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요 도시에서 우버로 인해 일자리가 크게 늘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 마틴스쿨 연구진이 지난달 23일 발표한 논문을 통해 '우버로 인해 일자리 창출이 가능했다'는 논리를 펼쳤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일자리입니다. 2010년에서 2012년 사이 우버가 도입된 후 회사 택시 공급은 약 8% 증가했고 개인택시 공급은 약 45% 증가했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사이즈가 커졌다는 뜻이에요.

이 소식을 알리며 다수의 언론은 '우버가 택시 산업의 규모를 키웠으며, 당연히 일자리가 증가했다"고 전했습니다. 물론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기사들의 수익은 다소 줄었지만 공유경제가 고용을 축소할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와는 배치된다는 점을 강조했지요. 한 언론은 이러한 우버의 행보가 기술의 발전이 일자리를 줄인다는 골자로 발표된 칼 베네딕트 프레이 교수의 '고용의 미래'와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전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러한 찬사에도 불구하고' 석연치 않은 지점이 많습니다. 따져보겠습니다.

먼저 우버를 공유경제로 해석한 부분입니다. 이견의 여지가 있습니다. 공유경제는 최초 합리적 소비의 방식을 위한 방법론으로 시작됐으며 자본주의 시장의 폐혜를 극복하거나 보완하기 위해 탄생했어요.

전자의 경우 자본주의 시대 이전, 계급사회가 존재했을 당시 하층민의 한정된 재화 소비와 관련된 사안이며 후자의 경우에는 자본주의 시대의 막바지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가능성 타진 중 일종의 플랫폼 사업자의 등장과 궤를 함께 합니다.

결론적으로 후자에 집중하자면 우버와 에어비앤비 등은 공유경제의 방식을 차용해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중개사업자'의 역할을 담당했다는 뜻이며, 사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은 온디맨드에 더 가깝습니다. 재화를 공유하는 방식을 모두 공유경제라고 명명하면서 플랫폼 사업자를 자임하는 것 자체가 '시시각각 공급자와 이용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사업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우버의 특징이 공유경제에 있다고 해도, 이를 칼 베네딕트 프레이 교수의 '고용의 미래'와 배치해 일자리 문제로 풀어내는 방식도 문제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뜻입니다.(이유는 아래에 설명하겠습니다)

사실 공유경제와 같은 방법론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를 4차 산업혁명의 부작용인 일자리 상실의 시대로 연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의 부작용인 일자리 상실의 시대를 말하며 주목하는 것은 초연결과 인공지능, 이에 따른 생산방식의 패러다임 변화인 반면 공유경제(온디맨드)는 기술집접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유경제나 온디맨드나 마찬가지지만, 분명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은 O2O의 방법론을 타고 모바일 기술의 진화라는 '특급열차'를 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버가 플랫폼 사업자에 집중한다는 측면에서 업의 본질을 따지면 그 기원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2014년 12월 쿼츠는 '우버의 성공 비결은 경제 불평등'이라는 글을 통해 "온디맨드 서비스 경제의 핵심은 아이폰이 아니다"며 "확장 가능한 소비자 니즈와 중간 사업자에게 수수료를 지급한 후 나오는 임금 수준에 만족할 수 있는 노동력"이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즉 기술의 발전과 별개로 이미 존재하는 수요와 공급의 시장을 '영리하게 연결할 수 있는 플랫폼'을 핵심으로 본 거에요. 이는 경제를 운용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당연히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기술진화에 따른 일자리 상실과 연결되기 어렵습니다.

▲ 출처=픽사베이

온디맨드의 방식은 일자리 창출이 될 수 밖에 없는 인류의 오래된 방식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는 중개업자의 등장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역사적으로 중개업자는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나름의 일자리 창출을 하고 있었어요. 기술은 '양념'입니다.

그래도 백번양보해 현재의 온디맨드 방식이 일자리 창출에 성공했다고 전제해도, 또 문제가 보입니다. 옥스퍼드대 연구서를 소개하는 언론들은 우버가 일자리 창출에 성공했다고 전하며 "택시업체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각주를 붙이기도 했습니다. 맞을까요?

반은 맞고 반을 틀렸지만, 본질 자체가 빗나갔으니 결국 틀린 말입니다. 먼저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우버로 창출된 일자리가 양질의 일자리인가? 우버 기사들은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기 어렵고, 지금도 이 건은 각국 법원에서 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뉴욕의 우버기사들은 노동조합 결성을 인정하라며 우버에 소송을 걸기도 했어요.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버로 인해 창출된 알자리는 고용이 불완전하며, 보험 등 회사의 보호가 필요했던 부분을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디맨드의 폐혜입니다. 온디맨드를 '모든 직업인의 비정규직화'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수요자 입장에서 우버만큼 편리한 서비스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온디맨드의 방법론을 추구하는 순간 이는 양날의 칼입니다. 체계적인 회사의 서비스가 일종의 '평균적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과 달리, 우버는 온디맨드의 특성상 상황에 맞게 수요와 공급에 따른 기회비용을 강제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9월 포춘에 따르면 미국 맨해튼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할 당시, 우버가 테러로 공포에 떠는 승객들을 대상으로 폭리를 취한 것이 단적인 사례입니다. 엄연한 우버의 내부규약이지만 엄청난 비난이 쏟아진 바 있어요.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반 이민자 행정명령이 떨어지자 택시기사들이 공항 서비스를 거부하자 우버 기사들은 요금을 올리며 승객들을 수송한 사례도 있습니다. 당시 SNS를 통해 '우버를 지워라'는 글이 널리 공유되기도 했죠.

