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늦가을 종로3가역 6번 출구 인근 골목길에서 가벼운 저녁 모임이 있었다. 갈매기살을 전문으로 하는 선술집이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한 잔 술에 안주 한 점으로 도시근로자들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 안성맞춤인 식당이었다. 원통형 테이블이 불편할 것도 같은데 옆자리에 외국 여성 2명이 와서 우리와 같은 메뉴로 술을 마시는 것을 보며 서울이 국제화되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허름한 골목길에서 마주한 서울의 한 단면으로 기억된 이곳은 익선동 한옥 마을이다. 한옥과 한옥 사이의 골목길 위로 보이는 현대의 회색 빌딩과 공존하고 있다. 그 한옥 옆 또 다른 한옥에는 젊은 창업가들이 카페나 공방으로 리모델링하여 영업을 하고 있다. 이 젊은이들의 열정으로 익선동 골목길이 살아나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서울 속 신골목’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자주 방문하면서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지만 어느 순간 그 매력이 한순간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선동 한옥 마을만의 특색, 익선동 골목길의 매력을 살리지 못한다면 서울의 명소 하나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이다.

익선동은 고려시대 남경으로 불릴 때부터 있었던 마을이며, ‘돈화문로11나길’은 고려의 길이다. ‘돈화문로11가길’은 피맛골로 조선의 길이다. 피맛골의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고관대작들의 말을 피해 뒷골목에서 요기를 하던 음식점들이 들어섰다. 한옥은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서민 주택이다. 궁에서 일하던 사람들 일부가 삶의 터전을 잡은 곳이다. 그 시대 서울에서 새 삶을 살고자 했던 상경자들의 거처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긴 세월을 거치며 허물어지고 덧칠해지면서 훼손되기도 했다. 낡은 지붕은 기와가 아닌 천막으로 덮여 있는 집도 있다. 현재 100여 채의 한옥이 남아 있다. 언뜻 보아도 삶의 질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주민들의 고통과 부동산 개발에 따른 투자이익에 대한 갈등 역시 이곳을 비껴가지는 못했다. 재개발이 중단된 익선동은 원형을 유지한 상태에서 리모델링을 하거나,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개량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는 폐가의 모습을 하고 문이 잠겨 있다. 주말에는 비좁은 골목길을 걷기 어려울 정도로 방문객들이 넘쳐 난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한옥은 생경함과 휴식을 제공해 준다. 주중에는 뜸한 방문객 사이로 공사하는 인부들이 바삐 움직인다. 일부 원주민들은 사생활을 위협받고 있다. 마음대로 수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투자가치를 염두에 둔 투자자들도 모여든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우려도 있다. 낙후된 구도심의 근본적인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익선동 한옥 마을 ©구자룡

일본의 전통적인 건축물과 거리가 잘 보존되고 있는 교토 기요미즈데라 아래의 산넨자카(三年坂)와 니넨자카(二年坂) 거리를 지난 2월 1일 방문했다. 이 지역은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었다. 주택가와 상가가 밀집되어 있지만 거리를 따라 잘 구분되어 있어서 사생활 침해는 높아 보이지 않았다. 많은 방문객들로 다소 불편이 있었지만 잘 관리된 주택과 거리는 교토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했다. 관광객을 창덕궁에서 익선동으로 유도할 수 있다면 교토의 거리 이상으로 익선동은 값진 매력을 발산할 수 있다. 북촌 가회동 한옥 마을에서 느낄 수 없는 한옥의 정취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음식과 휴식의 결합은 현대 도시민과 관광객들이 즐기는 대표적인 힐링 수단이다. 교토와 마찬가지로 익선동은 식당과 카페에서 음식을 통한 차별화도 가능하다.

2015년 서울브랜드를 개발하는 과정에 연구자로 참여하면서 서울브랜드의 핵심가치로 공존과 열정 그리고 여유라는 키워드를 도출했다. 현재 익선동은 공존과 열정이 그대로 투영된 곳이다. 그리고 방문객들은 여기서 여유를 찾고 있다. 마케팅 활동으로 익선동 마을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마을의 콘셉트를 정해야 한다. ‘일상에 찌든 시민들과 이국적인 문화를 경험하고 싶은 여행객들이 한옥의 정취를 느끼며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마을’로 콘셉트를 정하면 어떨까? 그리고 한옥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본래 모습을 보존하면서도 현재 생활의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리모델링 원칙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한옥이 가지고 있는 고유 아이덴티티인 기둥과 서까래 등 기본적인 골조와 기와를 살리자. 골목길과 주변을 깔끔하게 정비하자. 마을 콘셉트를 중심으로 일관되게 커뮤니케이션하여 고객들 인식 속에 익선동을 차별적으로 포지셔닝하자. 주민과 상인과 공무원이 마을 운영 공동협력체(거버넌스)를 만들어 공동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면 고객들은 한옥의 정취와 휴식의 가치를 느낄 것이다. 익선동이 매력적인 공간으로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교토 산넨자카 ©구자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