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대를 모았던 해외의 굵직한 알츠하이머 치매치료제들이 잇따라 임상에서 실패하면서 국내 업계 분위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의 알츠하이머 치매치료제인 솔라네주맙이 임상에서 고배를 마셨다. 솔라네주맙은 경증 환자의 인지능력도 개선시키지 못했다. 지난 14일(현지시간)에는 MSD가 알츠하이머 치매치료제인 베루베세스타트의 후기 임상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왜 생기나

알츠하이머 치매를 유발하는 기전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기전이 밝혀지지 않아 질환의 치료도 근본적인 치료가 아닌 증상만 완화시키는 데 그치고 있다.

현재까지 알츠하이머 치매를 유발하는 기전에 대한 가설은 베타아밀로이드 가설이 제일 유력하고 다음이 타우단백질 가설이다.

뇌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어떤 이유로 서로 뭉치면서 플라그(Plague)를 형성해 뇌기능을 저하시킨다는 것이 베타아밀로이드 가설이고 뇌 세포 안 타우 단백질이 인산화하면서 응집체를 형성해 뇌세포의 퇴행을 유도한다는 것이 타우 가설이다.

솔라네주맙과 베루베세스타트 등 전세계적으로 알츠하이머 치매의 근본적인 치료를 목표로 하는 치료제들은 질환의 초기 바이오마커(Biomarker, 생체표지자)인 베타아밀로이드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

때문에 거대 제약사들의 알츠하이머 치매치료제가 연이어 실패하면서 가장 오래된 베타아밀로이드가설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예견된 임상실패…베타아밀로이드 가설의 종말?

해외 빅파마들의 알츠하이머 치료제 임상 실패는 놀라운 일은 아니라는 시각이 많다.

양승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치매DTC융합연구단 박사는 “각 제약사에서 공식적으로 발표가 안 된 것뿐이지 임상시험실패는 학계에선 이미 공공연하게 예상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양승훈 박사는 “알츠하이머 치매가 일어나는 기전은 아주 복잡하고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며 “나이든 사람만 질환에 걸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실패한 약들이 임상시험에서 초기, 중기, 말기 등 어느 단계의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지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약을 투여하는 루트와 농도도 중요하다”며 “경구로 투여하는지 주사로 투여하는지에 따라서도 효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베타아밀로이드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들이 실패를 가설의 실패로 단정짓는 것은 이르다는 주장이다.

최호진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신경과 교수 겸 대한치매학회 홍보이사는 “애초에 베타아밀로이드 가설에서도 베타아밀로이드에 의해서만 알츠하이머병이 발생한다고 보지 않았다”며 “노화된 뇌조직에서 베타아밀로이드의 이상 축적이 여러 독성 작용을 발생시키고 이 과정에서 타우 단백질이나 여러 염증 물질이 상호 작용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최호진 교수에 따르면 베타아밀로이드 가설을 지지하는 연구자들은 베타아밀로이드를 표적으로 하는 신약 개발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로 알츠하이머 환자에서 증상의 발생과 베타아밀로이드 축적 시기의 불일치를 지적한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증상이 나타나기 20여년 전부터 베타아밀로이드의 축적이 시작되기 때문에 증상이 나타날 때는 이미 축적이 완료된 상황이라 베타아밀로이드를 억제하는 치료가 들어가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따라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가족성 체성우성 유전 형태를 보이는 알츠하이머병 (Auotosomal dominant familial alzheimer’s disease) 가계에서 아직 증상이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베타아밀로이드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워싱턴 대학에서는 DIAN(Dominantly Inherited Alzheimer Network) Study라는 연구 네트워크를 결성해 알츠하이머 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부모의 자녀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최호진 교수는 “베타아밀로이드의 역할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 업계, 치매치료제 개발 지속

근본적으로 알츠하이머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가 개발된다면 전세계적 '블록버스터' 약물이 된다. 국내에서도 기대를 걸고 알츠하이머 치매치료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주로 천연물 신약과 줄기세포치료제가 대세다.

 

개발을 진행 중인 회사는 네이처셀, 동아쏘시오그룹, 대웅제약, 메디포스트, 메디프론, 알바이오, 일동제약, SK케미칼, 차바이오텍, 퓨리메드 등 약 10곳이다.

업계관계자에 따르면 해외 빅파마의 이어진 임상실패가 업계 분위기에 영향을 주긴 하지만 대부분의 제약사 임상 진행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전망이라고 한다. 단일 대상만 표적으로 해서는 치료제 개발에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국내 업계도 인지하고 있다.

오원일 메디포스트 부사장은 “치매는 유전적 원인과 노화 등을 포함한 다양한 질병 환경에서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병하므로 여러가지 타겟을 동시에 노릴 수 있어야한다”고 지적했다.

메디포스트는 알츠하이머 줄기세포치료제 ‘뉴로스템’을 개발 중이며 지난 2011년 임상 1상을 치고 2013년부터 제형을 바꿔 임상 1/2a상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1/2a의 1단계 임상을 마치고 2단계 임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오원일 부사장은 “기존 치료제들이 베타아밀로이드 응집을 억제하는 등 한 가지 치료 기전에 의존하고 있었다면 뉴로스템은 베타아밀로이드가 신경세포를 사멸시키는 것을 막고 축적 시 이를 제거할 수 있는 효소를 활성화하며 뇌 내의 전반적인 염증 환경을 해소하고 항산화 효소 작용(Anti oxidative stress)을 하고 타우 단백질의 과인산화를 억제하는 등 발병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복합적 치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치료제 형태로 인체에 투여된 줄기세포는 체내 환경의 자극을 받아서 여러 가지 물질을 분비하는데 개인별 환경에 맞춤형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치료에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치매DTC융합연구단 김영수·양승훈 박사팀은 최근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의 이상 현상을 동반 억제하는 신약 후보물질인 Necrostatin-1(네크로스타틴-원)을 개발했다. 현재 기술이전을 위해 국내 제약사와 시기를 조율 중이다.

현재로선 꾸준한 관리가 답

근본적인 치료제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현재까지 알츠하이머 치매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리가 답이다. 

최호진 대한치매학회 홍보이사는 “치매와의 전쟁이라고 해서 사회 전반적으로 치매를 완치할 수 있는 치료제에 대한 기대감이 높고 정부도 이를 장려하는데 치매는 기본적으로 얼마나 관리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근본적인 치매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를 게을리 하면 안 되지만 치매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존의 (증상 완화) 치매 치료제의 효과를 올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특히 치매로 인해서 고통 받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를 도와 줄 수 있는 비약물적 치료와 환경 개선에 대해서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