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토부 직원들이요. 점심 때 나가면 오후 2시까지 놀다가 들어온답니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난리통에 장관 말이든 차관 말이든 누가 듣겠습니까?”

얼마 전 세종시 국토교통부에 출장을 다녀온 업계 사람이 나를 붙들고는 성화였다. 어쩌다가 공직 기강이 이리 해이해졌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으로 조직적으로 국정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최순실과 일부 청와대 공직자들, 이들에 줄을 댄 삼성그룹 등 재벌기업들이 연루된 일명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현재 정부 각 부처가 ‘무정부’ 상태에 놓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면서 사퇴를 거부하고 ‘버티기’에 돌입했고 국회를 통과한 탄핵소추안은 헌법재판소로 송달됐다. 헌법재판관들의 탄핵심판에 온 국민의 눈이 쏠린 가운데 권한정지를 당한 대통령의 자리는 황교안 총리가 메꾸고 있지만 외교적으로도 정무적으로도 그 영이 설 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그는 보수층의 대선후보 ‘다크호스’로 떠오른 상황. 일면도 없는 그의 마음까지는 알 수 없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잠깐 동안에도 ‘정상회담’을 하자고 자신감을 비치는 걸 봐선 별다른 인물을 찾지 못한 보수층이 대통령 시켜주겠다면 마다할 인물도 아닌 것 같다.

권한대행의 정부 하에서 관료조직은 빠르게 무너져간다. 탄핵 위기의 정부가 지명한 장관들은 제 살길만 찾고, 눈치 볼 사람 없는 하위 공직자들은 직무에 소홀해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환율조작국으로 한국을 지목할 가능성을 비쳤고 북한 김정은의 이복형이 피살돼 이래저래 한반도에 긴장이 감돌지만 별다른 대응은 없다. 그러는 사이 AI(조류인플루엔자)는 빠르게 확산됐다.

정치권은 벌써부터 발 빠르게 선거운동을 시작했는데 서민들의 주름은 깊어만 간다. 식당도 미용실도 옷가게도 하루걸러 폐업 행진이다. 한 식당 주인은 혼자 밥을 시켜먹고 앉은 기자에게 “장사가 안 돼 죽겠다”고 먼저 말을 건넨다. 듣고 보니 메르스 때보다 체감 경기는 더 나쁘단다. 무정부 상태의 수혜자는 모르겠으나 피해자가 누구인지는 확실하게 보인다. 또 서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