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째 한국 오피스 시장에서 활동해온 이창준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C&W)의 임차인·투자자 서비스 헤드 겸 선임상무는 올해도 서울 오피스의 공실률이 의미있는 수준으로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연유로 올해까지는 임차인 위주 시장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기자

올해 신규 공급이 많은 강북 도심권(CBD)과 여의도권(YBD)은 공실률 상승을 피할 수 없게 됐다. CBD에서는 연중 하나은행본점, 아모레퍼시픽 사옥 등의 대형 빌딩이 준공을 앞두고 있다. 

YBD도 강북과 같이 신규 공급이 많다. 게다가 건물 리노베이션 등으로 공간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펀드에 매각된 서울 여의도 랜드마크 건물 중 하나인 HP빌딩(옛 고려증권 사옥) 등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이 있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 상무는 강북과 여의도 권역의 오피스 시장은 올해까지 임차인 위주 시장이 될 것으로 봤다. 다만 강북은 강남보다 공급이 많지만 수요 또한 많다고 본다.

그는 강남권(GBD)의 경우 2분기까지는 임차인 위주시장이겠지만 3,4분기는 임대인 위주시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강남의 오피스 중심지인 테헤란로의 빌딩들 중 신축한 파르나스타워를 제외하고는 대형 공실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준공한 파르나스타워도 1월 기준 30~40%가 이미 임대됐고 임대 진행상황도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그는 “강남의 회복세가 빠를 것이나 강남의 빌딩들은 대개 노후됐다. 게다가 중소형 빌딩을 포함한 전체 공실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강남의 경우 지난해 임대료 조정을 받게 되면서 이·삼면로 빌딩의 임차인들의 대로변 빌딩 진출이 많아졌다. 공실이 대로변에서 이면으로 이동한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전세계적인 산업 침체로 공급만한 오피스 수요를 창출하기가 어렵다는 것.

“지난해만 해도 확장 이전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기업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으로 인한 축소 이전이 주를 이뤘습니다. 게다가 셰어오피스, 코워킹 스페이스 등 임대 면적을 줄일 수 있는 업체에 입주하는 것에도 관심이 컸죠."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기자

대형 개발 사업이 드물었던 5년여 전만 해도 서울 오피스 시장은 임대인 중심시장이었다. 장기임대 시 ‘렌트프리(무상임대)’ 제공이나 계약서 상의 명목임대료(페이스렌트)보다 낮은 ‘실임대가’ 개념이 등장하고 임차인에 유리한 시장으로 재편된 것은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가 그 시초였다. 이러한 임차인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는 강북권으로 번졌다.

"현재 강북지역도 연간 4개월 렌트프리가 기본이고 서울역 지역은 연간 5~6개월까지 무상 임대기간을 주고 있어요. 그나마 강남의 경우는 지난해까지 연간 2~4개월의 렌트프리 기간을 주던 것이 현재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강남은 이미 실임대가도 올라가는 등 임대인 우위 시장으로 가고 있는 인상을 받습니다." 지난해까지 강남지역 대형 오피스 빌딩의 3.3㎡당 9~10만원대를 유지하던 명목임대료는 실제 ‘렌트프리’를 감안하면 7~8만원대였다.

 

한강을 건너는 IT 기업

임차인이 '갑'인 시장에서 이들의 '니즈'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현재의 저성장 시대에서 기업이 사무공간을 선택하는 기준 중 1순위는 ‘비용 절감’이 됐다. 기업들은 이주 시 직원 이탈의 우려나 관련업종이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으면 얻게 되는 이점보다는 임대료나 비용 인센티브를 중시해 시내 어디로라도 이동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과거 업종마다 선호하던 지역이 있었죠. 강남권은 IT(정보통신)업종과 무역 관련 업체, 강북 도심권은 대기업과 금융사, 여의도는 증권사와 엔터테인먼트 업종 등으로 뚜렷한 선호지역 차이가 있었지만 현재는 이같은 경계가 흐려지는 상황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임대료를 절약해 직원 복지를 보다 확충하겠다는 이유를 들어 18년만에 강남에서 광화문 인근 빌딩으로 이전했죠”

임차인 이동이 많아진 것은 CBD를 중심으로 신규 오피스 빌딩들의 공급이 많아지면서 임대료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비용 부담 문제 외에도 임차 기업은 대개 새 빌딩을 선호한다. 최근 삼성동 파르나스타워로 이주한 게임업체 ‘라이엇게임즈’도 이 같은 이유로 같은 강남 지역인 신사동에서 이주를 선택했다.

“최근 임차계약이 끝난 몇몇 대형업체들에 자문을 진행하는 중인데 과거에 비해 다양한 권역들을 검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광역버스, 전철 등 대중교통도 많이 확충된 것도 업종 간 선호지역 경계가 흐려진 이유입니다. 교통의 발달로 과거와는 달리 관심을 받는 지역도 생겨났죠. 대표적인 곳이 서울역 인근입니다.”

 

외국계 '먹튀 펀드'의 교훈

최근 한국 오피스 시장의 새로운 '주연'은 단연 외국계 펀드다. 한국에 진출하는 중국기업과 중국계 투자기업이 한국 오피스 시장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궁극적으로는 한국 빌딩 투자나 매입도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프라임 빌딩의 임대수익률은 4~5%대로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는 매력이 있지만 현재는 거래 물건이 부족하고 공실을 감안할 때 거래가에 ‘거품’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외국 투자자들이 금리인상 등으로 빌딩 소유주들이 타격을 받아 자산의 가격이 조정을 받을 때를 노리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기자

외국 펀드들이 우리 빌딩들을 싸게 산 다음 단기간에 비싸게 되팔고 있지 않나 하는 말에 그는 "외국계 자본의 국내 부동산 투자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한국 자산운용사들이나 한국 펀드에게 외국계 펀드들이 어떻게 임대를 유치하고 건물을 운영해서 수익을 극대화하는지 등에 대해 배우는 기회가 됐다. 사실 예전에는 한국 기업이 전략도 없이 빌딩을 매입해 마이너스 수익을 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답했다. 한 때 인기가 높았던 물류 부동산은 현재 하락세를 보이면서 해외 투자자들은 다시 전통적인 투자자산인 오피스시장을 주목하고 있다는 부연도 따랐다.

글로벌 종합부동산 서비스 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한국지사는 지난해 임대자문팀을 새로 꾸렸다. 이창준 상무는 언젠가는 다시 임대인 위주 시장이 올 것이고 이를 준비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