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노잼(진짜 재미없다는 뜻). 다 거기서 거기.’

최근 국내 게이머 다수가 한국게임에 향해 이런 생각을 내비친다. 헤비 유저들이 서식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기본으로 깔려있는 분위기다. 비슷비슷한 게임이 많아 식상하다는 식이다. 한국게임 회의론이 만연하다.

업계에서 할말이 없는 건 아니다. 생존과 직결되는 처지에 관한 문제를 얘기한다. 과거 흥행공식을 충분히 답습하지 않아 실패하면 당장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설명이다. 한국게임을 향한 유저 마음이 조금씩 식어간다. 시장경쟁력 상실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산업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유명 IP 활용 모바일 RPG' 대세

“신작이 비슷비슷해보이는 이유요? 유명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해 개발한 게임이 많으니까 그런 것 아닐까요. 장르 쏠림현상 때문이기도 합니다. 과금유저가 탄탄한 RPG(역할수행게임) 쪽으로 신작이 많이 나오다보니 유저들은 신작에서 비슷한 인상을 받을 수밖에요.”

업계관계자 말이다. 그는 IP 활용과 장르 편중 두 포인트를 지목했다. 먼저 IP 활용은 예전부터 콘텐츠산업 핵심으로 꼽히는 방법론이다. 원작을 활용해 2차 저작물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디즈니 캐릭터로 캐릭터상품을 제작하는 건 물론 웹툰 원작 영화 같은 사례도 포함된다. IP의 가치는 꾸준한 활용을 통해 확장된다는 게 업계 정설이다.

국내 게임업계에서 IP 활용가치에 관심은 보인 건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성공사례가 등장하자 너도나도 IP라는 말을 유행어처럼 사용 중이다. 기존 게임을 신작으로 다시 만드는가 하면 다른 콘텐츠 영역 소스를 활용해 게임을 만들기도 한다. 그 반대 경우도 있다. 아니면 IP를 타사에 제공해 로열티 수익을 거둬들인다.

IP 활용은 양날검이기도 하다. 같은 IP를 활용해 만든 신작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오면서 유저들은 ‘비슷한 게임이 많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일부 유저는 ‘우려먹기’라고 낙인 찍기도 한다. 수준낮은 IP 활용 게임이 IP 가치를 갉아먹기도 다반사다. 유명 IP 활용은 친숙함을 무기로 일종의 마케팅 효과를 발휘하지만 식상하다는 반응과는 한끗 차이다.

장르 쏠림현상 역시 게임이 비슷비슷하다는 인식을 주는 데 기여한다. 장르마다 느슨한 법칙이 존재하는데 이를 지키다보면 같은 장르끼리는 닮아가기 마련이다. 장르 유사성이 짙을 경우 표절시비가 벌어지기도 한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종종 있어왔던 일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RPG로 신작이 쏠린다. RPG에 돈을 쓰는 과금유저층이 탄탄하다는 믿음으로 게임사는 안전한 선택을 한다. 모바일 시장조사업체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구글플레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유저 평균결제금액이 가장 높은 장르는 단연 RPG(59만원)였다. 액션(40만원)과 스포츠(35만원)가 뒤를 이었다.

▲ 출처=엔씨소프트
▲ 출처=넷마블게임즈

외산게임 공습 이상징후, 한국게임 어디로

IP 게임이든 RPG든 수요가 있기에 개발한다는 논리다. 이런 논리로 탄생한 게임 중 정점에 위치한 게 ‘리니지2 레볼루션’이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2 IP를 활용해 넷마블게임즈가 개발한 모바일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다. 지난해 12월 출시 이후 한달 만에 누적매출 2000억원을 돌파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초유의 기록이다. 아직까지도 앱마켓 매출순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레볼루션은 IP와 RPG가 돈이 된다는 믿음을 강화해주는 사례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RPG의 인기가 떨어진다면서 한국게임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기도 한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은 지난달 열린 간담회에서 다른 의견을 내놨다. “넷마블의 미션은 RPG의 세계화입니다. 우리가 가장 잘하는 장르로 정면승부하겠습니다.”

최근 RPG 편중현상을 극복하려는 시도도 종종 나타난다. 넥슨의 경우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던가. 다만 RPG가 아직은 엄연한 주류장르다. “여전히 퍼블리셔는 RPG를 원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장르에 RPG 요소라도 넣길 바라죠. 개발사 입장에서 그런 요구를 거스르긴 어렵죠.” 중소개발사 관계자의 말이다.

RPG냐 다양성이냐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왈가왈부가 이뤄지는 사이 이상징후가 발견되고 있다. 한국게임 회의주의가 짙어지면서 이어진 현상이 외산게임의 공습이다. PC게임 시장을 ‘오버워치’와 ‘리그오브레전드’가 장악한 것도 모자라 모바일게임 영역은 ‘포켓몬GO’가 깊게 파고들었다.

▲ 출처=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 출처=라이엇게임즈
▲ 출처=나이언틱

이 게임들은 일단 RPG가 아니다. 오버워치는 FPS(1인칭 슈팅게임), 리그오브레전드는 AOS(적진점령 게임)다. 포켓몬GO는 위치기반 증강현실(AR) 어드벤처 정도로 볼 수 있겠다. 포켓몬GO는 20년 숙성된 포켓몬 IP를 활용한 게임이지만, 나머지 두 게임은 새로 창안한 IP다. 이 게임들은 국내 업계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흥행법칙이 적용된 걸로 보인다.

리그오브레전드와 오버워치는 게임트릭스가 집계하는 PC방 인기게임 순위에서 왕좌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두 게임 합산 점유율은 지난 14일 기준 54.7%에 달한다. 과반이 넘는 셈이다. 포켓몬GO는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에서 매출 2위를 기록 중이다. 이용자 수 기준으로는 국내 게임앱 중 압도적 1위(와이즈앱 조사)다.

국내 게임 개발공정이 모바일 RPG에 맞춰진 탓에 이런 흐름에 대응하긴 쉽지 않다. 한 게임연구자는 분석했다. “장르 쏠림현상이 심화되면서 글로벌 시장은 물론 국내 게임시장 트렌드 변화에도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모바일에 치중하면서 가상현실(VR)과 같은 차세대 플랫폼에도 대응 못하고 있죠. 유명 IP에 의존해 신규 IP를 키워나갈 기회도 잃고 있는 모습이고요. 국내 유저들의 회의적인 시선을 그저 불평불만으로만 받아들이면 안 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