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출부진의 원인은 수출량보다 수출가격의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 하지만 정부의 무역투자진흥대책 발표에서 이러한 ‘근본 원인’에 대한 진단조차 없었다. 또 수출의 ‘질’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수출확대를 위한 대책은 그럴싸하지만 근본 문제를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제11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개최하고 한국의 수출증가율을 높이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으나 경제계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계획의 추진전략 및 방향으로는 ▲상반기 중 수출지원 사업 집중 시행 ▲급성장 지역으로의 수출시장 다변화 ▲중소기업의 수출참여 확대 ▲수출구조 혁신 등 4개로 구성됐다.

세부 추진방안으로는 수출현장의 숨은 애로 사항을 해소하고 수출기업들이 공격적인 해외마케팅을 전개할 수 있도록 올해 상반기 중 전체 수출 마케팅의 60% 이상을 투입한다. 또 미국과 중국 등 일부 시장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아세안·인도 등 신흥시장 중심으로 재편한다.

중견·중소기업의 수출 저변 확대를 위해 내수기업의 수출기업 전환과 동시에 지원 규모를 늘리고 수출잠재력이 큰 기업군에 대한 지원도 확대한다. 아울러 수출 우수기업에 대해서는 연구개발(R&D) 과제 선정시 우대가점 적용 등 우선지원 제도를 마련한다.

아울러 수출품목은 다변화 및 고도화를 추진하고 전자상거래 수출촉진 및 글로벌 유통망 진출 확대를 장려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중견·중견기업 수출 저변 확대, 새로운 수출방식의 활성화, 신규 유망품목 수출확대, 주력품목 수출회복 등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번 무역투자진흥 발표에 대해 실효성 지적이 점증하고 있다. 추진하려는 계획은 많지만 이미 과거에 내놓은 정책을 재탕·삼탕하는 것은 물론 그 계획도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주를 이룬다.

한국 수출, 양(量) 아닌 질(質)의 문제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1월 통관기준 수출이 두자리수 증가세를 보이는 등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나는 모습이다. 지난 3년간 지속된 수출 감소세가 마무리 되고 지난해 11월 이후 3개월 연속 플러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 한국의 수출 금액 및 증가율 추이(억 달러, %) [출처:한국금융연구원]

수출이 회복세를 보인 가장 큰 원인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글로벌 경기 호전으로 인한 세계교역규모가 반등한 점이 꼽힌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것인지 여부다. 현재 주요국 제조업 경기는 회복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제조기업들의 재고보다 출하량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재고부담이 낮아져 향후 생산량을 늘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일본 등 주요국에서는 재고출하 비율이 충분히 낮아진 상황이며 경기부진으로 재고를 줄이는 기업활동이 생산을 더욱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또 각국 정부와 기업들의 구조조정 노력으로 세계 제조업 경기회복의 걸림돌이었던 과잉공급능력 문제도 점차 해소되고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전자부품 부문은 글로벌 인수합병(M&A)과 생산라인 구조조정으로 판매단가가 상승하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 미국이나 중국 등 주요국의 보호주의 압력이 높아지고 있어 한국 수출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 수출가격 및 수출금액 증가율 추이(2014년 상반기=100, %)[출처:한국금융연구원]

현재 국내 수출을 주도하고 있는 품목은 석유화학, 석유제품, 반도체, 평판디스플레이 등인데 반해, 또 다른 주력 수출 주도 품목인 무선통신기기, 자동차, 선박 등의 업종은 여전히 수출 부진이 우려되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경기 회복이 국내 수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내놓은 정책 중 하나인 수출 현장애로 해소 및 수출지원사업 집중지원은 분명 필요한 대책이다. 하지만 최근의 수출 회복세를 제외하고 그간 우리 수출이 왜 부진했는지에 대한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송민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수출가격 하락이 상품 수출금액 감소의 근본적 원인이었다”며 “수출부진에 대한 정책은 수출물량을 늘리기보다 수출가격 하락의 부정적 영향을 완화시키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수출물량 추이를 보면 지난 2000년대 들어 세계교역이 비약적으로 증가해 주요국의 수출물량은 2008년에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전세계 수출물량이 2008년대비 약 12% 감소하고, 주요국의 수출물량도 급격하게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한국의 수출물량은 2009년에도 전년 수준을 유지했다. 이후 세계교역이 빠르게 회복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수출물량 증가세는 주요국에 비해 여전히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 2015년 한국의 수출물량은 2008년 정점대비 64% 증가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전세계 및 아시아 신흥국 수출물량이 각각 17%, 38%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고무적인 수치다.

한국의 수출물량이 과거 대비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은 전세계적으로 수요가 부진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수출물량의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의 월별 상품수출 금액은 국제유가가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한 2014년 7월부터 감소세로 돌아섰으며 최근까지 지속됐다. 이기간 동안 한국의 상품수출 가격은 19.1% 하락해 전세계 상품수출가격 하락폭(17.6%)을 넘어섰다. 결국 한국의 수출부진은 물량의 문제가 아닌 가격의 문제로 좁혀진다.

수출가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산구조 효율화와 R&D투자 등을 통해 생산성 제고가 필요하다. 또 수출주력 품목을 다변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울러 수출지역 다변화와 유가 등 외부변수로부터의 가격 민감도가 낮은 서비스 수출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보면 정부의 정책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지만 정부의 무역투자진흥이 수출량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혹은 가격에 집중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 목표가 명확해야 세부내용도 보다 구체적으로 세울 수 있다. 단순히 좋아 보이는 것을 나열하는 ‘백화점식 정책’이라는 말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이번 정책 발표에서 단 한번도 수출가격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수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막연한 정책을 내미는데 그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