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두 사람이 모이면 그 자리 없는 사람을 흉보고, 세 사람이 모이면 둘이서 한 사람을 병신 만들고, 네 사람이 모이면 둘씩 나누어 패싸움을 한다’고 한다.

조선왕조의 사색당파(四色黨派) 싸움은 국력의 결집력을 약화시켜 정치‧사회‧문화 등이 흔들려 기존의 사회 관습과 정체성 전체가 진흙탕 속에 빠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같은 가혹한 시련을 스스로 불러들여 국민을 도탄에 빠뜨렸다.

​‘분열하고 갈등하는 조선인의 DNA를 물려받은 한국인은 아직도 자신을 다스릴 능력이 없기 때문에 독립된 정부 형태가 되어도 당파싸움으로 다시 붕괴될 것이다’라고 정치 평론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일본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한국을 떠나며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데, 조선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한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라고 했다.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서로를 이간질하는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가 국교인 불교로 썩어가는 사회를 혁신하고자 덕(德)을 숭상해 염치와 남에 대한 배려를 기초로 하는 유교로 강령을 삼아 600여년을 잘 다스려왔으나, 기존의 가치를 혁신하지 못하고 힘이 약화된 끝에 일본의 강점으로 왕조의 끝을 내렸다.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어 승복하고 합의를 따라가는 민주적인 과정을 제대로 체험하지도 못한 채 근‧현대로 넘어왔다. 지금도 이미 헌법을 선포하고 입헌주의를 받아들인 대한민국은 지금도 대의와 헌법에 의한 시시비비를 따져 결론을 얻어가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명분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꼬투리를 잡으며 궤변들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이전투구(泥田鬪狗)가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열강인 중국과 일본이 피지배민인 조선민에게 분열정책을 잘 구사해 모든 사람을 파렴치한으로 만들었다기보다는 우리나라의 국민 자체가 너무 다양한 기질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이를 체질별로 살펴보면, 우선 소음인은 질투가 심해 잘난 사람을 헐뜯기를 좋아한다. 상대가 있는 앞에서는 당당하게 따지며 시시비비를 하지 못하고, 상대가 없는 틈타 훼손을 시도하다 심하면 흥분하며 있지도 않은 사실을 인용하며 웅변조로 성토한다. 낮은 자존감 때문에 냉정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의심이 많고 남에게 핑계를 대는 투사(投射)가 심해 분열을 조장하기에 충분하다. 알고 보면 별 것도 아닌 일에 깊이 파고 들어가 침소봉대하며 자기 잘못을 알게 되어도 체면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굽히지 않고 목숨을 걸기도 한다.

소양인은 조금 잘못된 것도 참지 못하고 꼭 지적하며 입바른 소리를 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하지 못하고 내뱉은 말이 화근이 되어 잘못을 심하게 과장시켜 패를 가르고 ‘왕따’를 만들기 쉽다. 자신만이 정의로운 것 같아도 힘이 강할 때는 그 가치가 유지되지만, 힘이 뒷받침되지 못할 때는 패가망신하기가 일쑤다. 순간적인 논리에 강할 뿐 근본적인 철학이나 숙고 없이 기분에 따라 행동하다가 뒷감당을 못하고 무너지는 용두사미가 되는 일이 흔하다.

태음인은 생각이 깊어 주어진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심사숙고를 한다. 그러나 한번 내린 결론은 절대로 굽히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황소고집이다. 모든 일이 힘과 노력으로만 이룩되는 것이 아니고 지향하고 있는 방향성이 중요한데, 가는 방향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무조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무조건 밀어 붙이다가 결국 문제를 일으킨다. 자기를 따르지 않으면 무조건 변절자로 낙인을 찍고, 잘못된 줄 알면서도 체면 때문에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미련스럽게 밀어붙인다. 그러니 카리스마로 이끌어 가며 반대편을 용납하지 못하고 다른 길을 가면 반드시 복수를 해야만 죽을 때도 눈을 갚을 수 있다고 결의를 다진다.

하지만 변화는 변절이 아니라 합리적인 결론을 얻어가는 과정이고 하나의 고정된 시각을 다른 눈으로 보고 발전을 해나가기 위한 새로운 모색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현명한 사람을 질투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을 깔보는 것은 모든 사회적 병리의 원인이고, 남을 배려하기를 좋아하고 착한 일을 몸소 실천하는 것은 건전사회의 시작이라는 것이 사상의학의 기본 정신이다. 한국은 지금 이런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할 시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