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를 보다 보면 유난히 기술이 좋은 선수들이 있다. 이런 선수들을 일컬어 소위 테크니션이라 부른다. 이들은 경기의 흐름을 일순 바꾸기도 하고 승부를 결정짓는 한방을 터트리며 남다른 클래스와 존재감을 발휘하곤 한다. 시계에도 그런 선수들이 있다. 하이 컴플리케이션을 앞세운 럭셔리 워치들은 시간은 물론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며 다이얼 위를 보다 화려하게 수놓는 시계들이다. 이런 테크닉을 갖춘 시계들이 올해 벽두부터 유난히 많이 등장했다. 얼마 전 폐막한 SIHH 2017(스위스고급시계박람회)도 이를 증명하는 자리였다. 하이 컴플리케이션과 신소재를 앞세운 럭셔리 워치 브랜드들의 약진이 눈에 띄었는데, 리차드 밀과 로저드뷔처럼 하이 컴플리케이션을 상징하는 시계들은 물론 바쉐론 콘스탄틴과 까르띠에 처럼 내공 있는 실력자들까지 가세하며 시계 마니아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선 리차드 밀은 2016년 에어버스에 이어 2017년에는 F1 레이싱팀인 맥라렌와 협업해 새로운 시계를 선보였다. 이는 항공 소재에 이어 F1 머신에 적용되는 신소재를 이용해 시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RM 50-03 투르비용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 울트라라이트 맥라렌 F1이란 시계인데 신소재가 적용된 덕분에 전체 무게가 38g이다. 이 시계에 들어간 신소재를 나열해 보자면 티타늄, 카본 TPT, 그래프 TPT 등이다. 언급된 소재들은 스테인리스 스틸과 비교해 6배 이상 가볍고 200배 이상의 내구성을 보장해 극한의 상황에서도 시계의 무브먼트와 형태를 보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케이스가 만들어지는 과정 역시 예사롭지 않다. 리차드 밀이 공개한 자료에는 2차 가공된 카본 TPT 케이스는 600여 개의 층에 달하는 병렬 필라멘트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각 층들은 최대 두께가 30 마이크론에 불과하고 이를 그라핀(흑연을 가장 얇게 한 겹 떼어낸 것)이 함유된 초고밀도 합성수지에 침전시킨 후 CNC 기기로 점착시키면서 각 층의 방향을 45°씩 회전시켜 층을 쌓아 올린다고 한다. 이어 6기압의 압력으로 120°C의 온도에서 가열하는 과정에서 케이스의 내구성은 최대치로 올라간다고 한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RM 50-03 투르비용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 울트라라이트 맥라렌 F1의 케이스 크기는 가로 44.5mm, 세로 49.65mm, 두께 16.1mm로 손목 위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리차드 밀 못지않은 테크니션으로 꼽히는 로저드뷔 역시 플라잉 투르비옹이라는 주특기를 잘 살리며 2017년을 기대케 했다. 로저드뷔는 SIHH 2017에서 타이어 제조업체인 피렐리와 콜라보레이션 한 시계를 선보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피렐리 더블 플라잉 투르비옹이란 이 시계는 카본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케이스는 물론 무브먼트 곳곳에도 카본을 사용해 내구성은 물론 시계 전체적인 무게를 낮추는 효과를 이뤄냈다. 피렐리의 존재감은 스트랩에서 발휘됐다. F1 공식 타이어 공급업체인 피렐리는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피렐리 에디션을 위해 기꺼이 실제 F1 경기에서 우승한 피렐리 인증 타이어 조각을 선사했다. 덕분에 개성 넘치는 스트랩이 완성됐다. 이 밖에도 연료 게이지에서 영감을 받은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 역시 눈길을 끈다. 9시 방향에 자리한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는 하이와 로우로 표시돼 시계에 남은 동력을 정확히 표현해 낸다.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피렐리 더블 플라잉 투르비용은 47mm 블랙 DLC 티타늄 스켈레톤 케이스를 장착했고 로저드뷔의 상징과도 같은 아스트랄 스켈레톤 디자인이 적용돼 시각적으로도 만족도를 높였다. 게다가 이 시계는 전 세계 단 8점 한정 발매됐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단 함 점의 시계로 하이 컴플리케이션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줬다. 셀레스티아 애스트로노미컬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3600은 바쉐론 콘스탄틴 매뉴팩처의 실력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우선 탑재된 기능의 수만 해도 압도적이다. 시간과 날짜는 물론 퍼페추얼 캘린더 등 23가지 기능이 탑재돼 웬만한 시간은 모두 확인이 가능하다. 바쉐론 콘스탄틴 측은 셀레스티아 애스트로노미컬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3600을 만드는 데만 도합 7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전했다. 우선 연구 개발을 위해 5년이란 시간이 투자됐고 디자인과 컴플리케이션 배치를 위해 고민하는데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시계 케이스와 백케이스는 하이 컴플리케이션의 향연이 펼쳐지며 보는 즐거움을 배가했다. 항상 남녀 불문하고 취향저격 시계를 선보이던 까르띠에도 2017년에는 테크니션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미닛 리피터와 더블 투르비옹을 장착한 미닛 리피터 미스터리 더블 투르비옹을 선보인 것. 얼핏 보면 까르띠에의 시계란 생각이 들지 않는 이 시계는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미스터리 투르비옹이 백미인 시계다. 여기에 미닛 리피터까지 장착해 눈과 귀를 모두 만족시키는 시계로 꼽히고 있다. 스켈레톤 다이얼이 적용된 덕분에 미닛 리피터의 움직임은 물론 전반적인 무브먼트의 움직임까지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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