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컴폰으로도 유명한 모토로라 레이저2.

그때 그 시절. 첫 월급을 타고 제일 먼저 할 일과 그 다음에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부모님의 빨간 내복을 산 다음 벼르고 벼르던 스타텍을 사는 것이었다. 히트텍도 아이폰도 없던 그 시절 스타텍은 만인의 연인이었다. 그 스타텍을 만든 모토로라는 영원할 줄 알았다. 레이저가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이제 노키아와 함께 폭탄 돌리기 게임의 폭탄 신세가 되고 말았다. 모토로라는 구글을 거쳐 레노버에 인수된 것으로도 모자라 얼마 전 열렸던 CES 2016에서 앞으로 모토로라라는 이름 자체를 쓰지 않기로 선언했다.

그렇다고 해서 스타텍에 얽힌 사람들의 추억과 역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아련한 추억을 소환한 것은 뜻밖에도 한 권의 책이었다. <블루스크린>은 IT 최일선에서 동분서주하는 조재성 기자가 지난 2014년 11월부터 2년 여간 <이코노믹 리뷰>에 차곡차곡 연재한 인기 코너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모토로라를 비롯해 의미심장한 IT 혁신의 흑역사가 담겨져 있다. 모토로라의 숙적이자 (폭탄 신세로 전락한 것마저 닮은) 절친인 노키아는 물론 경제 불황기에 활약한 반짝 스타 넷북과 가장 유망한 미래의 이동수단 중 하나였지만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세그웨이 등 반가운 이름들이 등장한다. 추억 속 싸이월드와 네이버의 아픈 과거, 우버코리아 해프닝까지 IT 강국 코리아의 사연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냉정한 IT 세계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따듯한 추억을 소환한다는 것도 이 책이 지닌 뜻밖의 효용이다.

물론 실패의 원인을 찾아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고자 하는 글쓴이의 의도는 확고하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도 실패한다. 한국 버전으로는 삼성전자도 실패한다. 모니터 화면을 갑자기 가득 채우는 블루스크린처럼 실패는 예상할 수 없는 시점에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누구라도 실패를 피할 수 없다. 단지 가능성을 줄이거나 피해를 관리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들은 실패를 그 자체로 두지 않는다. 성공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으려고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미니’라는 속담에 담긴 믿음을 공유한다. 피할 수 없다면 실패를 즐겨서 혁신의 단초를 얻어내고자 한다. 실패를 자산화하는 전략이다.”

애플이나 구글 정도면 그 산 증인이라 단언해도 무방할 것이다. <블루스크린>에서는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는 가정용 게임기 피핀과 무의에 그친 애플 지도, 냄새 날 것 같은 아이팟 양말까지 애플 역시도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음을 상기시킨다. 다만 이런 실패가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너무 앞서 가려다 외면 받은 혁신의 발자취였고, 성공의 자양분이었다고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실패의 역사로 치면 구글도 만만치 않다. SNS라는 전장에서 페이스북에 완패했고 구글 글래스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하지만 구글은 한술 더 떠 뜬금없는 자율주행차에 올인하고 그것도 모자라 관광객을 우주로 실어나르는 엘리베이터를 고심하고 있다. 실패가 두려워서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실패가 아니냐고 반문하는 구글 직원의 말을 옮기는 대목에서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       

<블루스크린>은 코트 주머니에 들어갈 만큼 작고 가벼운 책이지만 실패를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고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 도전하지 않으면 제아무리 거대한 IT 공룡도 일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음을 알리는 경고 메시지는 꽤 묵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