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편의점은 대도시에서나 볼 수 있었던 '문명의 산물'이었습니다. 아직은 골목마다 늘어선 슈퍼마켓이 익숙하던 시기. 중요한 약속을 할때 "후문 편의점 앞에서 오후 6시에 만나"라며 손을 흔들던 추억이 지금도 아련합니다. 맞아요. 편의점은 희소성이 있었습니다. 불과 10년전의 일입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편의점 천국이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을 나와 직장을 잡고 결혼도 했지만 별로 철이 들지도, 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골목은 변했더라고요. 거의 100미터마다 늘어선 편의점들. 365일 24시간 환한빛을 밝히며 손님을 맞이하는 편의점에서 우리는 1000원짜리 과자를 사고 당당하게 신용카드를 내미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소소한 일화가 웹툰으로, 소설로, 영화로 만들어지는 편의점 일상화의 시대에요.

 

편의점, 어디까지 갈래?
1인 가구의 등장과 불황에 따른 소규모 창업 열풍이 거세지며 편의점 시장의 외연적 확장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당장 대형마트를 위협하고 있다는 말도 들립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대형마트 3위 사업자 롯데마트의 매출이 5조9000억원을 기록한 가운데 GS리테일이 5조5000억원을 기록하며 바짝 추격하고 있습니다. 2018년이 되면 GS리테일과 BGF 리테일이 롯데마트 매출액을 뛰어넘을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편의점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물론 소상공인의 시각에서 보면 "성공적인 외연적 확장을 과연 성공이라고 불러야 할까?"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3만점을 넘긴 편의점 숫자를 한국 인구 5200만명 기준으로 게산하면 약 1480명 중 1개의 점포가 있는 셈이에요. 치킨게임이 무섭게 벌어지고 있으며 폐업하는 곳도 많기 때문입니다. 당장 신세계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편의점 위드미의 경우 큰 폭의 적자가 계속되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하지만 사업적 관점에서 보면 편의점이 우리 일상생활의 중요한 지점으로 파고든 것은 확실합니다. 이제 우리는 "후문 편의점 앞에서 만나"라는 약속을 할 수 없어요. 너무 많으니까. 익숙해졌으니까.

사실 현대인에게 있어 편의점은 묘한 의미를 가집니다. 1인 가구의 등장과 할인 서비스와의 콜라보, 먹방 등의 콘텐츠 확립을 비롯해 편의점 그 자체가 콘텐츠로 변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젊은층에서 '탕진잼(소규모 소비)'의 주 무대로 편의점을 선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저렴한 가격과 편리한 서비스. 편의점은 도시민들의 애환이 담긴 절절한 삶의 방식이 관통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편의점이 슈퍼마켓의 본질을 넘어 다양한 의미가 덧대어지는 것은, 일종의 숙명으로 보여집니다. 택배 서비스를 시작으로 어묵과 핫도구, 핫바 등 물품의 다양화는 이제 상식이 되었습니다. 일부 편의점의 경우 노래방을 설치하기도 하며 카페와의 콜라보도 시도합니다. 심지어 세탁소 서비스를 하는 곳도 있다고 하네요.

오프라인 거점의 강점을 살려 IT적 측면의 생활밀착형 솔루션과의 협업도 눈길을 끕니다. 커셰어링 서비스 업체 쏘카와 씨유의 만남이 눈길을 끕니다. 쏘카의 앱을 통해 사전에 차량을 예약하면 편의점에서 차량을 빌릴 수 있는 실험이에요. 산재해있는 편의점의 오프라인 거점을 활용한 O2O적 방법론입니다.

쏘카 임영기 사업본부장은 "국내 카셰어링 1위 쏘카와 편의점 업계 1위 CU의 업무협약으로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보다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며 “앞으로도 파트너사들과 함께 더 많은 고객들이 보다 쉽고 편리하게 카셰어링 서비스를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지속할 계획이다”고 전했습니다.

▲ 출처=쏘카

인터넷전문은행도 편의점과 만납니다. 본인가를 받은 케이뱅크가 컨소시엄에 참여한 GS25를 오프라인 거점으로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오프라인 매장이 없는 캐이뱅크의 특성을 살려 GS25의 지점을 '나만의 은행'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입니다. 택배의 진화도 눈에 들어옵니다. 백화점에서 물품을 사면 편의점에서 이를 받아볼 수 있는 방식입니다. 끝이 아니에요. 다양한 간편결제 솔루션의 생태계 확장을 위한 '시작점'의 역할도 가능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구글도 편의점 사랑에 빠졌습니다. 구글플레이 기프트 카드를 더 편리하게, 또 더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구글코리아와 GS리테일이 구글플레이 기프트 카드 시장 확대를 위한 전략적 제휴 및 상호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큰 의미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구글플레이 키프트카드 생태계 확장을 위해 손을 잡은 파트너가 편의점이라는 점이 흥미롭네요.

▲ 출처=구글

거점의 시대..모두의 아지트
편의점을 둘러싼 모든 실험은 1인 가구의 등장, 편의점 시대의 개막, ICT의 발전, 오프라인 거점으로의 매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에 가능했습니다. PB상품의 등장과 물품 라인업의 다양화, 편의점이 곧 콘텐츠가 되는 시대를 넘어 이제는 오프라인 물류 거점 플랫폼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편의점의 기능을 더욱 강화하고, 나아가 편의점 중심의 생활밀착형 서비스의 시대를 끌어올 수 있습니다. 사적 영역의 새로운 주민센터가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나간 전망일까요. 하지만 지금의 편의점은, 내일의 편의점은 삶에 지친 도시민들을 위로하고 보다듬으며 편리한 사용자 경험의 모든 것을 제공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입니다.

맞아요. 모두의 아지트이자 우리만의 사적 영역의 주민센터가 되는 겁니다. 재미있는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