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손에 시작된 애플은 대중에게 혁신의 기업이라는 찬사로 익숙하다.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 구속과 갤럭시노트7 발화로 인한 단종으로 브랜드 가치를 크게 상실하며 주춤하는 사이, 애플은 아이폰을 내세운 파괴적 시장 장악력으로 여전히 세상을 놀라게 만들고 있다. 포춘이 16일(현지시간)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순위에 따르면 애플은 10년 연속 1위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애플에 과연 존경과 혁신만 충만할까?'라는 질문은 곰곰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iOS를 중심으로 삼는 생태계 전략과 강력한 브랜드 효과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전략은 세상을 바꾸는 혁신의 찬사로 이어지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만만치 않은 구태의 악취도 풍긴다.

▲ 출처=위키미디어

대표적인 사례가 카피캣 본능이다. 샤오미가 애플의 카피캣이라면, 애플은 노키아의 카피캣이자 이제는 삼성의 카피캣이다. 애플의 영혼인 스티브 잡스 자체가 폭군의 이미지를 아름답게 포장해 체화한 케이스로 분류되는 것처럼, 애플도 태생적으로 카피의 역사를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최근 이러한 기조는 아이폰 스펙을 둘러싸고 더욱 심해지고 있다. 먼저 투톱 라인업.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4를 출시하며 갤럭시노트 엣지를 선보이며 사실상 처음 투톱 라인업 시대를 열었다. 기기 자체의 크기를 달리한 맞춤형 스마트폰 시대다. 재미있는 것은 애플의 대응이다. 아이폰6에서 플러스 시대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패블릿 기조도 마찬가지다. 갤럭시는 태블릿 시장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의 크기를 조금씩 늘려왔다. 아이폰도 충실하게 뒤를 따랐다.

아이폰8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홍채인식기술과 무선충전기술은 물론 넘버링까지 갤럭시의 뒤를 따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통상적으로 아이폰은 숫자와 'S'를 붙이는 방식을 추구하는 가운데 올해 아이폰은 아이폰X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흐름을 마냥 비판하기는 어렵다. 하드웨어에 강력한 소프트웨어 기능을 탑재하는 방식으로 '메이드 인 애플'의 사용자 경험을 추구하는 것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방법론이라는 말도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질논란은 '애플=혁신=존경'이라는 공식을 여지없이 파괴하기에 충분하다. 지난 1일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애플의 지난 2016년 4분기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17.8%로 5년 만에 삼성전자(17.7%)를 누르고 1위 자리에 올랐다. 아이폰7이 그저 그런 스마트폰이라는 혹평을 받았던 것을 고려하면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의 반사이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애플의 영업이익률은 지난 2015년 4분기 정점을 찍은 이래 2년 연속 하락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의 격차도 다시 좁혀지고 있다. 날로 치열해지는 스마트폰 시장 경쟁과 성장 둔화로 순이익 역시 179억 달러(20조8000억원)로 역대 최고치였던 전년 동기(184억달러) 대비 하락했다.

유통의 달인 팀 쿡의 마법이 일정정도 조화를 부렸겠지만 그 이면에는 애플의 단가 후려치기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 출처=위키미디어

지금까지 애플은 압도적인 아이폰용 물량을 무기로 협상을 주도하며 공급 단가 인하를 거침없이 감행해 왔다. 지난해 아이폰7 출시를 앞두고는 대만 부품 업체들에게 아이폰6보다 요청 물량을 30% 줄였음에도 단가를 같은 기간보다 20%가량 낮춰 반발을 샀으며, 이에 폭스콘 그룹은 "합당한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주문을 받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주요 협력사 중 하나인 어드밴스드 세미컨덕터 엔지니어링(ASE) 역시 같은 의사를 애플에 전달했다.

하지만 애플은 단가를 깎지 않으면 중국 업체에 물량을 넘기겠다며 대만 업체를 자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아이폰6에는 사파이어 글래스를 공급하기로 했던 GT어드밴스트에 대해 애플이 구매를 전면 취소하는 일도 벌어져 부품사가 파산 보호 신청을 내기까지 이르렀다. 사파이어 글래스의 생산 비용이 너무 높고 수요에 맞출 정도로 충분한 물량을 생산하지 못했다는 것이 구매 취소의 이유였지만, 파이낸셜타임즈는 생각이 달랐다. 이들은 "애플이 부품 업체들을 대상으로 계약 조건 유출 건마다 5000만달러의 배상을 요구하는 등 억압적인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파산 보호 신청의 원인이 된 애플과의 계약 조건을 법원에 근거로 제시할 때마다 막대한 배상액이 청구되도록 한 것이다. GT어드밴스트는 결국 지난 2015년 애플과 부채 상환 합의를 도출했다.

우리가 국내 대기업의 갑질을 말하며 자주 보던 협박장면이다. 애플 외 제조사들이 생태계 전략을 완성하기 위해 악전고투하며 큰 그림을 그리는 사이, 애플은 이미 생태계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갑 오브 갑'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갑질이 추후 계속 반복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납품 단가 인하로 이윤을 더 남기려는 배경에는 주력 제품군인 아이폰의 판매 부진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 10주년을 맞은 올해 최강의 아이폰이 등장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포스트 스마트폰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애플은 점점 높아지는 아이폰 매출 비중을 감당하지 못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갑질의 발악은 퀄컴과의 전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애플은 아이폰에 전 세계 200여 개가 넘는 협력 업체에서 부품을 공급받고 있으며, 그 중 모뎀 칩은 지난 2011년 이래 퀄컴과 독점 계약을 맺어 수급해 왔다.

