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결 시대가 도래하며 반도체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국내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막강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D램과 낸드플래시 중심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반도체 코리아’를 증명할 수 있는 강력한 투톱이다.

메모리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SK하이닉스의 선 굵은 행보가 업계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낸드플래시에 집중한 상태에서 공격적인 투자와 외연적 확장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력’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매서운 존재감을 보이는 SK하이닉스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다가올 미래의 비전까지 살펴보자.

불굴의 도전과 의지로 쓴 역사

SK하이닉스의 기원을 따져 들어가면 한국전쟁 발발 직전인 1949년 세워진 국도건설(주)에 이르게 된다. 반도체와 건설회사의 간극은 SK하이닉스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과 같다. 1983년 현대그룹이 국도건설(주)을 인수하며 현대전자산업(주)을 세웠고, 이를 바탕으로 반도체 산업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건설회사인 국도건설(주)이 당시 경기도 이천에 30만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있었던 점이 주효했다.

현대전자산업(주)은 1985년 256Kb D램을 만들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공략을 알렸다. 팩시밀리 및 로봇 제어 기기 등을 판매했지만 핵심은 반도체였다. 이어 1986년 반도체연구소를 세웠고, 1991년 5월에는 현대전자로 CI를 확정했다. 1996년 12월에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되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1999년 정부의 빅딜 프로젝트에 힘입어 LG반도체까지 흡수합병했다. LG반도체는 1989년 5월 세워진 금성일렉트론(주)이 전신이며 국내 최초로 0.35㎛급 ASIC을 개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 현대전자산업(주)은 초유의 위기와 직면했다. 반도체 단가가 떨어지며 수익성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2001년 3월 회사 이름을 현대전자에서 (주)하이닉스반도체로 바꾸며 강도 높은 쇄신을 시도하며 그해 5월 통신단말기사업부를 현대큐리텔로 분사하고, 통신ADSL사업부는 현대네트웍스로 분리했으나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결국 그해 8월 현대그룹은 (주)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경영권 포기 각서를 쓰기에 이른다. 주인 없는 11년의 시작이다.

다행히 시련의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2004년 (주)하이닉스반도체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두며 화려하게 부활했기 때문이다. 이어 2008년 세계 최초로 3중셀(X3) 기술 기반의 32Gb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해 12월에는 세계 최초로 2기가비트 고용량 모바일 D램까지 구현하며 완전히 정상궤도에 올랐다.

주인을 찾으려는 노력도 이어졌다. 한때 효성그룹이 물망에 올랐으나 철회했으며 STX도 인수를 추진했으나 결국 물러서고 말았다. 건강한 회사로 꼽혔지만 그 가치를 명확하게 간파하고 힘 있게 끌어갈 주인은 난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STX와 경쟁하던 SK텔레콤이 2011년 11월 채권단에게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2012년 2월 14일, (주)하이닉스반도체는 SK의 품에 안겼다.

SK 입장에서 (주)하이닉스반도체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현재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만 해도 SK는 내수 중심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주)하이닉스반도체 인수를 통해 일정 부분 이 꼬리표를 떼어낼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과의 연계를 통해 글로벌 기업 경쟁력을 더욱 강하게 틀어쥐었다는 의미다. 나아가 과감한 베팅과 행동력으로 미래성장동력을 품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최태원 회장은 2012년 2월 22일 (주)하이닉스반도체의 첫 조직개편에 나서며 “밤 새워 배우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SK하이닉스는 최태원 회장 경영을 논할 때 반드시 빠지지 않는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다. 2014년 그룹의 핵심인 SK이노베이션이 크게 휘청일 당시에도 SK하이닉스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으며, 2015년 8월 최태원 회장이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뒤 SK하이닉스 중심의 투자계획을 제일 먼저 언급한 것도 이러한 믿음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SK하이닉스, 슈퍼 사이클의 고리에서 서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장기호황, 슈퍼 사이클의 초입에 들어섰다.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D램 시장 매출 규모는 전분기보다 18.2% 증가한 124억540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33억3000만달러를 기록해 시장 점유율 26.7%를 차지, 2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낸드플래시도 마찬가지다. 시장조사기관 IHS테크놀로지에 따르면 2015년부터 823억 기가바이트(GB)이던 낸드플래시 시장은 2020년 5084억GB까지 확대되는 등 연평균 성장률이 44%에 달하며 2015년 약 570억 기가비트(Gb)였던 D램 시장 역시 2020년 1750억Gb로 연평균 25.2%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장기호황이 예상되는 부분도 고무적이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박리다매 전략으로 시장을 교란하는 플레이어가 없으며, 이들은 적절한 수요와 공급을 조정하며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SK하이닉스는 승부수를 던졌다. 낸드플래시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충청북도 청주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고 지난해 12월 22일 밝혔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8월 M14 준공식에서 선언했던 중장기 투자계획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당시 SK하이닉스는 무려 46조원을 투입해 경기도 이천과 충북 청주에 M14를 포함한 총 3개의 반도체 공장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신규 공장은 청주 산업단지 테크노폴리스 내 23만4000㎡ 부지에 들어서며 2017년 8월부터 2019년 6월까지 2조2000억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건물과 클린룸을 건설한다는 복안이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청주와 이천, 중국 우시에 사업장을 가지고 있다. 2005년 가동된 이천의 M10은 D램을 생산하며 M14의 아래층은 D램, 위층은 3D 낸드플래시를 맡고 있다. M14는 현재 2층 클린룸 공사를 진행 중이며 내년 상반기 공사가 끝난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청주 공장의 M11, M12는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다. 2019년 청주의 신규 공장은 3D 낸드플래시 전용으로 쓰인다. 여기에 중국의 우시는 SK하이닉스 D램 물량의 절반을 생산해왔다.