정리하자면 온디맨드 서비스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각자의 기회비용을 모두 강제하며,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비정규직에 회사의 보호를 받을 수 없지만 유연한 경제생활을 가능하게 만들어요. 수요자 입장에서는 편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 익숙했던 택시회사들의 '평균적 서비스의 기회'를 박탈당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급자에게 더 있습니다. 장점이 곧 단점이 될 수 있거든요. 무슨 말인가?

2015년 6월 뉴욕타임스는 '우버와 같은 서비스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어떤 타입의 노동자가 유리한가?'라는 글에서 우버의 조나단 홀(Jonathan V. Hall)과 프린스턴 대학의 경제학자 앨런 크루거(Alan Krueger)의 연구를 소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우버 기사 중 48%가 대학 학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즉 우버의 기사로 활동하는 기사 중 고소득자가 많으며, 이들은 유연한 경제활동의 과실을 챙기고 있다는 뜻이에요. 외연적으로 보면 우버의 기사가 많아져 일자리 창출이 가능해진 것으로 보이지만 사회 상층부의 투잡 개념으로 보면, 오히려 생업으로 뛰어드는 기사들의 일자리를 줄었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우버의 경쟁자가 택시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일자리 문제에 있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보겠습니다. 종종 우버의 분쟁이 택시회사들과의 마찰로 비화되기 때문에 이는 사실로 보입니다. 하지만 행간을 따질 필요가 있어요. 무엇이냐? 우버의 경쟁자는 택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약간 복잡해지지만, 우버의 스탠스를 훑으며 시작하겠습니다.

트래비스 칼라닉은 종종 공식석상에서 "우버의 경쟁자는 택시회사가 아니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마치 샤오미의 레이쥔 CEO가 "우리는 스마트폰 업체가 아니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현재의 분쟁을 최소화하고 영역을 확장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핵심은 "우버의 경쟁자는 완성차 업체"에 있습니다.

우버에게 있어 현재의 수송 서비스는 큰 그림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자가용을 넘어 트럭 등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하고 택배부터 물류사업 전반의 대단위 전략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5년 플렉스포트(Flexport)의 CEO 라이언 페터센(Ryan Petersen)은 테크크런치에 기고한 글을 통해 재미있는 이론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우버가 지금의 스탠스를 유지하며(바꿔 말하면 온디맨드의 방식을 활용해) 이동의 플랫폼을 촘촘히 장악하면 이를 바탕으로 승자독식 생태계를 창출할 수 있고, 당연히 물류산업의 혁신으로 이어진다는 논리입니다. 우버합승을 통해 사람을 배송하며 잠시 다른배송을 처리하는 등의 방법론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으로 막강한 자금을 유치하는 우버가 사실상 '경쟁자의 투자를 막아 일종의 고사작전을 전개하고 있다'는 논리와, 우버풀 및 우버러시 등의 실험을 연결하게 만듭니다. 전자가 물류의 혁명을 노리는 우버의 기본적인 자산이라면 후자는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수단인 셈입니다. 그 이상의 미래도 생각하고 있어요. 최근 우버는 비행택시 개발을 위해 NASA 전문가를 영입하기도 했습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동의 플랫폼을 경우의 수에 넣겠다는 의지입니다.

여기에 지도에 대한 천착과 자율주행차 실험을 덧대어지면 더욱 선명해집니다. 최근 우버는 구글 출신의 아밋 싱할을 영입해 지도 작성 경쟁력을 크게 키우고 있습니다. 2015년에는 지도 제작용 차량을 직접운행했으며 지난해 지도 제작을 위해 5억 달러의 투자를 천명하기도 했지요. 모두 자율주행차 실험을 위한 겁니다. 지난 1일 트래비스 칼라닉은 다임러와 함께 자율주행차 공동 개발에 나선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지요.

자, 물류 차원의 큰 그림과 자율주행차의 비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버는 온디맨드의 방식을 통해 미래 스마트 모빌리티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끌어오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프라이빗 이동 플랫폼입니다. 사람과 사물을 가리지 않고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온디맨드의 방식을 살려, 이는 자율주행차의 비전과 연결한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재앙이에요. 이제 사람들은 자가용을 구매할 필요가 없이 우버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이동의 목적을 매 순간순간 달성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이유로 우버와 함께 자율주행차 연구에 나서는 완성차 업체의 속내는 복잡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완성차 업체마저 우버의 하청업체가 되는 미래를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이런 관점에서 일자리 문제로 돌아가면, 우버에게 있어 기사는 온디맨드 방식을 취합하는 현재의 상황에는 필수불가결이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미래에는 없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다다르면 온디맨드보다 기술의 발전이 우버를 설명하는 핵심이 되며, 일자리 문제요?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는 시대가 올 수 있습니다. 온디맨드가 핵심일 경우에는 그나마 일자리가 있었으나, 우버가 생각하는 미래가 현실이 되면 그 일자리 마저도 사라집니다. 지금의 온디맨드는 기술보다 시장의 존재로 가능했지만, 우버는 기술로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우버는 물류 산업의 혁신과 저율주행을 핵심으로 삼아 온디맨드의 방식을 덧대고 있습니다. 그 과정으로 향하는 순간에는 다양한 이득이 넘실거리고 진화의 열쇠도 보입니다. 하지만 미래의 결론에 일자리 창출과 같은 청사진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우버가 악마의 기업은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발전의 역사로 이해해야 해요. 문제는 이러한 우버의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고 순간순간 자위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행간을 읽어,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 몽상에 빠지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론이 아닐까요?

[IT여담은 취재과정에서 알게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번은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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