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노삼성 부산공장 전경 / 출처 = 르노삼성자동차

부산지하철 1호선 하단역과 신평역 주변은 평일 저녁에 유독 활기찬 거리로 변한다. 회식하는 직장인들과 대학생들이 북적거리면서다. 꽤 오래된 맛집들이 명맥을 유지하는가 하면 한쪽에는 대학생들을 겨냥한 퓨전 식당들도 즐비하다.

한 식당 사장은 지난 1년만 같으면 장사할 맛이 난다고 귀띔했다. 직장인의 단골집인 제첩국을 오래도록 주메뉴로 한 식당이다. 젊은이들이 취업에 대한 고민을 늘어놓는 것을 볼 때는 마음이 아프지만, 인근 자동차 회사가 잘되는 바람에 갈수록 길거리 풍경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

“지역경제는 정말 그 지역 기업이 잘돼야 살아나더군요. 5년 전에는 그 회사가 구조조정에 파산지경까지 이른다는 소문에 정말 하루하루 장사하는 게 너무 힘들고 망할까봐 겁이 날 정도였습니다. 요즘 장사가 잘될수록 그 회사 손님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더욱 귀하게 모셔야겠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다른 식당 사장이 5년 전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꺼낸 말이다.

자영업자들을 웃고 울린 회사는 바로 르노삼성자동차다. 르노삼성의 지난 5년은 인근 지역 상권에서도 느낄 수 있다. 공장이 있는 부산 강서구 신호동인근의 신호산단로 상권도 하단역 주변과 비슷한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4000여세대의 부영아파트는 인근 산단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이 아파트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같은 말을 건넨다.

“정말 5년 전에는 문을 닫을까 매일 고민했어요. 찾아오시는 손님에게 질문도 못 할 정도로 침울한 분위기였죠. 쇼핑하시는 고객들이 절반으로 줄이시는데 무슨 말을 건넬 수 있겠어요. 사정을 뻔히 아는데 말입니다. 그때와 지금은 천지차이예요. 손님들 얼굴이 모두 밝아지셨어요. 당연히 장사도 잘됩니다. 회사는 물론 협력업체 사람들도 함께 살맛나는 거겠죠.” 오랫동안 이곳에 슈퍼를 해온 어느 사장의 얘기다.

직원들의 얼굴 표정도 180도 변했다. 한 직원은 “5년 전에는 희망퇴직을 신청할까 진심으로 고민했다”며 “최근엔 회사가 잘 나간다는 이유로 한 턱 쏘라고 말하는 지인들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너무 가벼워서 좋다”고 언급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 근본까지 바꿀 만큼 큰 변화를 뜻하는 용어다. 르노삼성 자동차의 지난 5년간의 변화를 함축하는 단어가 아닐까.

요즘 르노삼성자동차를 두고 이르는 말일지도 모른다. 2012년에는 회사 임직원들 모두 하루하루가 피를 마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불과 5년 만에 회사·공장 곳곳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나고 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하게 됐을까.   

▲ 르노삼성 SM6 / 출처 = 르노삼성자동차

5년 전 내수 판매량 3분의 1토막… 위기의 시작

지난 2010년 15만5696대였던 르노삼성의 내수 판매량이 2012년 5만9926대로 3분의1 토막 나며 본격적인 위기가 도래했다. 당시 수출을 합산한 전체 판매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30% 감소했다. 5조1670억원이던 매출이 3조6550억원으로 하락했다. 2011년과 2012년 각각 2150억원, 172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암흑기였다.

르노삼성이 곧 파산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었다. 그만큼 심각했던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회사 매각설을 비롯해 수십억대 과징금을 내게 됐다는 등 근거 없는 루머가 시장에 떠돌 정도였다는 후문이다.

임직원들 모두 하루하루 긴장된 날을 보내며 회사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이들의 관심은 고꾸라지는 회사를 어떻게 급반전시킬 것인가 하는 데 집중됐다. 기업경영에서 시장점유율이 떨어지고, 적자가 쌓이기 시작하면 회사의 활력이 급전직하한다. 직원들이 불안해하고, 판매처는 등을 돌린다. 안 좋아지는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 때문에 역전의 드라마는 기업경영에서 결코 찾아보기 쉽지 않은 스토리다. 대역전의 스토리를 르노삼성이 그려낸다.    

“사람이 답이다”… 프로보 사장과 박동훈 사장

5년여가 지난 현재. 분명한 것은 르노삼성의 상황이 180도 변했다는 것. ‘승승장구’라는 말이 요즘 임직원의 입에 심심찮게 오르내릴 정도다.

자동차업계의 대부분 시각은 프랑스 본사 지원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지목한다. 그러나 프랑스 본사는 국내 자동차 시장을 잘 알지도 못하고, 한국인의 자동차 구매형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았다. 또 재정적·기술적 지원만으로 부동의 1위 현대·기아차가 버티고 있는 상황을 타개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당시에는 답이 없어보였다.

