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의 인공지능 활약이 이미 가시권으로 들어왔다고 느낀다. 인공지능은 보통 사람의 일처리 역량을 고수의 영역까지 업그레이드시켜준다. 아마추어 6단인 아자 황이 프로 바둑왕 이세돌과 맞바둑을 두어 승리를 한 것은 순전히 인공지능 알파고의 덕분이다. 아자황은 인류 최초로 인공지능의 아바타가 되어 이세돌을 이겼지만 승리에 끼친 그의 공헌은 전혀 없다. 그는 단순히 인공지능의 하수인이었다.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면밀히 살펴서 개인맞춤처방을 하려면 환자의 증상을 진단한 자료를 가지고도 적어도 16~22시간 동안 관련 문헌과 비교 사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 왓슨은 환자 정보를 입력하고 환자에 맞는 처방을 묻는 단추를 누르기만 하면 미국에 있는 슈퍼컴퓨터에서 환자 상태를 분석해서 가장 알맞은 처방을 다시 한국에 있는 모니터 화면에 뿌려주는 데까지 시간이 8초도 안 걸린다. 가천길병원에 설치된 인공지능 왓슨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왓슨이 제시한 처방은 최고 권위의 의사가 내린 결론보다 앞선다. 치료 효과가 앞선다는 의미가 아니고 제공한 자료의 다양성과 전문적 자료의 깊이 그리고 처방전의 당위성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보조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앞선다. 승패를 가르는 바둑과 달리 의사가 인공지능 왓슨과 진단 결과의 우수성이나 치료 효과의 신뢰성을 경합하거나 비교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 환자의 치료 방법은 담당의사가 최종 책임을 지고 결정하므로 의사가 인공지능에 기죽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인공지능의 처방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처방에 왜 자신이 동의하는지 환자에게 자신 있게 설명해주는 길뿐이다.

 

인공지능은 감정 변화에 둔감하다

알파고가 이세돌과 바둑대국을 하기로 했을 때 이 세기의 대결을 가장 반긴 것은 알파고와 맨 처음 대국을 치렀던 전 유럽 바둑챔피언인 판 후이(Fan Hui) 프로 2단이다. 판 후이는 자신이 알파고에 5차례나 연패한 원인이 자신의 실수에 있지 않고 너무도 강한 알파고의 기(棋)력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만약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전에서 패한다면 자신의 패배도 자연스럽게 설명될 수 있었다. 판 후이는 후에 알파고와 이세돌이 가졌던 첫 번째 대국에 대해서 후기를 작성해서 인터넷에 공개했다. 그가 지적한 알파고의 강점은 사람과 달리 상대편의 감정 변화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은 상대가 과감하게 싸움을 걸어오면 상대의 몸짓과 표정으로 상대의 의도를 추정해서 강하게 응수할지 아니면 양보할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사람들 바둑에선 절대수가 존재하지 않고 항상 상대적인 선호도에 따라 바둑의 흐름이 바뀐다. 하지만 알파고는 상황이 변할 때마다 승리하는 절대수를 찾아내기 때문에 상대의 감정변화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세돌과의 첫 번째 대국 초반에 당시 바둑 해설가들이 알파고의 착(着)점들을 보고 인공지능의 약점이 드러났다고 성급히 판단했던 일이 있었다. 판 후이는 이를 두고 우리가 습관적으로 옳다고 여겨왔던 묘수들이 상황에 따라선 승리를 위한 절대수를 찾아내는 데 방해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알파고는 바둑을 이기는 데 목표를 둘 뿐 크게 이기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은 알파고가 묘수를 두지 않는다고 평가했지만 알파고는 모양보다 확실하게 이기는 묘수만을 두었다. 인공지능은 흥분하거나 낙담하는 등 감정의 기복이 없이 오직 최선의 수만을 찾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인공지능과 사람이 바둑대국을 벌이면 사람이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인공지능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점은 이세돌뿐만 아니라 판 후이가 느꼈던 점이다. 달리 말하면 알파고는 상대의 실수를 바라는 미끼 수를 던지지 않았다. 반드시 승리를 확신하는 최선의 수만을 둘 뿐 상대를 속이는 술수를 벌이지 않았다. 알파고는 좀 둔감한 수를 두어 손해를 보는 듯해도 몇 수가 진행된 후에 보면 확실한 승기를 잡는 계기를 만든 수를 두었음을 깨닫게 한다고 판 후이는 서술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선택에는 편견과 선입견이 없다

