화가 음각되어 있다.

그렇지만 ‘한’이 그저 슬픔과 자기연민의 정서로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한은 약자의 패배의식, 허무감과 체념이 지배하는 감정상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약자로서의 삶의 집념을 담고 있는 감정’이기도 하며, 때문에 ‘종종 혁명이나 반란의 에네르기로 작용’했다는 서남동의 말은 ‘한’의 얼굴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한이 깊어지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데, 제대로 맺힌 한은 날씨뿐 아니라 세상도 바꾸나보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호메로스가 썼다는 서사시 ‘일리아스’의 첫 문장이다. 서양 문학사의 첫머리에 놓인 작품 역시 한 인간의 슬픔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지 슬픔에서 그치지 않고 분노로, 결국은 정의의 요구로 나아간다.

‘헬조선’과 ‘탈조선’이라는 용어가 회자된 지 벌써 한참이다. 길을 잃지 않고 제대로 자라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즈려 밟고 가게두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면, 저 말들에서 엿보이는 슬픔과 자조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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