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지난해 ‘MWC 2010’에서 자사 독자 플랫폼 ‘바다’를 탑재한 스마트폰 ‘웨이브(Wave)’를 처음 공개했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로 ‘구글로라’가 탄생하면서 새삼 삼성전자가 개발한 독자 플랫폼 ‘바다(bada)’가 주목 받고 있다. 전세계 모바일 업계 격변 속에서 지식경제부가 ‘토종 OS’ 개발 방침을 내놓으면서 ‘SW 자립’을 위한 논란도 불붙는 상황.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로 안드로이드 OS의 장점은 사라졌다는 극단적인 평가도 나온다. ‘안드로이드 진영의 특허 보호’가 명분에 불과했다는 것은 구글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혁신적인 제품 출시”를 공언하면서 드러났다.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당장 세계 휴대폰 시장의 30% 가까이 가져가는 국내 업체들 역시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지식경제부가 나서 ‘한국형 범용 OS’ 개발을 주창하고 나선 것 역시 이러한 위기 의식의 발로다. 비판적인 시각이 우세했지만, 역설적으로 ‘SW 빈국’으로서 조급증을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스펙(사양)으로 경쟁력을 가져가던 시대는 끝났다는 데 국내 스마트폰 업계의 불행이 있다. PC 시대, OS업체가 주도권을 틀어쥐었듯, 이제 ‘PC화 돼가는 휴대전화’ 속성상 모바일 플랫폼(OS) 경쟁력이 곧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애플(iOS)과 구글(안드로이드)의 모바일 OS의 절대 우위 속, 특히 업체간 특허전쟁까지 맞물리면서 경쟁력 있는 모바일 OS가 없는 한국 스마트폰 업계의 미래도 우려만 깊어지는 실정이다.

2.0버전 웨이브폰 유럽시장서 선전

삼성전자의 모바일 플랫폼 ‘바다2.0’이 탑재된 스마트폰 ‘웨이브(wave)3’

국내에도 내세울 만한 모바일 플랫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유일하게 삼성전자가 독자 개발, 2.0버전까지 내놓은 ‘바다(Bada)’가 그것이다. 이를 채용한 ‘웨이브(Wave)폰’ 시리즈는 유럽 쪽에서 제법 반응도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5일, 삼성전자는 ‘바다’ 플랫폼 2.0’ 버전을 공개하면서 이를 통한 글로벌 스마트폰 플랫폼 업체 도약을 장담했다. 지난 2009년 말 영국에서 개발자들 대상으로 처음 공개한 이래 근 2년만의 업그레이드인 셈이다.

바다를 탑재한 첫 스마트폰(바다폰) ‘웨이브(Wave)’는 지난해 2월 ‘MWC 2010’에서 처음 공개됐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후 같은 해 5월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을 필두로 600여개국에 ‘웨이브’ ‘웨이브2’ 등 7종의 바다폰을 출시했으며, 지난해 7월 ‘웨이브’는 프랑스 스마트폰 판매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최신 플랫폼 ‘바다 2.0’을 탑재한 스마트폰 ‘웨이브3’는 지난 2일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된 ‘IFA 2011’에서 공개됐다. 이처럼 발 빠른 삼성전자 행보가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 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국내외 업계 분석이다.

당장 바다 2.0에서 지원하는 스마트폰 기능들이 1.0에 비해 크게 발전했다. ▲최대 300Mbps 속도의 ‘와이파이 다이렉트’ ▲근거리 무선통신 결제 기술 ‘NFC’ ▲‘음성 인식’ ▲뛰어난 멀티태스킹과 푸시 기능 ▲HTML5·WAC 2.0 표준·플래시 기능 강화 등이 그것이다.

플랫폼 안착의 관건이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및 콘텐츠 제작 환경도 크게 개선됐다는 평이다. 개발자들이 실제 바다폰에서 앱을 개발하는 것과 동일한 환경을 제공하는 에뮬레이터 기능, 개발한 앱의 성능을 쉽게 분석할 수 있는 퍼포먼스 어넬라이저와 프로파일러 등이 신규 적용됐다.

