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타트업 대표 인터뷰를 하면서 당황했던 순간이 있습니다. 업력이 7년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규모나 움직임, 비전이나 로드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를 수 있는 스타트업의 면모를 가지고 있는데 업력이 7년이라고 말하니 살짝 혼란스러웠습니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은 3년 내외의 초기기업을 말하는데, 보이는 것은 스타트업인데 업력이 7년이라.

 

매우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벤처와 스타트업 경계는 무엇인가. 아니, 스타트업의 정의는 무엇인가?

물론 나름의 잣대로 스타트업을 규정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하지만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이걸 굳이 나누는 것도 의미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스타트업의 정체성. 바로 여기에서 우리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존경할 수 있는 스타트업
최근 "한국 스타트업은 존경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없다"는 말이 나옵니다. 새로운 논쟁은 아니고 꽤 예전부터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메가IT 트렌드를 만들 수 있는 스타트업! 우리는 왜 이러한 스타트업이 없나!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대기업에서는 존경할 수 있는 기업이 나올 수 없다'라는 전제가 깔립니다. 이 부분은 '부의 세습으로 경제인이 된 금수저들이 존경받을 수 있겠는가'라는 문제의식도 있어요. 나아가  '규제 일변도인 한국에서 존경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나올 수 없다'는 의식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대기업은 포기하고 스타트업만 보면, 규제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한국에는 존경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없다'고 되는 겁니다.

모두 인정합니다. 먼저 '대기업에서는 존경할 수 있는 기업이 나올 수 없다'부터 보면 제조업 일변도와 정경유착으로 큰 대기업의 원죄를 훑어내며 그들의 경직된 조직문화를 이유로 삼아 논지를 전개합니다. 화끈하게 말하면 사실이에요. 이런 상태에서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여 불확실성의 바다로 뛰어가는 것을 바라는 것이 사치입니다.

'부의 세습으로 경제인이 된 금수저들이 존경받을 수 있겠는가'는 대기업의 역량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태어나보니 재벌2세, 재벌3세가 된 사람들은 한계가 있다는 뜻. 참고로 미국 피터슨국제연구소(PIE)가 1996년부터 2015년까지 포브스 억만장자 명단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경우 10억달러의 자산가 중 상속자 비율은 2014년 기준 74.1%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4명중 3명은 윗대의 부를 세습한 케이스라는 뜻입니다. 자연스럽게 절망한 우리는 스타트업에 시선을 돌립니다.

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 외부환경이 문제에요. '규제 일변도인 한국에서 존경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나올 수 없다'는 결론이 또 나옵니다. 액티브엑스와 공인인증서, 신용카드 개인정보 확인의 눈물겨운 분투기 등등. 아주 다양한 이유로 설명할 수 있는 규제 일변도 환경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테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자, 그래서 최종결론은 '대기업은 포기하고 스타트업만 보면, 규제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한국에는 존경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없다'고 되는 겁니다. 여기에는 순응해버린 스타트업 '구성원'에 대한 한계론도 배어있습니다. '기타 등등'의 이유는 규제와 더불어 많은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스타트업 구성원들도 존경받을 수 있는 업적을 세우지 못했다는 주장이 나와요. 능력의 부족함이거나, 그 외 다양한 이유를 말합니다. 현질에 천착하게 되고 일반적인 모델만 꾸리는 스타트업의 현재.

여기서 더 확장된 논리가 나옵니다. '이 바보들아, 외국을 봐라. 우버를 보고 에어비앤비를 봐라. 그들은 세상을 바꾸고 있다. 메가IT 트렌드를 주도한다'라는 논지입니다.

▲ 출처=플리커

...다를 것 없어 보이는데?
어떤 사안을 분석하려면 단면만 보면 곤란합니다. 또 단편적인 부분만 파고들어도 위험합니다. 요즘 페이크 뉴스를 보면 알아요. 온통 거짓으로 채우면서도 사이사이 진실을 채운 후 '논쟁'을 끌어내어 본질을 흐리거든요. "OOO은 북한의 스파이다. 페이스북에 북한을 찬양했고, 김정은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눌렀고(!) 야당을 지지했기 때문이다"는 페이크 뉴스가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OOO은 야당을 지지했으나 북한을 찬양하고 김정은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른적이 없습니다. 맞아요. 거짓에 진실을 꽂아 본질을 망치는 방식.

