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경제전문지 <Bilanz>에서는 매년 자국의 산업별 자산가 순위를 공개해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스위스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에 대한 순위를 발표했는데, 그중 단연 눈길을 끄는 건 역시 스위스 시계 부자들의 재산 랭킹이다. 스위스와 시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사람들이 아는 시계 열에 아홉은 스위스 브랜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이다. <Bilanz>가 발표한 2017년 스위스 부자 순위 중 시계 산업 부문에 눈길이 가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다수의 명품 시계 브랜드가 포진한 리치몬트 그룹과 롤렉스, 파텍필립은 예상대로 순위에 이름을 올렸고, 1위부터 12위까지의 부자 랭킹 중엔 다소 생각지 못했던 브랜드 또한 포함되어 있어 흥미를 더한다.

 

1위요한 루퍼트(Johann Rupert) 리치몬트 그룹 회장 – 47억5천만CHF(약 5조4200억원)

▲ 스위스 시계 업계 최고 부자, 요한 루퍼트. 출처=위키피디아

리치몬트(Richemont)는 까르띠에, 몽블랑, IWC, 바쉐론 콘스탄틴, 피아제, 파네라이, 예거 르쿨트르, 반클리프 아펠 등 내로라하는 명품 시계 및 주얼리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스위스 최대 시계 그룹이다. 지난해 중국의 반부패 정책과 유럽 내 테러 등의 이유로 부진한 판매고를 기록했지만, 스위스 시계 업계 부자 1위라는 왕좌는 꿋꿋이 지켜냈다.

 

2위 하예크(Hayek) 스와치 그룹 가문 – 42억5천만CHF(약 4조8500억원)

▲ 닉 하예크 스와치 그룹 CEO. 출처=오메가

스와치 그룹과 리치몬트 그룹은 스위스 시계 업계를 이끄는 쌍두마차다. 스와치 그룹은 브레게, 블랑팡, 오메가 등 럭셔리 시계 브랜드부터 론진, 라도, 미도, 티쏘, 해밀턴, 캘빈 클라인 워치 앤 주얼리 그리고 스와치와 플릭플락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현재 닉 하예크(Nick Hayek)가 아버지이자 스와치 그룹의 창립자인 니콜라스 G. 하예크의 뒤를 이어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3위 스턴(Stern) 파텍필립 가문 – 32억5천만CHF(약 3조7100억원)

▲ 티에리 스턴 파텍필립 CEO. 출처=핀터레스트

시계의 제왕, 파텍필립을 소유한 스턴 가문은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단일 브랜드로서는 1위인 셈이다. 파텍필립의 시계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대를 호가한다. Bilanz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해 파텍필립의 매출은 13억 스위스프랑(약 1조4800억원)에 달한다. 엄청난 판매고만 봐도 필립 스턴(Philippe Stern)과 그의 아들 티에리 스턴(Thierry Stern)의 막대한 재산을 짐작할 수 있다.

 

4위 부케러(Bucherer) 가문 – 17억5천만CHF(약 1조9900억원)

▲ 파리에 위치한 부케러 매장. 출처=부케러

부케러는 유럽 최대의 시계 소매 업체다. 스위스, 프랑스, 독일,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지에 20여 개의 명품 시계 편집숍을 운영 중이고, 칼 F. 부케러(Carl F. Bucherer)라는 고유의 시계 브랜드 또한 보유하고 있다. 부케러 매장에서는 롤렉스, 오데마 피게, 쇼파드, 지라드 페리고, IWC, 예거 르쿨트르, 피아제, 로저드뷔, 론진, 태그호이어 등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경험할 수 있다. 

 

5위 슈펠레(Scheufele) 쇼파드 가문 – 17억5천만CHF(약 1조9900억원)

▲ 캐롤라인 슈펠레(좌)와 칼 프레드리히 슈펠레. 출처=쇼파드

1900년대 초반, 슈펠레 가문은 독일 포르츠하임에서 시계와 주얼리 공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칼슈펠레 3세가 폴 앙드레 쇼파드로부터 스위스 시계 브랜드 쇼파드를 인수한 건 1963년의 일이다. 이후 쇼파드는 슈펠레 가문에 의한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칼 슈펠레 3세의 두 자녀인 칼 프레드리히 슈펠레와 캐롤라인 슈펠레는 현재 각각 남성 컬렉션과 여성 컬렉션을 담당하고 있다.