특히, 바다 개발자들이 안정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바다 앱 안에 광고 삽입이 가능한 ‘인-앱애드(In-app Ads)’ 기능도 추가해 경쟁력을 더했다.

삼성전자가 이를 탑재한 ‘웨이브3’를 공개하면서 “역대 바다 플랫폼 탑재 스마트폰 중 최고의 기능과 디자인을 자랑한다”고 강조한 것도 눈길을 끈다.

당초 보급형 단말 탑재를 겨냥했던 바다 플랫폼을 ‘2.0’으로 업그레이드 하면서 삼성전자가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 공략을 확언할 만큼 바다에 대한 자신감을 가진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 신종균 사장은 “바다는 지속적인 플랫폼 기능 개선 및 에코시스템 구축을 통해 높은 성장 가능성을 평가 받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며 “삼성전자는 바다 탑재 단말을 확대, 스마트폰 플랫폼의 한 축으로 성장시켜 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2분기 ‘바다’ 점유율 이미 ‘MS’ 따돌려

역설적으로 삼성의 독자 플랫폼 ‘바다’를 국내 표준 OS로 육성하자는 주장은 지경부가 최근 ‘토종 플랫폼’ 개발을 주창하고 나서면서 제기됐다.

김재홍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은 지난달 22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삼성전자·LG전자 등과 협의체를 꾸려, 올 하반기부터 ‘개방형 토종 OS 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SW가 HW를 지배하는’ 글로벌 IT 이슈에 대응해 범용성을 무기로 독자 OS를 가져가자는 제안이었지만, 업계 반응은 냉담했다.

‘정부 주도’의 ‘OS 개발’이 갖는 부정적 시각에 대해 지경부 강병수 정보통신정책과장은 “언론에 알려진 것과 달리 이번 WBS(월드 베스트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는 삼성·LG 주도가 아닌, 소프트웨어 중소기업을 위한 예산으로 집행된다”며, “위피 같은 폐쇄형을 탈피, 오픈 소스에 기여하는 방식의 개발 방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의 시큰둥한 반응에도 일부에서 대안으로 내놓은 게 바다와 ‘웹OS’였다. 후자의 경우, HP의 PC사업 철수로 향방이 업계 주목을 끌었다. 글로벌 OS라는 장점으로, 삼성전자 혹은 HTC가 이를 사들일 것이란 외신 추측이 난무했다.

일단 ‘웹OS’에 대해 삼성전자 최지성 부회장이 IFA 2011에서 강하게 ‘인수 불가’를 밝힌 상태다. 웹OS를 ‘HP의 쓰레기(HP’s Garbage)’라고 표현했다는 외신보도는 회사측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일부 해외 블로그에서는 삼성전자의 ‘미고(MeeGo)’ 인수 가능성도 제기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미고는 인텔과 노키아가 개발한 리눅스 기반의 오픈소스 모바일 OS다. 노키아가 MS 윈도폰으로 돌아서면서 현재 개발이 중단됐다.

삼성전자는 ‘바다’에 방점을 찍었다. 멀티 플랫폼 전략을 가져가면서 삼성은 올해 2분기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안드로이드폰 의존이 높지만, 윈도모바일/윈도폰, 리모폰에 더해 독자 플랫폼 바다까지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

바다 탑재 웨이브폰 판매 역시 유럽을 중심으로 선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측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누적 800만대가 판매됐다. 이에 힘입어 최근 시장조사 업체인 가트너는 올해 2분기 바다 점유율이 1.9%로, MS 윈도모바일/윈도폰 OS 1.6%를 앞질렀다고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시장조사 전문 블로그 아심코(www.asymco.com)는 나아가 같은 기간, 바다와 MS OS 점유율 격차가 4% 대 1%였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작년 3월부터 전 세계 40여개국에서 바다 개발자 데이(bada Developer Day)를 개최, 바다 인지도 향상 및 개발자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 열린 ‘MWC 2011’ 당시 바다 개발자 데이 모습. 이 자리에서 최신 바다 2.0이 처음 공개됐다.


삼성은 온라인 개발자 지원 사이트 ‘bada Developers’ (developer.bada.com)와 국내 개발자 오프라인 지원 공간 ‘Ocean’을 운영, 온라인·오프라인 다각도로 바다 앱 개발자를 지원하고 있다.