판 후이는 알파고 1과 알파고 2가 벌이는 인공지능끼리의 대국도 해설을 해놓았다. 놀라운 점은 인공지능끼리 두는 바둑은 프로기사들이 오랜 기간 동안 축적해 놓은 정석을 완전히 무시하는 수를 나누고 있다. 알파고는 프로기사들이 알고 있는 바둑이론의 옳고 그름을 초월해서 열린 사고로 뭐든지 가능하다는 접근을 하고 있다. 가끔 프로기사들이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수들이 있는데, 그런 수들은 프로기사들이 경험했거나 공부한 것과 어긋나는 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우습게 볼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하는 수들이다. 하지만 알파고는 사람이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자유롭고 거리낌 없다. 인간이 스스로 생각을 가두고 하는 걱정은 새로운 시도를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알파고는 실리를 위해선 인간의 사고틀을 벗어난 도전도 감행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강력한 계산력을 가진 알파고는 인간이 보지 못하는 수를 과감하게 선택하고 있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선구자들이 경험한 가장 좋은 사례와 옳다고 정해진 원칙들을 간추린 교과서를 통해서 윤리와 지식을 습득한다. 교과서에 적혀 있는 원칙들을 가장 잘 기억하고 그대로 재현하는 능력이 우수할수록 인재라고 평가받는다. 능력을 판별하는 방식은 객관식 문제 풀이 방식이다. 주관식 문제라 할지라도 배운 것과 다르게 생각하면 틀린다. 평가 시험에서 다루는 착안점은 주어진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하는 답이 아니라 배운 대로 잘 기억하는 능력에 있다. 이런 능력은 여러 가지 외란요인들이 배제된 닫힌 시스템(환경)에서 일어날 일에 대응하는 능력이다. 예상치 못한 수많은 외란 요인이 존재하는 열려진 시스템(환경)에선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하던 순간에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선실에 남아있던 학생들에게 “현재 위치에서 안전하게 기다리고 배에서 밖으로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전달됐다. 이 방송은 배가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란 가정 하에서 내려진 명령이다. 그런데 그 안내방송이 전해지는 순간에도 배는 기울어졌고 만약 조금만 시간이 더 흐르면 배가 완전히 침몰할 것이라는 예상치 못한 외란 요소를 대입한다면 당연히 선내에 잔류한 모든 승객은 한시라도 빨리 선실을 탈출해야만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크고 작은 일들이 항상 발생하고 대부분은 교과서적인 고집만으로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탁상행정이나 탁상공론이란 용어가 생기는 이유도 바로 현실과 이론이 다른 점을 간과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컴퓨터 자동화는 통상 인간이 밝혀낸 수식 모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입력변수가 정해지면 출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기계가 작동해야 할 조건들을 자동으로 설정하는 경우를 자동화 시스템이라 부른다. 수식 모델을 이론식을 근거해서 만들어도 실제로는 외란요소들 때문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이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변수 앞에 학습계수를 도입한다. 여러 가지 입력조건에 따라서 발생하는 출력 편차를 보상하는 기능을 한다. 당연히 입력조건별로 수식에 붙이는 계수 값이 달라진다. 이 학습계수는 같은 조건에서 가장 잘 맞는 계수를 수차례 경험해서 결정한다. 계절이 바뀌거나 원료조건이 바뀌어도 학습계수가 바뀌게 된다. 학습계수도 처음에는 잘 맞지 않지만 시간이 흘러 같은 경우의 수가 쌓이게 되면 반복 수정된 학습계수가 점차 편차를 줄이고 또 나중에는 일정한 결과를 만들어 준다. 그래서 자동화 모델들은 반드시 일정 기간의 학습기간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은 변수들로 뒤엉킨 시스템에 적합하다

인공지능을 자동화 수식모델 대신에 도입하는 이유는 현상이 너무도 복잡해서 이론적 수식모델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자동화 수식모델에 도입한 학습계수가 시간이 흘러도 잘 맞지 않는 경우이다. 수식이 아예 틀렸다고 단정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두 가지 언어를 동시통역한다고 할 때 두 가지 언어가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의 의미가 경우에 따라서 달라지므로 단순 공식으로 통역이 불가능하다. 상대방 문화도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전후좌우 상황변수도 고려해야 정확한 의사전달이 가능하다. 두 나라 언어의 단어사전을 모두 컴퓨터에 넣는다고 통역이 되지 않는 이유이다. 어떤 사람은 컴퓨터가 통역하는 수준이 감히 통역사의 품질을 능가할 수 있겠냐고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지만 수많은 변수들로 뒤엉킨 언어 통역이야말로 인공지능이 잘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사투리로 말해도 상대방에겐 고급스러운 표현으로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본다.

머지않아 우리는 음성으로 대화하는 인공지능 비서의 도움으로 일상생활을 하게 된다. 인공지능 비서는 일정을 비롯한 모든 판단을 개인 맞춤형으로 제공하게 된다. 마치 네비게이터 설정에서 검색조건을 ‘최단거리’로 할지 아니면 ‘최적거리’로 할지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인공지능의 판단기능을 ‘개인의 이익’과 ‘공공 이익’ 모델 중에서 선택해 설정하게 된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희로애락의 감정을 판단할 기준을 갖지 못하므로 감성적으로 인간을 위로하지 못하게 된다. 감정이 메마른 기계의 충고에 복종하면 인공지능의 아바타가 되는 것이고 인공지능의 오판을 바로 잡으면서 살아가면 훌륭한 도구를 활용하는 신지식인이 된다.

인류문명은 항상 정해진 틀을 벗어나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면서 발달했다. 사람은 항상 똑같은 일을 거부하고 똑같은 음식을 싫어한다. 좀 다른 일에 흥미를 느끼고 좀 다른 입맛을 추구한다. 혁신은 바로 평범하고 일상적인 틀을 벗어나는 일이다. 이런 혁신의 변화 속에는 인간이 추구하는 재미가 깔려 있다. 인공지능 시대가 온다 해도 인간은 계속해서 흥미와 재미를 찾아 변화를 추구하게 되므로 기계의 아바타로 남지 않게 된다. 인간 세계에서 흥미와 재미가 없다면 삶의 의미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