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기업인은 끗발이 없는 건가"

지난 22일 우병우(50)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구속영장청구가 기각되자, 구속된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과 우 전 수석을 비교하며, 섭섭함을 토로하는 기업인들이 많다.

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부회장과 우 전 수석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안다.  이들 둘은 지위도 다르고 범죄의 혐의도 다르다. "왜 누구는 구속하고 누구는 구속을 하지 않느냐” 라는 것은 다분히 감정적인 반응일 뿐,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법조인들은 대체로 우 전 수석에게 적용된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이 입증하기 어려운 죄라는 점을 지적했다. 

박경준 변호사(법무법인 인의)는 "우 전 수석에게 적용된 직무유기는 일반적으로 처벌하기 쉽지 않는 죄“라고 하면서 “직무유기는 어떤 행위를 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면 할 말이 없는 범죄”라고 설명했다. 직권남용에 대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것을 지시했다고 하는 상황에서, 남용한 직권이 무엇인지 밝혀내기란 어렵다”고 봤다.

한 법조인은 “직무유기라는 것은 예를 들면 ‘경찰이 눈 앞에 물건을 훔치고 유유히 걸어가는 도둑을 도둑인줄 알면서도 일부러 체포하지 않은 경우인데, ‘도둑인 것을 알았는지, 잡을 수 있지만 일부러 잡지 않았는지’등 마음상태를 증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법조인은 “게다가 직무유기 형량이 적어서, 직무유기가 된다고 해도 이정도 형벌이면 사실 구속도 어렵다”면서, 또 직권남용에 대해서는 “이 경우는 처벌수위가 직무유기보다는 높지만, 민정수석의 직무범위가 워낙 넓어서 인사개입, 민간인 사찰 등 뭐든지 갖다 집어넣을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반면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주요 혐의는 뇌물공여죄, 특가법상 횡령과 재산국외도피죄 등주요한 내용이다. 뇌물공여죄만 입증되면 나머지 죄는 종속적인 것들이다. 이 부회장이 회사 돈으로 외국에 있는 최순실(박근혜 대통령과 경제적 공동체일 경우)에게 뇌물을 주었기 때문에 횡령죄도 성립되고, 재산국외도피죄도 성립된다.

특검은 이 뇌물공여죄를 중심으로 수사를 해왔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혐의를 염두한 점도 있다. 특가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형량이 징역 5년 이상이다. 우 전 수석의 직무유기는 징역 1년 이하이고, 직권남용은 징역 5년이하다.

이렇게 본다면 이 부회장의 뇌물죄등은 `명확하고 중형` 가능성이 높은 반면, 우 전 수석의 직무관련 범죄는 ‘모호하고 비교적 낮은 형량’ 가능성이다. 

구속영장기각, 우 전수석 죄가 없다고?

구속영장 기각으로 우 전 수석은 죄가 없는 것일까. 혐의를 벗은 것일까.

법원은 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청구를 기각하면서 “혐의 사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고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 고 그 이유를 밝혔다. 결국 직무유기 및 직권 남용의 증거가 없다는 것.

때문에 우 전수석을 사법처리하기 위해선, 이보다 더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원이 특검의 영장청구에는 그 결정적인 증거가 빠졌다고 봤기 때문이다.

반면 이재용 부회장은 뇌물죄에 포커스를 맞춰 여러 증거를 세팅했다는 것이 법조계의 분석이다. 직무관련 범죄에 비해 비교적 범죄구성이 명확한 뇌물공여죄에 대해 특검이 선택과 집중했다는 것.

그럼 우 전 수석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는 어디에 있을까.

박 변호사는 “애초부터 특검이 청와대를 압수, 수색하려 했으나 실패함을로써 한계가 있다. 거기에 증거가 잔뜩 있는데 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물론 우 전 수석이 현재까지 청와대와 교감하면서 많은 자료를 없앴을 것으로 보이지만, 증거라는 것이 감추면 ‘감춘 증거’가 또 나온다”고 말했다.

때문에 “우 전 수석을 옭아매려면, 이제라도 청와대에서 ‘증거인멸’한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범죄의 소명에 중점을 두지 말고 증거인멸에 방점을 두라는 것.

형사소송법에는 ‘증거인멸’을 구속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길은 있지만, 특검의 수사기간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는 그 마저도 먼길 같아 보인다.

법원,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봤나

이같은 법리적 문제를 떠나, 법원이 우 전 수석의 영장을 기각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영장전담 판사가 서울대 후배다`, `판사는 법만 따진다`, `영장전담 판사가 이번에 영장심사를 처음해서 그렇다`라는 말들이 많다. 다분히 감정적인 말이다.

그렇다고 법원의 영장심사가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이 부회장은 두번째 영장실질심사 끝에 구속됐다. 1차 영장청구때 법원은 삼성물산 합병을 위해 국민연금을 동원한 것이, 시기적으로 삼성그룹이 독일 코레스포츠에 220억원 특혜지원보다 먼저였다는 점에서 뇌물죄에 대한 범죄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법원이 두번째 영장실질심사때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행위가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지주회사전환 ‘全 과정’의 대가로 최순실을 매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소명됐기 때문이다. 법원은 ‘합병’이라는 나무가 아니라,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과정 전체’라는 숲을 본 것이다.

민정수석은 경찰, 감사원, 국세청, 검찰 등 사정기관을 감독 관리하며, 이들 기관의 최고급 정보를 다루는 자리다. 우 전 수석이 이 지위에서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몰랐고,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만 움직였다는 주장은 선듯 이해되지 않는다. 청와대에서 벌어진 일은 엄청난데, 민정수석이 할 일은 다 했다는 주장인 것이다.

다른 법조인은 “공무원이라고 다 같은 공무원이 아니다. 법원이 직무의 법적 의미만을 심사하고 그가 누구이고, 어느 지위이며 무슨 상황에서 직무를 수행했는지는 간과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판사들이 판결문에 자주 쓰는 `사회통념상에 비추어` 라는 표현을 이 사건에 사용하면 우 전 수석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싶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원이 이 부회장에 대해서는 전체를 조망한 반면, 우 전 수석에게는 부분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형평성 문제가 생기는 부분이다.

특검 수사기간이 끝나면, 우 전수석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으로 넘어갈 것이다. 우 전수석은 다시 검찰에서 팔짱을 끼고 여유롭게 서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