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UHD 본방송이 당초 계획보다 3개월 늦은 오는 5월31일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6일 전체회의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의결하며 본격적인 UHD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준비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지상파 UHD 본방송 개시일을 9월로 미뤄달라는 지상파의 입장은 '절반'만 반영된 셈이다.

▲ 출처=위키미디어

지상파 UHD 역사와 당위성

흑백에서 컬러를 관통해 SD와 HD를 지나 UHD 시대로 이어지는 진화의 나선에서 TV의 발전은 잠시 3D TV를 지향하는듯 했으나 최종적으로 초고화질의 UHD TV로 수렴되는 분위기다. 대형 디스플레이 시장의 확장과 초고화질에 대한 일반의 열망이다.

국내에서 UHD의 가능성에 제일 먼저 집중한 것은 유료방송이다. 케이블 및 IPTV들이 공격적으로 UHD 도입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상파는 KBS를 중심으로 꾸준하게 UHD 실험방송을 실시하며 서비스 고도화에 박차를 가한 바 있다. 2012년 12월 31일 아날로그 방송 종료와 무관하게 UHD 실험을 거듭, 그 성과를 대내외에 알리기도 했다.

문제는 본방송이다. 최종 목표는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 맞춰진 상태에서 지상파 UHD의 미래를 쏘겠다는 복안이지만 걸림돌이 너무 많다. 5월말로 본방송 일정이 늦춰졌지만 남은 기간 지상파가 의미있는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초 지상파는 유럽식 전송방식인 DVB-T2로 UHD를 준비했으나 이는 미국식인 ATSC3.0으로 대체되었고, 정부는 이러한 결정을 질질 끌다가 적기를 놓치고 말았다. 현재 시판되는 UHD TV와 지상파의 방식이 맞지 않는 문제와 내장형 안테나 이슈 등도 해결되지 않았다. 실제로 지상파 UHD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ATSC 3.0의 UHDTV는 2월이 되어야 출시된다. 또 내장형 안테나의 경우 지상파와 가전사의 이견으로 내홍을 겪었으며 투자 계획도 불분명하다. 졸속이다.

지난해 10월 열렸던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에서 UHD 방송 시청권 확보를 위한 정책 지원 방안 세미나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왔다. 김경환 상지대학교 교수는 지상파의 준비미흡을 지적하며 "지난 2012년 12월 31일 지상파 아날로그 종료 및 디지털 전환과 달리 UHD 방송은 지상파가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시청자 중심의 수신환경개선도 중요한 포인트며, 이를 위한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단 지상파는 5월로 정해진 본방송 일정을 맞추기 위해 KBS가 장비를 구축하는 4월 말부터 1개월 후인 5월31일을 기준점으로 삼았다. 더불어 방통위 주도의 민간합동 점검단을 구성해 각사의 준비상황을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만약 이번에도 본방송이 연기될 경우 방통위는 지상파에 과징금을 물리는 것도 검토중이다.

▲ 출처=UHD 코리아

일정대로 본방송 가능 할까?

우여곡절을 거치며 지상파 UHD 본방송 일정이 5월로 정해졌지만,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일단 기본적인 준비상황이 너무 부족하다. SBS와 MBC의 경우 UHD 방송 장비 도입이 나름 완료됐으나 정작 공영방송 KBS의 준비상황이 미흡하다. 이런 상황에서 테스트 과정에서 장비 자체의 문제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SBS의 경우 나름 고무적이라 특히 눈길이 쏠린다. 지난해 7월 국산 장비업체 진명통신과 함께 관악산 UHD실험국과 목동 UHD실험국, SBS 연주소를 ATSC3.0 SFN(Single Frequency Network)으로 구성하는 실험방송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실험방송의 핵심 장비인 스케줄러는 진명통신이 개발했으며, 송신기 및 변조기는 진명통신과 ProTeleviosion사가 공동 개발했다는 후문이다. UHD 방송신호를 SBS목동 연주소에서 IP망을 통해 관악산 UHD 실험국과 목동 UHD실험국에 전달했으며, 전달된 신호는 두 사이트에서 동일 주파수로 송신되었다. SFN 성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SBS 김상진 뉴미디어개발팀 부장은 “이번 실험방송을 통해 SFN 송신계통이 완성되면 수도권 등 권역별 한 개의 채널로 방송이 가능해 전파자원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며 "ATSC 3.0의 미결 사항인 SFN 기술을 국내에서 먼저 개발해 성공하는 한편 핵심 방송장비의 국산화가 기대된다”라고 밝혔다. 민영방송사 특유의 '야성'으로도 해석된다.

컨버터 문제도 뇌관으로 꼽힌다. 현재 일반에 풀린 UHD TV는 모두 유럽식이지만, 지상파 UHD는 미국식 ATSC 3.0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유럽식 표준이 적용된 UHD TV를 구매한 소비자들은 별도로 컨버터를 구매해야 한다. 가격만 최대 7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상당한 부담이다. 직접수신은 무료보편의 가치를 지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UHD 직접수신을 위해 사비를 들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셈이다.

내장형 안테나의 경우 지상파와 가전사의 이견으로 제대로 된 출시 일정도 잡히지 않았으며 투자 계획도 불분명하다. 다만 해결의 여지는 있다. 현재 지상파는 안테나 내장에 대한 가전제품 제조사의 선택폭을 넓히기 위해 TV 수상기 전원 어댑터에 수신신호 필터 및 증폭기를 장착한 ‘Plug-In Antenna (장착형)’와 TV 내부 전자파 극복기술을 활용한 15mm 두께의 초박형 ‘Stacked Microstrip Antenna (내장형)’를 개발하고 가전사가 UHD TV에 적용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 문제는 누군가의 강력한 의지만 있다면 해결될 수 있다는 뜻이다. 

UHD 코리아의 조사결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UHD 코리아가 지난해 11월25일부터 12월5일까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20~69세 성인 남녀 1001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안테나 내장형 UHD TV를 출시할 필요가 있다’는 응답이 80.1%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안테나 내장형 UHD TV 출시가 필요하다는 응답자에게 ‘구매의향’을 질문한 결과 86.9%가 안테나 내장형 UHD TV를 구매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구매할 의사가 없다’는 의견은 13.1%(전혀 없다 0.6%, 없는 편이다 12.5%)에 그쳤다. 가전사의 역할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수긍했다. 가전사가 추가비용, 디자인, 민원 문제 등을 이유로 UHD TV에 안테나를 내장할 수 없다는 입장에 대해 응답자의 82.8%는 ‘소비자의 권익을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낮은 직접수신율에 대한 원죄다.

현재 지상파의 직수율은 5%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유료방송을 통해 TV를 시청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상파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UHD 본방송에 나서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중곤 KBS UHD 추진단 팀장이 공식석상에서 가전사들이 지상파 UHD 생태계에 참여해 시청자들에게 최소한의 서비스라도 제공해야 한다고 역설한 배경에도 이러한 위기를 타파하자는 기본적인 인식이 깔려있다.

콘텐츠 부족이라는 고질적 문제도 있다. UHD 콘텐츠가 부족하면 당연히 생태계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무기가 사라진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상파의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다.

결국 총체적 난국이다. 다만 지상파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무리한 로드맵이라는 것은 본방송을 준비하면서 많은 이들이 공감했던 것이며, 이는 고쳐나가면 그만"이라며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UHD 방송이라는 대전제를 지키기 위해 지상파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