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 전문법원 도입의 근본 취지는 파산 판사의 전문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다. 판사의 임기를 장기간으로 하고, 많은 사례를 연구하게 한다면 전문성이 배양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전문성이 갖춰진다면 회생파산 선고에 대해서도 ‘예측 가능성’이 크게 제고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전문성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도산 관련한 신청자들의 불편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파산법조계에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개인회생, 파산 과정에서 빚어지는 과도한 조사 문제를 지적한다. 윤준석 변호사(김, 박 법률사무소)는 “일반적으로 채무자가 파산신청을 하면, 파산관재인은 신청인 본인뿐만 아니라 부모, 배우자, 자녀의 재산 관련 서류를 모두 요구하는데 그 종류가 무려 30가지가 넘는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김지훈 변호사(법무법인 대율)는 “파산관재인의 과도한 조사가 원인이라기보다 법원이 획일적으로 요구한 서류 목록에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파산관재인도 어쩔 수 없이 법원의 지침에 따라야 한다는 것. 김 변호사는 “채무자에 대한 시각이 변하지 않는 한 회생법원이 출범한다고 해서 이런 관례가 변할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개인도산절차의 경우 수도권과 지방 법원 사이에 실무적 차이, 예를 들어 심문절차들이 크게 다른 것도 해결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오수근 교수는 “회생법원이 출범하면 대법원 산하 회생, 파산위원회가 회생법원 산하로 재편될 것”이라며 “향후 회생, 파산위원회가 전국적으로 통일된 기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법조계의 시각은 다르다. 워낙 판사의 재량이 광범위한 영역이어서 지역적 편차를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회생전담법원이라고 하는 틀이 아니라 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운영능력이 개선될지도 불투명하다.

김관기 변호사(김, 박 법률사무소)는 “인적, 물적으로 독립한 법원의 위상보다 도산절차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며 “아무리 제도가 우수하더라도 이것을 이끄는 것은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업회생의 경우 관리위원, 조사위원이 있고, 파산절차의 경우 파산관재인 등 이들은 법관만큼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위에 있는 만큼 이들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 <자료=한국금융피해자 협회제공>

- 회생법원은 이해 조정의 메카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

회생전문법원의 출범은 법원 구성상 독립된 조직이라는 의미 이상으로, 앞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는 의미도 있다. 법원이 강력한 법률의 효력으로 절차를 주도해 나가는 것보다 회생절차과정에서 복잡하게 얽힌 이해당사자들 사이에 대화의 장을 주선해 주고 원만한 협상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안창현 변호사는 “채권자들로 구성된 채권자협의회가 개별 채권자들의 위임을 받아서 채무자와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동의 절차에 실질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여, 채무자가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도 제도적인 틀로 정비해 보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좋은 체계를 만들고 일관성과 전문성을 갖추어도 채무자를 죄인 취급하는 시각이 변하지 않으면 시스템은 무의미하다. 결국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서울회생법원이 우선 갖추어야 될 것이 채무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파산수업>의 저자 정재엽은 아버지와 같이 운영하던 제약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2번의 거쳐 회생신청을 했다. 그는 변호사의 도움 없이 혼자서 회생절차를 수행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담당 판사님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회생을 졸업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판사님이 저녁에 퇴근도 안 하고 집무실로 불러 서류 준비를 친절하게 안내해 주고, 채권자들을 설득하는 데 앞장섰다. 전문가의 도움 없이 절차를 진행하는 것을 판사님이 안타까워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파산법원에서 각자 역할을 하는 이들의 마음가짐이 파산법원을 국민이 원하는 법원으로 우뚝 세울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