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초 필자는 인터넷 D포탈 연합의 ‘한복 입는 날’ 행사에서 운영지원 봉사를 했다. 몇 년간 몸담고 있었던 해당 커뮤니티들은 각각 다른 주제로 나뉘어 있었지만 겹치는 구성원들이 많았다. 커뮤니티들은 이전에도 여러 가지 행사와 이벤트를 공동 진행했으며 모임 차원의 인터넷 서신을 주고받을 정도로 서로의 커뮤니티와 구성원에 우호적이었다. 돈을 벌고자 함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이익이 가는 일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다시없을 한복 입기 행사에 너도나도 신청을 이어갔고 친구와, 가족과,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동참했다. 해당 커뮤니티는 한복을 주제로 모인 사람들도 아니었다.

연합 커뮤니티의 ‘한복 입는 날’, 2013년 행사는 3년째 지속되고 있었다. 최초 기획자 C 씨는 커뮤니티 통합 한복모임을 2011년 처음 시작했다. 2011년도에는 신라호텔이 한복 입은 사람을 입장 거절하여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있었던 시기다. 이어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으로 기성세대의 추억과 젊은 세대가 느끼는 신선함이 합쳐져 복고 아이템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해온 한복 커뮤니티(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비영리단체 ‘한복놀이단’, 동덕여자대학교의 ‘꽃신을 신고’)의 출발이 2011년이라는 것을 고려해 보면, 신라호텔의 한복 거절 해프닝은 잊혀져가는 우리 옷 한복을 재발견하자는 민간 모임 결성의 트리거가 됐던 셈이다. 90년대 초중반 발매된 음반 노래가 거리를 꽉 메운 가운데, 2012년에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전 국민들이 복고 열풍을 즐겁고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20대 여성들이 많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는 탤런트 이영애의 한복 화보와 함께 전 피겨 스케이터인 김연아의 한복 입은 사진들이 인기 게시글에 오르며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일반인들은 자신의 웨딩 스튜디오 한복 사진이나 한복 맞춤과 관련한 글을 업로드했는데 이것은 항상 높은 조회수와 많은 댓글을 보장했다. 이러한 상황이었기에 ‘함께 한복 입자’ 행사 기획은 많은 인원들의 호응에서 출발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해당 행사가 3회가 되어서야 참여를 시작했다.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명절이 아니었는데도 한복을 입었던 첫날이었다. 언제나 명절 때 한복을 입고 나가면 사람들이 유난히 낯선 사람인양 보았기 때문에, 한복을 입은 아주 많은 사람들과 함께 궁에 놀러가거나 이리저리 쏘다닐 수 있다는 것은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일이었다. 행사를 함께 준비했던 자원봉사자들과 콘텐츠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당시 인기 있었던 개그우먼 장도연과 중국의 유명인 푸룽제제의 엽기포즈를 한복 입고 사진 찍어보자는 의견은 실제로 행사에 도입되었다.

노란 색동 붕어배래 저고리와 형광 빨강색의 치마, 거기에 연녹색 배자는 당시 필자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한복이었다. 매년 2번밖에 햇빛을 보지 못하는 한복을 꺼내 입고 자신만만하게 사람들을 만나러 갔는데 두껍고 긴 고름 때문에 유행이 한참 지난 한복이라는 평을 듣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까지 한복은 그냥 한복이지 저고리에도 다양한 디자인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한복 입은 무리 속에 필자가 포함됐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기만 했다.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토록 사고 싶었던 장난감을 손에 들고 기뻐하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비싸게 맞추어 놓고 입을 일이 없었는데 이제야 오랜만에 입었다는 사람, 이날을 위해 한복집에 가 거금을 주고 한복을 대여해온 사람, 당의에 가채까지 얹고 온 사람, 한복업계 관계자 등 다양한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 그동안 한복을 입고 싶어 혼났다는 식의 푸념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한복을 입고 모였던 그날, 많은 사람들은 함께 한복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 했고 한복 입은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우리는 각자 혼자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한복 유전자를 유감없이 뽐낼 수 있었다.

최근, 경복궁 근처에서 대여 한복이나 장롱에서 막 꺼낸 듯한 한복을 입고 온 학생들을 보면 그때가 떠오른다. 한복이 무슨 모양인지, 어떤 디테일의 디자인인지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내 가 한복 입고 여기 서 있다’는 점이었다. 입어서 불편한 느낌보다는 평소 입었던 옷과 다르다는 점이 더욱 와 닿았다. 치마는 금방이라도 발에 걸려 넘어질 정도로 길었지만 그렇게 옷을 여미고 잡고 하는 행위 모두가 한복을 느끼는 과정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한복 입기를 즐기고 사랑하는 것은 공통적으로 가진 ‘한복 유전자’ 때문은 아닐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한복을 ‘예쁘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이것 말고는 표현할 길이 없다. 한복을 입고 흥을 즐길 줄 알게 해 주는 것이 ‘한복 유전자’라고 보면, 우리는 이것으로 인해 그토록 행복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