미국 조사 당국(FTC)에 따르면 퀄컴은 독점 공급 조건으로 애플에 막대한 리베이트를 지불했으며, 이에 따라 모뎀 칩을 제품 당 생산 단가 이하에 공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애플은 2016년 아이폰7 시리즈 일부에 인텔 모뎀 칩을 탑재해 독점 계약을 위반했으며, 급기야 지난달에는 “당사가 한국 공정위의 반독점 조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퀄컴이 10억 달러에 이르는 리베이트 지불을 거부하고 있다”며 퀄컴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계약 위반에 따른 리베이트 보상을 회피하고자 ‘소송전’ 카드를 내민 것이다. 그에 맞춰 국내의 공정거래위원회는 충실한 애플의 아바타가 되어 주었다.

애플의 전방위적 특허 소송도 이러한 갑질의 발악 연장선에 있다.

현재 애플은 최근 수 년간 스마트폰에 지불하는 특허 로열티를 절감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국제 소송전에 뛰어들었다. 단적인 사례가 에릭슨. 애플은 에릭슨에 2008년부터 지급하던 특허 사용료가 지나치게 높다며 계약 갱신을 거부, “필수적이지 않은 LTE 기술에 불필요한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며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 에릭슨을 상대로 제소한 바 있다. 하지만 에릭슨이 즉각 무선통신 기술 특허침해 소송으로 반격을 취하면서 결국 2015년 말 특허 사용료 지급에 합의했다. 로열티 사용료를 낮추려는 애플에 에릭슨이 특허 소송으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노키아와의 분쟁도 있다. 2007년 6월 첫번째 아이폰을 출시한 이후 노키아는 2009년 애플을 상대로 10건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 이후 2년간의 법정 소송 끝에 양사는 2011년 특허 사용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노키아가 애플을 상대로 작년 말 만료 예정이었던 특허 사용 계약을 연장하는 한편. 특허 계약을 추가할 것을 요구했으나 애플이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지난 12월 노키아는 애플을 상대로 32개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과 독일에서 소송을 제기, 애플은 곧바로 노키아를 반독점 혐의로 제소하면서 특허 전면전에 돌입한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애플은 퀄컴과의 전쟁에서 과도한 로열티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역전략'을 펼치기도 했다. 애플이 퀄컴칩과 상관 없이 디스플레이 크기를 키우거나 카메라 기능을 고급화해 아이폰 가격을 올렸음에도 똑같이 5% 로열티를 퀄컴에 지불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폰 수익이 낮아진 이유를 찾으며 엉뚱한 논리를 제기한 것이 문제다.

실제로 화웨이, 오포, 비보 등 저가품을 앞세운 중국 업체에 대항하기 위해 애플이 저가품을 내놓은 것이 수익 저하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2015년 당시 아이폰 평균 판매가는 687달러였는데 최근 회기에는 619달러로 하락, 1년 사이에 68달러나 감소했다. 이는 아이폰에 적용된 각종 특허 로열티로 제품 단가가 올라갔다는 주장과 정면 배치된다.

애플의 갑질은 부품 및 제조사를 넘어 통신사 및 고객도 가리지 않는다. 일반적으로는 통신사가 어떤 제품을 주력으로 내세우는가에 따라 판매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통신사들이 원하는 요구를 제조업체들이 들어줄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만, 애플은 사정이 약간 다르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판매 보조금을 주지 않는 독자 노선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2위 통신사와 독점계약을 하는 방법론이 덧대어진다. 실제로 애플은 2007년 미국 시장에서는 AT&T에만 아이폰을 공급한 것을 비롯해 프랑스 오렌지, 영국 보다폰과 같은 2위 사업자와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도 2009년 KT하고만 거래를 했다. 불공정 거래의 역사가 정식 판매전략인 애플이 공정위를 아바타로 부리며 퀄컴과 대결하는 지점이 묘한 이유다.

당장 한국만 봐도 애플의 갑질은 도를 넘는다. 불공정 약관 문제는 지금도 나오고 있으며, 특정 국가의 민족성과 역사를 무시하는 처사는 예사로 있어왔다.

애플 아이폰의 꺼짐 현상과 배터리 폭발 논란도 마찬가지다. 아이폰6S 발화 논란에 임하는 애플은 한국을 철저히 무시했다. 중국에서 논란이 불거지자 애플은 즉각 상황을 접수하는 한편 지난 8일에는 본사 임원을 급파해 사태 수습에 나서기도 했으나 한국은 미온적 태도 그 자체였다. 배터리 꺼짐 현상에 따른 교환 이슈도 마찬가지다. 애플 코리아는 배터리 교체 공지를 자사 홈페이지에 영문으로 올렸다가 논란이 일자 부랴부랴 한국어 설명으로 바꾸기도 했다. 아무리 내수시장이 작다고 하지만, 시장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찾아볼 수 없다.

▲ 출처=애플 코리아

물론 애플은 대단한 회사다. 세상을 바꿨으며 미래를 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의 혁신은 서서히 힘을 다하고 있다는 점과 그 반대급부로 갑질은 더욱 교묘하고 치밀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애플은 대단한 기업이다. 혁신이나, 존경과는 이미 거리가 멀어졌다.

애플 코리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대단한 글로벌 기업이라도 한국에 들어온 순간 전형적인 한국기업의 '나쁜점'만 배운다는 속설은 애플코리아가 300% 증명하고 있다. 이들이 조금이라도 애플 본사가 내세우는 '좋은 정신'을 구현하려고 노력이라도 했다면, 한국에서의 상황은 지금처럼 나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철저한 비밀주의와 구태의 무한. '애플빠'를 존중하지만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