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 사진 =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사장(社長)’의 어깨는 언제나 무겁다. 같은 뜻으로 통용되는 ‘대표’, ‘책임자’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가 승승장구할 때는 사장의 능력이 조명받는다. 부진할 경우에는 반대로 도마 위에 오른다.

이유는 분명하다. 한 사람의 의사결정이 회사의 미래 방향성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사장의 리더십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의 데뷔무대

27일 오전 인천 대저동에 위치한 대한항공 정비격납고.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1월11일 공식 취임 이후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꿈의 항공기’라 불리는 ‘보잉 787-9’기를 공개하는 자리에서다.

대한항공이 국내 최초로 들여온 ‘보잉 787-9‘기는 탄소복합소재·알루미늄 합금 등 첨단 소재를 사용해 기술적 진보를 이뤄낸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탄소배출량을 20% 줄이고, 연료소모율은 20% 낮췄다. 기내 기압과 습도를 효율적으로 조절해 쾌적한 실내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도 눈에 띈다. 진일보한 ’차세대 항공기‘로 분류된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새로운 항공기에 쏠렸다. 동시에 조원태 사장에게도 이목이 모였다. 이번 행사가 사실상 그의 ‘데뷔무대’였기 때문이다. 여객본부장 등을 역임할 때 공식석상에 나타난 적은 있지만 사장 취임 이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대한항공 보잉787-9 차세대 항공기 (자료사진) / 출처 = 대한항공

첫인상은 다른 그룹의 오너 3세 경영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행사 시작에 앞서 인사말을 건넨 정도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큰 키로 좌중의 시선을 한번에 사로잡았지만, 수백개의 귀를 긴장시킬 만큼 인상적인 화법은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항공기에 대한 설명이 끝난 뒤 조 사장은 숨겨둔 카드를 꺼내들었다. 새로 도입한 항공기 내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것이다. 90여명의 기자들은 이코노미석에 모여 앉았고, 조 사장은 승무원들이 주로 안내를 하는 위치에 섰다. 키가 훤칠한 탓에 천장이 유독 낮게 느껴졌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조 사장 혼자였다. 평소 추진력이 강한 성격으로 알려진 그다.

기대가 높으면 실망도 큰 법. 조 사장은 기자들의 날선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평이한 질문에 우물쭈물하기도 했다. 알찬 내용보다 원론적 답변만 거듭했다. 무언가를 물어보면 곧바로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앞자리에 배석한 담당 임원들을 쳐다보는 모습엔 자신감이 부족한게 아닌가 싶었다.

성장통 겪은 리더십···대한항공 날 수 있을까

기내에서 진행된 ‘이색 간담회’는 50분 넘게 진행됐다. 당초 예정된 시간은 30분이었으나 조 사장의 의지로 시간이 연장됐다. 사회자가 “시간 관계상···” 이라고 언급하자마자 그는 “질문을 다 받겠다”고 강조했다.

▲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기내에서 열린 간담회 자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출처 = 대한항공

시간이 지나며 조 사장의 진가 드러났다. 긴장이 풀렸는지 적당히 농담을 섞어가며 유연하게 대화를 끌고갔다. 나름 의미 있는 발언도 이어졌다. 올해 매출 목표를 12조원으로 정했다는 점, 부채비율을 줄이기 위해 체질개선을 계속하겠다는 의지 등을 피력했다.

조 사장은 “차세대 항공기를 꾸준히 도입하겠다는 게 개인적인 목표”라며 “부채비율을 줄이는 데는 무리가 가겠지만, 궁극적으로 서비스 질 개선을 통해 매출 신장을 이루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이코노믹 석을 적용할 것이라는 계획과 이란 여객기 취항이 실패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이란에서는 외화 송금이 안되고 원화를 받아주지 않아 취항이 힘들다는 게 골자다. 최근 기내 안전 논란 등을 의식해 승무원 내부 지침을 구체적으로 확립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대한항공에서 경영기획, 화물영업, 여객사업 등을 맡으며 쌓아온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조 사장은 이날 극도로 농축된 ‘성장통’을 겪었다는 분석이다. 자신의 경영 철학과 회사의 앞날을 분명하게 외부에 전달할 수 있는 능력도 사장의 가장 중요한 리더십 덕목 중 하나다. 처음 보여줬던 우물쭈물한 모습은 간담회가 끝날 무렵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목소리에 점차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더니 이내 눈빛도 달라졌다.

전문가들은 올해 항공 업계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환율·유가 등이 우호적이지 않아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한진해운 이슈 등의 영향으로 순손실을 기록했으며, 부채비율도 1000%를 넘어가고 있다.

▲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 사진 =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조종사 노조와의 갈등 역시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조종사 노조는 37%의 임금 인상을, 사측은 1.9%의 급여 상승을 고집하고 있어 간극이 큰 상황이다.

조 사장은 앞서 취임 직후 노조와 만남을 추진하며 ‘소통 경영’을 위해 손을 뻗었다. 그가 ‘보잉 787-9’기 도입 행사에서 보인 ‘리더십’이 앞으로 회사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