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EFF

인터넷은 공공재일까. 기술이 발달하고 시대가 변하면서 ‘인터넷’이란 재화에 대해 새로운 관점이 요구되고 있다. 

가장 큰 이슈가 망중립성(net neutrality)논란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통신업계의 오랜 논쟁거리다. 최근 미국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며 망중립성 정책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제로레이팅(Zero Rating) 요금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망중립성은 인터넷으로 전송되는 데이터 트래픽을 그 내용·유형·제공사업자·기기 등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 동등해야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망중립성 원칙은 오바마 전 대통령 행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였다. 트럼프 정권은 반대로 망중립성 약화 정책을 내세울 전망이다. 미국의 통신정책은 국내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업계에서도 주목하는 이슈다. 

망중립성 논란의 중심에 제로레이팅이 있다. 제로레이팅은 특정 인터넷 콘텐츠를 이용할 때 발생하는 데이터 요금을 일반 사용자가 아닌 사업자가 대신 부담하는 요금 부과 방식이다. 사용자 대신 사업자가 요금을 부담해 스폰서요금제(sponsored data)라고도 불린다. 수도, 전기와 같은 공공 서비스는 그 용도에 상관없이 이용자들이 이를 동등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인터넷까지 확장되면서 등장한 개념이다.

제로레이팅의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국내는 아직 초기단계다. SK텔레콤 가입 고객은 11번가 모바일 쇼핑 시 발생하는 데이터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KT는 2015년 다음카카오팩을 출시했다. 월 이용요금 3300원에 카카오 서비스 전용 데이터를 데이터 3GB 내에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제로레이팅 왜 논란이 되나

망중립성 찬성론자들은 인터넷을 공공재로 본다. 망중립성 원칙이 공정한 경쟁과 혁신을 유도해 스타트업 기업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대로 망중립성 폐지를 주장하는 입장은 망 고도화 등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통해 선택권을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망 사업자가 직접 운영하거나 자회사가 운영하는 동영상 서비스 이용 시 데이터 이용 대가를 받지 않으면 망 사업자와 무관한 콘텐츠 사업자들은 경쟁에서 도태될 우려가 있다. 여기서 통신사와 콘텐츠 사업자들 간 이해 상충이 발생한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경우 데이터 소비가 크기 때문에 망 이용 대가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웹툰, 음악 스트리밍 등의 콘텐츠 서비스는 데이터 소비량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결국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에 의해 콘텐츠 시장에서의 성패가 결정된다기보다 망 이용대가 정책에 따라 결정될 우려가 있고 여기에 망 사업자가 자의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 아짓 파이 FCC 위원장. 출처=위키미디어

지난달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의 새 위원장으로 망중립성 반대파인 아짓 파이(Ajit Pai)가 임명됐다. 아짓파이 위원장은 지난 3일(현지시간) 전임 휠러 위원장 시절 진행했던 제로레이팅 관련 통신업체 조사를 종결하고 FCC 무선통신국의 정책검토보고서도 무효화했다. 취임 11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FCC가 망중립성 관련 조사를 중단함에 따라 통신사들의 서비스는 더욱 다양해질 전망이다.

미국 1위 통신기업 버라이즌은 12일(현지시간) 6여 년 만에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다시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월 80달러를 내면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요금제다. 4인 가족이 동시에 가입하면 1인당 45달러의 할인된 요금이 적용된다. 매달 22GB까지는 LTE 속도를 제공하며 그 이상의 데이터를 쓸 경우에는 속도가 느려진다.

버라이즌은 통신업계 경쟁자들에게 위협을 느껴 중단했던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다시 선보인 것으로 보인다. AT&T는 디렉TV나 U-버스 등 유료 TV 가입 고객에 한해 무제한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스프린트는 버라이즌의 발표 며칠 전에 무제한 데이터 제공 프로모션을 발표했다.

제로레이팅 엇갈린 입장 들어보니..

통신사는 제로레이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다. 지난 3일 이상헌 SK텔레콤 CR 전략실장은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국내에서 제로레이팅 관련 플랫폼 서비스가 활성화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이용자 환경과 통신사 매출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제로레이팅은 소비자의 편익을 증진할 수 있는 서비스를 확장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에서 망중립성 정책 변화의 바람이 감지되지만 확정된 것은 아니다”며 “국내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시행령 고시를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망중립성 논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사업자로서는 의견이 없다”며 “정부의 정책을 따라야 하는 입장”이라고 답했다.

제로레이팅 반대 입장도 있다. 공정한 거래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쉽게 말해 망중립성을 침해한다는 논리다. 일차적으로 보면 소비자의 데이터 통화료 부담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계점은 있다. 제로레이팅에 참여하지 못한 중소 콘텐츠 기업에 대한 차별이 망중립성 원칙을 침해한다는 설명이다.

▲ 출처=오픈넷

국내에서 망중립성 원칙과 관련해 강한 목소리를 내는 곳 중 하나가 ‘오픈넷’이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인터넷을 자유와 개방, 공유의 터전으로 꽃피우겠다는 목표 아래 활동 중인 비영리단체다.

오픈넷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망중립성’이란 메뉴를 만들기도 했다. 망중립성 이용자 포럼에 참석하고 19대 및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망중립성 강화 법안에 대해 국회 통과 노력에 힘쓰고 관련 세미나를 진행하는 등 인터넷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오픈넷 측은 지난 2012년 카카오톡의 보이스톡 품질 제한과 관련해 논란이 됐던 mvoip(모바일인터넷전화) 이용자 차별 행위는 정보공개 소송을 진행해 대부분 해소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오픈넷에서 망중립성 문제를 담당하는 박지환 변호사는 “망중립성의 핵심은 망 사업자가 자의적으로 망 위에서 제공되는 서비스 이용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된다는 원칙으로, 이는 공정거래법과도 맥이 닿아있어 원칙적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우리나라의 망 사업자들은 과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데 망중립성 규제가 없으면 콘텐츠 시장에서 망 사업자가 과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과도하게 행사할 우려가 있다”며 “콘텐츠 시장의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을 위해서라도 망 중립성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픈넷에 따르면 제로레이팅의 다양한 형태 중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건 망 사업자의 지위 남용이다. 망 사업자가 자신 또는 자신의 자회사가 제공하는 콘텐츠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 망 사용료를 과금하지 않는 형태다. 시장에서의 과점적 지위를 남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미국 FCC의 망중립성 폐지 행보도 국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미국의 정책 변경이 국내에 미칠 영향에 대한 질문에 박 변호사는 “일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며 “현재 20대 국회에 발의된 망중립성 강화법안의 심사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의 입법, 정책 추이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다소 모호한 결론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시장 상황과 국내의 과점적 시장 상황은 매우 다르며, 미국의 망 사업자와는 달리 국내 망 사업자들은 스스로 또는 자회사의 서비스에 대한 망 이용 조건의 차별을 두고 있어서 이는 망중립성 차원에서 규제되어야 할 뿐 아니라 공정거래법으로도 규제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미국의 정책 방향을 따라서 결정하기보다 국내 전기통신사업법의 이용자 차별행위 규제와 공정거래법 규제의 취지에 따라 망중립성 정책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