현 상황에서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을, 청주에 낸드플래시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2006년 준공된 우시공장은 향후 미세공정 전환에 필요한 공간이 추가 확보되지 않으면 여유공간이 부족해져 생산량 감소 등 효율 저하가 불가피하게 된다. 이에 SK하이닉스는 2017년 7월부터 2019년 4월까지 9500억원을 투입해 클린룸 확장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SK하이닉스는 커지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흐름을 간파하고, 중장기적 투자를 통해 확고한 시장 장악력을 품어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낸드플래시에 집중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SK하이닉스는 D램에서 삼성전자에 이은 2위지만, 낸드플래시에서는 5위에 머물러 있다. 이런 상황에서 2위 사업자인 도시바가 휘청이는 등 시장의 판이 흔들리는 장면과 SK하이닉스는 야심찬 행보가 동시에 감지되어 눈길을 끈다. 당장 청주 공장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는 낸드플래시로 향하는 전력의 집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왜 낸드플래시일까? 차지하는 비중이 서서히 커지는 대목이다. 낸드플래시는 D램과 달리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를 기억하는 메모리 반도체다. 초연결을 지향하는 사업자들이 낸드플래시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임베디드멀티미디어카드(eMMC)와 HDD를 넘어선 차세대 저장장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기업용 서버 등에서 폭넓은 니즈를 자랑한다. 일각에서는 D램보다 낸드플래시 시장의 중요도에 더 집중하는 이유다. 심지어 내년이면 낸드플래시 시장이 D램 시장을 추월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여기에서 SK는 그룹 차원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SK㈜는 지난해 반도체용 특수가스 제조업체인 SK머티리얼즈를 인수하며 반도체 소재 사업에 진출한 바 있다. 나아가 이번 LG실트론 인수를 통해 특수가스와 웨이퍼 등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핵심 소재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용가스 제조사인 SK에어가스를 인수하고, 합작법인인 SK트리켐과 SK쇼와덴코를 연이어 설립한 상태에서 SK㈜의 반도체 행보는 더욱 탄력받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SK하이닉스의 치밀하고 정교한 방법론이 덧대어진다. 3D 낸드플래시에 올인하는 사업자들이 늘어나며 시장의 크기가 커지는 상황에서, 씨게이트와의 SSD 합작사 설립을 통해 나름의 외연적 확장도 꾀하는 분위기다.

“거침없이 진격한다”

초연결 시대가 도래하며 반도체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SK하이닉스가 보여주는 행보는 선택과 집중, 그리고 큰 그림의 등장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룹 차원의 전사적인 수직계열화와 낸드플래시에 영점조정을 맞추는 행보는 미래성장동력에 대한 SK의 시각을 증명한다는 평가다.

그 중심에 SK하이닉스가 진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참전과 판의 급변 등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기습적 악재’를 걱정하는 분위기도 연출되지만 SK하이닉스는 침착한 분위기로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다. 11년을 떠돌았던 하이닉스의 방황은, 이제 SK그룹의 중간지주사 설립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