약간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국 스타트업은 존경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없다"는 주장은 이와 닮았습니다. 보겠습니다.

한국 대기업이 문제가 많고 규제 일변도가 심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틈바구니에서 한국 스타트업은 대내외적인 이유로 존경받기 어려운 상태가 된 것도 맞아요. 다만 이 부분을 광범위하고 깊게 보려면 '존경의 정의'부터 있어야 합니다. 도대체 존경의 범위와 정의는 무엇인가요. 얼마만큼 사랑을 받고 역경을 딛고 일어서야 존경받을 수 있나요? 얼마나 세상을 바꿔야 존경을 받을 수 있나요?

스타트업과 벤처의 경계만큼 어렵습니다. 특별한 기술을 개발해 전국의 화장실에 저렴한 가격으로 자동 세척장치를 설치해도 나름 세상을 바꾼겁니다. 학업에 지친 학생들을 위해 공부와 재미를 동시에 주는 게임을 개발해도 세상을 바꾼거에요. 배달음식을 모바일로 시킬 수 있게 만든 것도 패턴의 변화. 이 역시 세상을 바꾼겁니다. 메가 트렌드의 주도가 나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마찬가지에요. 세상을 바꾸다는 개념은 좁은곳에서 시작된 소소한 변화에서 거대한 시작점을 알릴 수도 있다는 겁니다.

차라리 이 부분은 비즈니스 모델이라 지속가능한 모델적 측면에서 따져야 합니다. 모바일 배달앱으로 얼마나 돈을 벌어, 지속가능한 모델로 만들 수 있나. 이 문제에 집중하면 다음 단계의 새로움을 모색하는 의지가 보이게됩니다. '이걸 바탕으로 푸드테크를 하는 것'도 좋은 선택지입니다. 물론 망할 수 있지만, 이런 사업적 리스크는 애플과 구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누구도 세상을 바꾼다는 혁신의 '현재'를 오만하게 정할 수 없다는 것. '크고 아름다운 과일'만 보니까 생기는 패착입니다.

여기서 다른 이야기를 해봅시다. 존경이 혁신과 비례할까? 저는 매우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걸 누가 정하느냐!"입니다.

이야기가 다시 돌아가네요. 하지만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있습니다. "한국 스타트업은 존경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없다"는 주장의 종착점. '이 바보들아, 외국을 봐라. 우버를 보고 에어비앤비를 봐라. 그들은 세상을 바꾸고 있다. 메가IT 트렌드를 주도한다'라는 논지의 불합리함입니다.

거칠게 접근하자면 우버와 에어비앤비도 한국 스타트업과 비슷해요. 세상을 바꾼다? 그 사이즈는 누가 정하는가. 돈? 서비스 범위? 글로벌 시장 진출? 이렇게 생각하면 공유경제, 혹은 온디맨드 업체들은 혁신의 원조가 되겠네요. 생각합시다. 플랫폼 사업자, 중개업자는 당연히 고리대금 돌리던 중세 유대인 상인들이 혁신의 원조가 됩니다. 그렇다면 생태계 전략? 대자연이 혁신의 원조군요.

물론 글로벌 스타트업에 배울 것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과감하고 눈부신 전략으로 다양한 방법론과 기술을 동원해 세상에 큰 울림을 주고 있어요. 하지만 그들의 방식마저도 태초의 혁신은 없었고, 또 현실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테라노스의 몰락과 매직리프에 피어나는 의혹의 안개를 보세요. 모두 일장일단이 있는 겁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한국 스타트업은 존경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없다"에 반대해야 합니다. 혁신은 좁은 지역에서 벌어질 수 있고, 누구나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존경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존경의 대상도 반드시 스타트업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누구에게나, 어디든 발견할 수 있는 가치입니다.

배달의민족은 혁신이 없고, 우버는 혁신이 있다? 우버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비정규직 기사들은 슬퍼질 수 있고, 자율주행차시대가 열리면 죽을 수 있습니다. 지나친 사대주의는 걷어냅시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좋은 화두입니다. '배우고 노력해야 한다'는 의제. '혁신은 모두에게 있어요'라며 멍청하게 현재에만 안주하면 곤란합니다. 이것만 하면, 다들 혁신이고 존경받아요. 우리 스스로를 너무 비하하지는 맙시다.

[IT여담은 취재과정에서 알게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번은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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