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됐다. 삼성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총수 유고라는 최악의 결과지를 받아들고 패닉에 빠졌다.

비선실세 논란을 수사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가운데, 법원이 17일 이를 받아들였다. 새롭게 구성된 범죄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 공여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과 더불어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 등이다.

삼성은 치열한 법리다툼을 벌이며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를 한 번 막았지만, 이번에는 실패했다. 다만 박상진 사장의 경우 기각으로 결정됐다.

특검은 지난달 16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최순실 지원을 매개로 국민연금의 지원을 받았다고 여겼으나, 당시 법원은 대가성 및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소명 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했었다.

그러자 특검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물적증거를 찾는 것에 집중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을 통해 나름의 증거를 모은 상태에서 공정거래위원회를 겨냥한 강도 높은 수사에 나선 배경이다.

여기에 국정농단 사건이 벌어진 후에도 삼성이 우회적으로 최순실에게 30억원에 달하는 명마 블라디미르를 제공했다는 혐의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과정에서의 특혜 의혹, 삼성SDI 처분 주식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는 상황에서 청와대의 입김이 있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 최명진 모나미 승마단 감독을 비롯해 25일에는 김신 삼성물산 사장과 김종중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사장 등을 연이어 소환한 배경도 이러한 특검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블라디미르 구입에 대해서는 더욱 강경해졌다. 특검은 비선실세 논란이 불거진 후에도 삼성이 최순실에 대한 지원을 계속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비타나V를 포함한 정유라의 말을 처분하는 척하며, 명마 블라디미르를 새롭게 구입해 제공했다는 것이 특검이 주장하는 삼성 우회지원의 핵심이다. 특검은 이와 관련해 범죄수익은닉죄도 새롭게 적용했다.

하지만 삼성은 '부당한 특혜가 없었다'는 입장이었다.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삼성SDI 주식 처분 특혜에 대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종결된 후 2015년 9월 공정위의 요청에 따라 순환출자 관련 자료를 공정위에 보냈다"며 "삼성은 당시 로펌 등에 문의한 결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순환출자가 단순화되는 것이므로 공정거래법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또 "공정위는 삼성 합병건을 검토하면서 법규정의 미비 및 해석의 어려움으로 인해 외부 전문가 등 위원 9명으로 구성된 '전원회의'를 거쳐 '합병 관련 신규 순환출자금지 제도 법집행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으며 "해당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삼성SDI는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를 합병 후 6개월 내(2016년 2월말) 자발적으로 처분하여야 하고, 자발적으로 처분하지 아니하면 그 후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해 과징금 등을 부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은 공정위의 유권해석에 대하여 이견이 있었고 외부 전문가들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으나, 순환출자를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500만주를 처분했다고 강조했다. 순환출자 해소 과정에서 어떠한 특혜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점을 재차 설명한 셈이다.

국정농단 사태 후에도 최순실에게 우회적으로 30억원에 달하는 명마를 제공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삼성은 논란 이후 최순실에 대해 추가 우회지원을 한 바 없으며, 블라디미르(말) 구입에도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 거론되던 명마 지원 후 이를 은폐했다는 회의록, 소위 '은폐합의 회의록'에 대해서는 "최순실의 일방적인 요청을 기록한 메모였다"며 "박상진 사장은 해당 요청을 거절했으며, 추가지원을 약속한 바 없다"고 전했다.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지원을 부탁한 사람은 이 부회장이 유일하다'는 일각의 보도에 대해서는 "이 부회장과의 독대에서 승마 지원에 대한 언급 외에 최순실, 정유라 등 특정인을 거론해 지원 요청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이 이재용 부회장 구속을 결정하자, 삼성을 넘어 재계는 충격에 휘말렸다. 수사기간이 끝나가는 특검이 '무리한 삼성 죽이기에 나선다'는 비판을 감수하며 이재용 부회장을 공략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줄곧 '우리는 피해자'라고 주장했던 삼성의 주장이 아닌, 후계 구도를 염두에 두고 뇌물의 대가성을 주장한 특검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후폭풍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이 결정된 이상 특검은 '최순실-박근혜' 연결고리의 퍼즐을 뇌물죄로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쌍벌제인 뇌물죄의 특성상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인용에 나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상초유의 총수 유고 사태를 받아든 삼성은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일단 최지성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 등 그룹 수뇌부가 특검의 공세를 시작부터 비켜갔고 박상진 사장의 영장은 기각됐지만, 그룹의 구심점이 사라져 기업의 성장동력이 크게 약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장 삼성전자 등기이사 자리에서도 물러나야 하는 문제가 있다. 글로벌 경기가 악화된 상태에서 위축된 경영활동을 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삼성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