 

6위 보러(Borer) 가문 – 17억5천만CHF(약 1조9900억원)

▲ 해리 보러는 롤렉스 비엘 공장의 소유주였다. 출처=호딩키

생소한 이름이라 생각하겠지만, 보러 가문은 한때 스위스 비엘에 위치한 롤렉스 매뉴팩처의 소유주였다. 역사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롤렉스는 비엘과 제네바 두 곳에 매뉴팩처를 두고 있었는데, 비엘에서 무브먼트를 생산하면 제네바에서 조립, 검사 및 판매를 주관하는 방식이었다. 지난 2004년 롤렉스가 보어 가문으로부터 비엘 매뉴팩처를 인수하면서 해리 보러(Harry Borer)와 그의 가족들은 막대한 부를 얻게 됐다.

 

7위 오데마 피게 가문 – 9억5천만CHF(약 1조850억원)

▲ 디자이너들과 2017년 신제품을 감상하고 있는 프랑수아 앙리 베나미아스 오데마 피게 CEO(좌). 출처=오데마 피게

오데마 피게는 지난해 매출이 8억 스위스프랑(약 9100억원)을 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Bilanz는 본 보고서에서 “오데마 피게는 침체된 업계 분위기 속에서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는 몇 안되는 명품 시계 브랜드 중 하나”라고 호평했다. 뒤이어 “오데마 피게는 올해 유통망 확장 계획을 세우고 있는 만큼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8위 슈나이더(Schneider) 브라이틀링 가문 – 7억5천만CHF(약 8500억원)

▲ 항공 시계 명가 브라이틀링의 대표 모델, 내비타이머 01. 출처=브라이틀링

슈나이더 가문은 1979년부터 브라이틀링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라이벌 브랜드들에 비해 다소 더딘 성장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브라이틀링의 연간 판매량은 3억7천만 스위스프랑(약 42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 각종 해외 언론에서 브라이틀링의 매각설이 제기되었지만 아직 뚜렷한 소식은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

 

9위 장 피에르 슬라빅(Jean-Pierre Slavic) – 3억2500만CHF(약 3700억원)

▲ 장 피에르 슬라빅(좌)은 자동차 수집광으로 유명하다. 출처=howtospendit

장 피에르 슬라빅 또한 보어 가문과 마찬가지로 롤렉스의 덕을 본 사례다. 롤렉스는 1990년대 후반부터 원활한 부품 조달 및 시계 제작을 위해 케이스, 다이얼, 브레이슬릿 등 주요 부품업체를 사들이기 시작했는데, 장 피에르 슬라빅은 그중 방수 크라운 제작 업체인 Boninchi SA의 소유주였다. 그는 2001년 롤렉스에게 회사를 넘기면서 커다란 부를 움켜줬다.

 

10위 베른하임(Bernheim) 레이몬드 웨일 가문 – 2억7500만CHF(약 3100억원)

▲ 피에르 베른하임(좌)과 엘리 베른하임. 출처=핀터레스트

레이몬드 웨일은 197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창립자 레이몬드 웨일에 의해 설립된 브랜드로, 현재 3대를 잇는 가족 경영으로 운영되고 있다. 2006년 창립자의 손자인 엘리 베른하임과 피에르 베른하임이 회사에 함께 합류하면서, 경쟁 브랜드들 사이에서 가족 경영의 안전성을 가진 회사라는 긍정적 인식을 전하며 연간 2억1천만 스위스프랑(약 2400억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11위 바르탕 시르마케(Vartan Sirmakes) – 2억2500만CHF(약 2500억원)

▲ 프랭크 뮬러의 경영 일선에 나선 바르탕 시르마케. 출처=프랭크 뮬러

프랭크 뮬러(Franck Muller)의 공동 창립자.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컴플리케이션 시계의 매력에 푹 빠진 독립 시계 제작자 프랭크 뮬러는 시계 케이스 전문가 바르캉 시르마케를 만나 자신의 이름을 딴 시계 브랜드를 설립했다. 현재는 바르탕 시르마케가 경영 일선에서 움직이며 프랭크 뮬러의 거의 모든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12위 장 클로드 비버(Jean-Claude Biver) – 1억7500만CHF(약 2000억원)

▲ 위블로와 태그호이어의 수장, 장 클로드 비버. 출처=위블로

시계 업계의 마이다스의 손, 장 클로드 비버가 2017 스위스 시계 업계 부자 순위 12에 이름을 올렸다. 오데마 피게, 오메가, 블랑팡을 거쳐 현재 LVMH 시계 부문 사장직을 수행하며 위블로와 태그호이어 그리고 제니스 경영을 맡고 있는 그는 일흔을 앞두고 있는 노장이지만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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