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식사를 마친 후 벨이 울려 문을 열어보니 다짜고짜 동별 대표자로 출마한 사람에 대한 찬반을 묻는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나왔다는 그분은 종이를 주며 찬성 혹은 반대 칸에 동그라미를 그려달라고 한다. 그 사이에 동행한 경비원은 맞은편 세대의 투표 순서를 대기시키려는 듯이 벨을 미리 누른다.

세대주가 아니기에 머뭇거리자 거주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가능하다는 설명을 하지만 내심 재촉하는 말투이다. 단지를 위해 힘써줄 대표를 뽑는다기보다는 투표용지에 동그라미를 치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듯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 일은 짐작컨대 대부분의 단지에서 동별 대표자를 선출할 때 벌어지는 일이 아닐까 싶다. 형식을 갖추기 위한, 아니 법이 만든 형식에 꿰어 맞추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로 느껴졌다.

공동주택관리법령에는 입주자대표회의 선거 방법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하게 규정되어 있다. 동대표가 되고자 하는 후보자에 대한 범죄경력 조회를 비롯해 선거관리위원회의 구성 방법, 인원수까지 정하고 있다. 선거철에나 들을 법한 선거관리위원회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그만큼 공동주택관리에서 입주자대표회의 선거가 중요한 입지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동별 대표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늘 색안경을 필요로 한다.

선정 과정에서 후보자의 진심은 존재하더라도 투표자의 진심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파트 관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노고나 그 과정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동별 대표자에게 ‘알아서’ ‘잘’ ‘낭비 없이’ 관리할 것을 기대한다.

그렇다면 동별 대표자나 입주자대표회장을 선임하기 위해서 아파트 단지 거주자로서 무엇을 직시해야 할까? 입주자대표회의 임원을 선출하기 위한 거창한 투표활동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일본의 경우 맨션의 구분소유자가 맨션 관리조합에 당연 가입되고, 관리조합 내에 이사회를 구성해 맨션관리 시에 주된 역할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관리조합 전원을 출석 대상으로 하는 총회는 1년에 1번 정도 개최되지만 일상적인 관리업무를 위해 이사회가 월 1회 정도 개최된다.

그런데 건물의 구분소유 등에 관한 법률을 들여다보면 이사회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맨션의 공용 부분 관리를 위해서 관리조합을 구성하고 규약을 정하고 집회를 개최하라는 규정만 존재한다.

이 규정은 너무 포괄적이어서 맨션 관리조합에서 어떤 내용을 규약에 넣어야 할지 집회의 개최빈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구분소유자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대신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중앙정부에서는 1982년에 중고층 공동주택 표준관리규약으로 출발해 2004년에 맨션의 현실을 반영한 맨션표준관리규약을 가이드라인으로 제공하고 있고, 2005년에는 맨션관리표준지침을 마련해 정보로 제공하고 있다.

맨션표준관리규약은 법령에 규정되어 있는 규약을 정하기 위한 필수 가이드로 인식할 수 있다. 구분소유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균형 있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에서 연구를 거듭해 책정한 것이다.

맨션표준관리규약에는 관리조합의 임원의 선임과 역할에 대한 내용이 나타나 있다. 법에서 정한 내용을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사항을 나타낸 것이다.

관리조합의 임원은 이사와 감사가 있고 이사 중 일부는 이사장, 부이사장, 회계담당이사 등의 직책이 주어진다.

이사와 감사는 총회의 의결을 통해 선임한다. 구분소유자들이 이사와 감사를 선임하면 이사장, 부이사장, 회계담당이사 등 보직을 맡는 이사는 이사회에서 선임한다. 구분소유자가 이사회 구성을 위해 이사를 선임할 당시에는 이사장이나 회계담당 이사 등 보직을 알 수 없고 이사회에 일임함으로써 이사회 내에서 균형 있는 업무담당자가 결정되도록 한다.

임원은 법령, 규약 및 맨션 사용세칙 등의 세부규칙 및 총회와 이사회에서 의결된 바에 따라 관리조합원을 위해서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해야 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보수를 책정할 수도 있다. 맨션종합조사에서 나타난 바에 의하면 73%의 관리조합에서 보수를 책정하고 있지 않으며 보수를 지급하고 있는 관리조합 중에서 임원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경우는 월 평균 2600엔, 이사장과 이사의 보수에 차등을 두는 경우 이사장과 이사는 각각 월평균 9200엔, 4400엔의 보수를 받고 있었다.

맨션관리지침은 맨션표준관리규약을 단지에 맞게 적용함에 있어서 표준적인 대응에 대한 해설과 관리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바람직한 대응을 제시하고 있는데 표준적인 대응으로 이사의 임기를 1~2년 정도로 하고 각 이사의 취임일과 임기의 기한을 명확히 하도록 하고 있다. 이사의 임기나 기한이 모호해 이사회가 일부 이사의 독재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나아가 이사의 임기 만료 시 개선(改選)은 반 수 정도로 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이사들의 임기 만료에 따라 전원이 교체되면 업무의 계속성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맨션종합조사에서는 조사 대상 관리조합의 약 70%가 관리조합 임원의 임기를 1년으로 정하고 있고 67%가 이사회 전원이 동시에 교체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맨션표준관리규약의 해설에서 이사는 10~15세대당 1명꼴로 선임하는 것을 제시했다. 특히 200세대를 넘어서 임원 수가 20명을 넘는 대규모 맨션에서는 이사회에서 실질적인 검토를 하는 것이 힘들다고 판단, 이사회 내에 세부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두어 분담하도록 해 실질적 검토 실시할 수 있는 복층적인 조직구성을 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구분소유법, 맨션표준관리규약, 맨션표준관리지침의 관련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희한하게도 선거의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저 관리조합의 구성원이 이사회의 구성과 역할에 대한 이해를 확고히 하는 것이 목적일 테다. 그래도 어떤 방법으로 선임하는지 궁금하다. 맨션종합조사에서 이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주었다. 응답한 맨션 관리조합의 73%가 순번제로 선임하고 있었고, 32%가 입후보, 23%가 추천, 10%의 맨션에서는 추첨으로 선임하고 있었다. 복수응답이라 아마도 입후보, 추천이 없을 시 순번제나 추첨제를 병행 운영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일본 맨션관리조합 임원의 선출 방법에 궁금증이 생겨서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봤지만 제도나 규정이 없었기에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맨션관리를 전체로 보았을 때 임원의 선출 방법은 지극히 미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공동주택 관리의 본질은 관리업무를 수행할 사람을 어떻게 뽑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선 왜 뽑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공동주택의 관리는 공용 부분의 관리를 얼마나 계획적으로 잘할 것인가, 비용 부담을 얼마나 할 것인가, 공용 부분을 함께 사용하고 생활하는 입주자 간에 민원요소를 발생시키지 않고 공평하게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는가 하는 사항들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동을 대표해서 자신의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해줄 봉사자가 필요한 것이고 선임한 후에는 신뢰와 관심을 주고 협조해야 한다. 피상적인 정보보다 구분소유자들이 소중한 의결권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용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