플랫폼 오픈 땐 한국형 범용OS 가능성

삼성을 제외하고 바다 채용에 가장 적극적인 제조사는 팬택이다. 이 회사 박병엽 부회장이 직접 나서 지난해 7월 ‘베가’ 발표회 당시 ‘바다’를 함께 쓸 것을 삼성측에 제안하겠다며, 공조를 통한 글로벌 시장 공략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팬택에 따르면, 현재 팬택의 이러한 ‘OS 공용’ 제안에 대해 삼성전자가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업체가 힘을 모아 공동 플랫폼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게 최선이라는 팬택 입장에선 아쉬운 부분이다.

팬택 손원범 차장은 이에 대해 “삼성전자가 오픈 OS로 가겠다면 ‘열린 자세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입장”이라며 “이는 원론적인 수준”이라고 말했다. 바다를 오픈 하더라도 적지 않은 리소스가 투입되는 현실에서 실제 참여가 가능할 지는 또 다른 문제라는 설명이다.

지경부는 바다 플랫폼을 공용화할 계획은 없다고 확인했다. 정부 예산의 R&D 속성상 기존 OS의 발전 대신 차세대 기술의 개발에 방점이 찍히기 때문이라는 게 강 과장의 설명이다.

강 과장은 그러나 최근 중국 내 잇단 독자 모바일OS 개발 바람에 비춰 “바다가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바일 OS 삼국지’ 지형에서 독자 OS를 가져감으로써 운신의 폭이 그만큼 넓어질 수 있으리란 판단 때문이다.

증권사 IT 담당 애널리스트들의 경우, 바다 플랫폼의 오픈이 경쟁력 강화의 방안일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힘을 모아야 그나마 글로벌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으리란 분석이다. 다만, 이들은 바다 플랫폼 자체 경쟁력에 대해서는 비교적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상자기사 참조).

한편, 바다 플랫폼 활성화를 위해 삼성전자 역시 ‘바다 개발자 데이(bada Developer Day)’ 개최 등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회사의 독자 앱 장터인 삼성앱스(Samsung Apps)는 지난 2009년 9월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처음 시작돼 ‘웨이브’폰 출시에 힘입어 지난 3월 누적 다운로드 1억 건을 돌파했다. 현재 전세계 120개국에서 서비스를 제공 중이며, 4만여개의 앱을 이용할 수 있다고 회사측은 덧붙였다.

애널리스트들 “협업 통해 경쟁력 더 높여라”

IT분야를 전문으로 분석하는 각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전자 ‘바다’를 어떻게 바라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글로벌 OS들이 시장을 장악한 현실에서 자체 경쟁력에는 낮은 점수를 줬다. 반면, 국내 업체간 협업을 통한 경쟁력 확보에는 다소 긍정적이었다.

로아컨설팅 고중걸 책임은 “바다의 성능이 어느 정도 올라갔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제조사가 이를 혼자 이끌어가기엔 한계가 있어 경쟁력은 별로라고 본다”며 “생태계 구축 등 구체적인 방안이 잘 안 드러나고, 한국형 OS로서 삼성만의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타 제조사를 아우르는 부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바다 OS 밀어주기’에 대해 고 책임은 “토종 OS 접근에서 삼성이 바다를 개발했으니 이를 적극 지원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LG전자나 팬택 등이 이를 경쟁사 제품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나라 모바일 OS를 쓴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좋을 것”이라고 주문했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연구원도 바다 OS 경쟁력에 대해서는 박한 평가를 내렸다. “불특정 다수 앱 개발자들 입장에서 돈을 벌 수 없는 구조라면 생태계 관점에서 경쟁력은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삼성 입장에서는 가야 할 길이고, 성공 가능성을 확신 못하지만, 의지는 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OS 경쟁이 격화될수록 삼성이 바다를 오픈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노 연구원은 국내 제조사들에게 이를 오픈, 함께 해야 그나마 글로벌 경쟁력을 가져갈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물론, LG전자와 팬택 등 경쟁사가 이를 받을지 여부는 미정이다.

박영주 기자 yjpak1@asiae.co.kr