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만주국 건설에 대하여, 얼핏 생각하기에는 만주가 대한제국의 영토라는 것이 확실하다면 일본이 왜 굳이 만주국을 건설하여 만주를 지배하려 했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당시로서는 이미 대한제국을 병탄한 후이니 만주도 대한제국의 영토라는 것만 중국과 협의를 보면 될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처럼 순수한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일본은 대한제국 병탄 이전에 만주철도 부설권 등의 이권을 취득하여 대륙침략의 발판을 만들고 만주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간도협약을 맺어 만주를 청나라에 넘겨주었다. 겉으로나마 만주가 청나라의 영토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일본은 청나라의 발상지가 만주라는 것을 잘 알기에, 청나라가 한족들에게 밀려나면 자신들의 발상지인 만주에 다시 둥지 틀려 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만주가 대대로 대한제국의 영토이며, 대한제국이 일제에 병탄되기 직전까지 대한제국의 백성들이 개간하여 농사를 지음으로써 대한제국에 세금을 내고 있던 관계로 대한제국의 영토임을 확증하고 있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대한제국은 1900년과 1903년에 서간도 및 북간도를 행정적으로 평안북도 및 함경도에 편입시켰다. 그리고 1902년 5월 21일 이범윤을 간도시찰사로 임명함으로써 이범윤은 간도에 부임하여 사포대를 조직하고 간도 한인으로부터 세금을 받아 그 비용에 충당하였다.

이미 대한제국은 청나라의 건국과 함께 그 위세에 눌려 어쩔 수 없이 침묵하고 있던 만주에 대한 권리를 되찾은 것이다.

그에 반해서 한족에게 패망한 청나라로서는 대한제국의 영토로 환원된 만주를 되찾을 힘도 없었다. 그런데 만주를 일본의 힘으로 청나라의 후손들에게 넘겨준다면, 한족에게 패망하여 갈 곳 없는 청나라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살 수 있게 해준 일본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충성할 것이라는 계산을 했던 것이다. 또한 그것은 여진족인 만주족과 만주에 정착해 있는 대한제국 백성들이 단합해서 일본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증명된 청나라와 조선의 갈등을 표출시킴으로써, 민심을 양분하여 분열을 초래하기에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게다가 비록 청나라가 패망하여 마지막 황제 부의가 천진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청나라의 발상지인 만주에 청나라의 후예임을 자부하는 국가를 세운다면 국제사회로부터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계산했다.

그 외에도 만주국을 세우는 것이 일본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좋은 계략인 이유가 또 있었다. 만일 만주국을 별도로 설립하지 않을 경우 만주에 살고 있는 대한제국의 백성들과 청나라의 후손들인 만주족은 물론 한반도에 살고 있는 대한제국의 백성들까지 연합하여 일본에 저항한다면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둘로 나뉜 상태에서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서로 연합하여 저항하는 것은 얼마든지 통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배자는 피지배자의 몸집과 힘을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이는 것이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다. 만주국과 대한제국을 하나로 묶어서 다스리기 보다는 둘로 나누어 다스린다면 지배하기가 훨씬 수월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들을 둘로 나누고 그 안에서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야 말로 지배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이라는 계산을 했던 것이다. 아울러 최악의 경우 만주국을 중국에 빼앗기더라도 대한제국만큼은 자신들의 수중에 영원히 두고 싶은 욕심도 배제할 수 없다. 설령 만주국을 잃더라도 대한제국을 지배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삼아 다시 한 번 대륙침략을 획책할 수 있다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그러한 치밀한 준비와 계산 하에 건국된 만주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함과 동시에 일본의 괴뢰국가로 몰려 부의는 전범으로 체포되고 만주국은 해산되어 그 영토와 백성들은 중국에 귀속되고 만다. 전쟁에 승리한 연합국이 엄청난 역사적인 과오를 범함으로써 인류 역사상 지울 수 없는 천추의 한을 남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