회사가 어렵던 시절, 프랑스 본사가 부산공장에 닛산 로그 수출물량을 밀어주기까지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당시 르노본사는 1700억원을 투자했지만, 그 돈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2010년 대비 2011년 수출물량이 19%나 늘었지만, 원화가치 하락으로 오히려 적자가 크게 늘어나기도 했다.

변곡점은 2011년 9월 프랑수아 프로보 사장이 부임한 것으로 봐야한다. 프랑스 본사에서 온 프로보 사장은 회사를 살려내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바탕으로 ‘리바이벌 플랜’을 수립했다. 곧바로 ‘희망퇴직’ 카드를 꺼내 피눈물 나는 인력구조조정에 들어갔다. 

▲ 르노삼성 중앙연구소 / 출처 = 르노삼성자동차

사정이 어려운데 외부에서 제품이 잘 팔리기만 기대할 순 없었다. 운을 바라기보다 현실적인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인력 감축이 불가피한 셈이다. 회사는 최대 24개월분의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고, 결국 전 직원의 20%에 달하는 800여명을 감축했다.

이후 르노삼성은 직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애썼다. 경영진들이 영업사원들과 직접 만나며 영업의지를 키우는데 앞장섰고 공장을 찾아 근로자들을 만나는 일도 잦아졌다. 뒤숭숭한 상황이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할 수 있다’는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800여명의 동료를 희생한 직원들도 의지를 불태웠고, 비장한 각오로 뭉치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은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났다. 우선 공장 효율성이 30%가량 개선됐다. 

부품국산화 전략 성공… 지역경제와 함께 호흡

두 번째 역전의 전략은 사람이 아닌, 품질에 모아졌다. 이번에는 부품 국산화 작업에 착수했다.

르노삼성은 부품의 수입 의존도가 높아 ‘초엔고 현상’ 속에 많은 손해를 본 경험이 있다. 앞으로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부품 국산화였다. 함께 손잡고 국산화를 이끌어줄 협력업체 파트너를 찾는 데 집중했다.

시트 납품을 주로 하는 ‘애디언트동성’이라는 파트너는 그중 한 예다. 같이 손잡고 부품 국산화에 앞장선 덕분에 르노삼성이 살아날 때, 이 회사도 최고매출액을 찍었다. 이 회사는 직원도 30여명 신규 채용했다.

이 전략은 회사 내에서 ‘신의 한 수’로 통했다. 2011년 60%였던 부품 국산화율이 2013년 말 75%로 끌어올려졌다. 덕분에 어려운 대내외 환경 속에서도 2013년 171억원 영업이익을 올리며 흑자전환할 수 있었다. 비싸고 환율 영향을 많이 받는 해외 부품 대신 국산화한 부품을 채택함으로써 이익구조가 강화된 것.

이것은 ‘티핑 포인트’가 됐다. 여기에 화룡점정의 한수만 가세, 반전의 드라마가 화려하게 개막했다. 지난 2013년 박동훈 현 사장이 영업본부장(부사장)으로 들어온 것. 박 사장은 자동차 업계에 수십년간 몸담으며 현장 경영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일선 영업점을 돌며 직원들과 소통을 강화하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신차가 무엇인지를 영업직원들로부터 직접 들었다. 이 같은 현장의 여론은 제품 개발에 그대로 반영됐다.

▲ 르노삼성 QM3 / 출처 = 르노삼성자동차

비슷한 시기 QM3가 등장했다. 내부적으로는 성공여부를 놓고 논란이 컸다. 한 임원이 “차가 못생겨서 성공하기 힘들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만 QM3는 한국 자동차시장에 묵직한 펀치를 날렸고 르노삼성의 존재감을 알리는 일등공신이 됐다. 사전계약 물량 1000대가 7분 만에 완판되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 고객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7분 완판 사건’ 이후 회사는 자신감으로 넘쳐났다.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파하던 경영진의 목소리가 직원들에게 제대로 스며든 것이다.

이어 등장한 차는 SM6. QM3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준 것이라면, SM6는 성공의 DNA가 회사내부에 자리 잡혔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2012년 희망퇴직을 받으면서도 연구개발 및 디자인 부문 인력을 제외한 ‘혜안’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SM6의 성공에 힘입어 르노삼성은 지난해 27만1479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다. 2010년에 이어 역대 2위의 기록이다.

성공 궤도에 오른 뒤 르노삼성은 초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사정이 나아지고 신규 채용을 진행한 일이 대표적이다. 믿고 따라온 직원들을 위해 임금도 인상했다. 한 직원은 “희망퇴직 등을 감행하며 과감하게 움직이되, 자동차 개발에 집중한다는 본연의 가치를 잃지 않았던 것이 반전의 비결이 아닐까”라고 평가했다.

▲ 박동훈 사장 / 출처 = 르노삼성자동차

앞으로 르노삼성이 밟아야 할 다음 전략은, 결국 공장 증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산 30만대 수준인 부산공장을 60만대 수준으로 늘리는 것이다. 지역경제에 기여하고 고객들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겠다는 분석이다.

르노삼성의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