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선거기간 동안 밝혔던 선거공약들을 취임하자마자 일사천리로 진행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불법체류자들을 몰아내겠다는 것이었다. 국토안보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주 미국의 9개 주에서 동시에 실시된 불법체류자 체포 작전을 통해서 총 680명의 불법이민자가 체포됐다.

트럼프 정부는 일상적인 단속이었다고 밝혔으나 과거 정부에서는 중범죄자나 추방 명령을 이미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단속이 이뤄졌고 체포돼도 추방까지 시일이 걸렸던 반면 이번에는 이미 수십명이 체포에서 추방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 차이다.

트럼프는 선거기간 동안 불법체류자 300만명을 추방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일제 단속으로 불법체류자들의 불안감이 커진 가운데 일부는 한겨울의 추위를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탈출까지 감행하는 상황이다.

트럼프가 불법이민자들뿐만 아니라 합법적인 이민자들까지 미국으로 들이는 것을 탐탁치 않아하는데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트럼프 자신도 이민자 가족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모순된 행동이라는 점도 대두된다.

트럼프의 어머니인 메리 앤 맥클라우드 트럼프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17살이던 1930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스코틀랜드의 작은 어촌마을 출신인 메리 앤은 가난을 벗어나고자 당시 대부분의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했듯이 미국으로 향하는 배에 오른 것이다. 배를 2~3번을 갈아타면서 미국에 건너올 당시 그가 작성한 신상 기록에는 직업을 ‘가정부’라고 적었다.

뉴욕에 도착한 메리 앤은 부잣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로 취직해서 돈을 벌게 된다. 이 당시 도널드 트럼프의 아버지인 프레드 트럼프를 파티에서 만나 1939년 결혼했으며 당시 서유럽에서 온 이민자들로 가득한 동네인 뉴욕 퀸즈 자마이카에 신혼집을 차렸다. 메리 앤은 미국으로 건너온 지 10여년이 지나서인 1942년 미국 시민이 됐다.

트럼프의 아버지인 프레드 트럼프는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아버지인 프레드릭 트럼프는 독일에서 태어나 16살에 가난과 군대 징집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어머니는 이민 1세대, 아버지는 이민 2세대인 셈이다.

트럼프의 사위인 자레드 쿠시너의 가족들도 이민자 출신인데 그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야기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자레드 쿠시너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현재 벨라루스, 당시 폴란드에서 태어난 이들은 히틀러가 집권하고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자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됐다.

나치정권하에서 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을 잃은 쿠시너의 할머니는 남편과 함께 폴란드를 떠나기 위해 땅을 손으로 파서 터널을 만들어 몰래 도망쳤다. 아무도 이들을 받아주겠다는 나라가 없어서 이탈리아의 난민 수용소에서 무려 3년을 지내야만 했다.

이들은 미국으로 가고 싶어 했지만 당시 미국은 유대인 난민들이 국가 안보에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다면서 유대인을 아주 제한적으로만 받아들였다. 유대인 난민을 가장한 나치 간첩들이 포함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일부 정치인들은 유대인들이 폴란드에서 왔으니 이들은 공산당원이거나 간첩이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유대인 승객들이 타고 있던 세인트 루이스 대서양 정기선은 미국에 입항하지 못하고 되돌려졌는데 여기에 탑승하고 있던 승객들 중 4분의 1은 결국 아우슈비츠 등에서 사망하는 등 당시 미국은 유대인의 입국을 강하게 막았다. 난민 수용소에서 아이까지 출산한 쿠시너 부부는 결국 이차대전이 모두 끝난 1949년이 돼서야 간신히 미국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미국으로 들어오지 못했다면 쿠시너의 조부모들도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그랬듯이 유럽의 수용소에서 사망하거나 아우슈비츠로 끌려갔을 가능성이 높다. 불과 한두 세대 전의 이민자 부모를 둔 트럼프 가족이 이민자들에 대해 적대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이 의아스럽다.

한편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버지인 프레드 트럼프가 백인우월주의 단체 KKK단의 폭동 현장에 같이 있다가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백인들만의 미국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이 그다지 놀라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